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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 암 투병 중인 친정 오빠, 그리고 친정 언니와의 5박 6일간 도보여행. 오빠는 도보여행 중 자주 힘들어했습니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눈에 띄게 걸음이 무거워 보였고, 좀 쉬었다 가자고 자주 주저앉곤 했습니다. 사정이 되니 도보여행을 제의했을 것인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 당혹해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오빠 어떻게 되면 엄마가 어떻게 견디실까 그게 더 걱정이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오빠가 지금처럼 만이라도 오래오래,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만이라도 살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불안하곤 했습니다. '오빠와 다시 도보여행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들어 울컥해지기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언니도 그랬던지 이처럼 말하더군요. 그래서 도보여행 며칠 후 있다는 정기검진 결과가 궁금했습니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했지만, 여행 중 워낙 힘들어했던 터라 '안심시키려고 거짓말하는 것 아냐?'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강진만. 멀리 보이는 곳이 강진읍입니다(2017.3.11)
 강진만. 멀리 보이는 곳이 강진읍입니다(2017.3.11)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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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 자전거 도로와 철새도래지 지나 시골길에서 만난 정약용 남도 유배길(다산 유배길) 이정표입니다.(2017.3.11)
 남포 자전거 도로와 철새도래지 지나 시골길에서 만난 정약용 남도 유배길(다산 유배길) 이정표입니다.(201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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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오빠의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나 봅니다. 설날이 지나자마자 "도보여행 날짜 잡자"고 서두르더군요. '강진-정약용 남도 유배길(2017.3.10.~3.12)'은 그렇게 갔습니다. 

"작년에, 셋이 걸어서 시골에(김제) 간다는 소식 듣고 형부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 말도 마라. 부러워서 며칠 동안 일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더라. 이번에는 언제 가? 우리도 가고 싶은데 끼어줄 거지? 그런데 뭘 준비해야 돼? 많이 걷는 것은 한 번도 안 해봐서. 등산화는 우리 둘 다 있고…."(큰 언니)

친정아버지 연세 올해 87세. 친정아버지 생신 때 자주 모이곤 했는데, 기력이 눈에 띄도록 달라지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는 의무적으로 무조건 한집도 빠짐없이 모이는 날로 정해 모이고 있습니다. 올해는 생신(3.1) 며칠 전인 2월 24~26일에 모였는데, 나와 작은언니가 함께 있는 것을 본 큰언니가 먼저 이처럼 부탁하더군요. 준비할 것까지 먼저 들먹이면서 말이죠.

큰언니의 말은 정말 의외였고, 기뻤습니다. 가자고 해도 가지 않을 사람 1순위 정도였거든요. 언니는 명일동서 짜장면 집을 하는데, 그동안 가게 문을 하루라도 닫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노는 것에 인색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형부는 한술 더 뜨고요. 그런데 말도 꺼내기 전에 먼저 끼어달라고 하니 놀랄 밖에요.

이런 큰언니보다 더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던 큰올케까지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끼워 줘요!"라 하더군요. 그래서 지난가을 도보여행을 한 오빠와 언니, 큰언니와 형부, 새언니와 함께, 우리 여섯 명은 3월 10일 밤 11시 10분 기차(무궁화호)를 타고 광주로 갔습니다.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길(다산 유배길)을 걷고자.

강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이 18년 동안(1801~1818) 유배 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김영랑 시인(1903~1950)의 고향이고요. 그래서 이 두 역사인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윤선도와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의 주인공 공재 윤두서(1668~1715)의 고향이기도 하죠. 윤두서는 정약용의 외증조부이고요.

옛날 제주도로 귀양 가던 사람들이 반드시 지나가던 곳 중 한 곳이라고도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백련사 현판 사연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죠. 초의 선사와도 관련 있는 곳이고, 청자의 고장이기도 하고요.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 길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된 길로 현재 6코스(유배길 4코스, 바닷길 2코스)로 되어 있습니다. 해남까지 이어지고요.

김영랑생가. 이른 시각에 강진에 도착, 9시 이후에 관람 가능한 김영랑 생가는 밖에서 보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2017.3.11)
 김영랑생가. 이른 시각에 강진에 도착, 9시 이후에 관람 가능한 김영랑 생가는 밖에서 보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2017.3.11)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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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주막 옆 사의재. 뒤로 보이는 현대식 한옥은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강잔군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랍니다.(2017.3.11)
 동문주막 옆 사의재. 뒤로 보이는 현대식 한옥은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강잔군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랍니다.(2017.3.11)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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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주막 터에 복원한 동문주막과 사의재 풍경입니다. (2017.3.11)
 동문주막 터에 복원한 동문주막과 사의재 풍경입니다. (2017.3.11)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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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진에서 김영랑 생가 거쳐 들른, 유배 당한 정약용이 4년 동안 지냈다는 '사의재(동문주막)'를 가장 먼저 들렀습니다. 죄인을 도우면 그것을 빌미로 같은 죄인으로 몰아도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정약용이 외가의 고장인 강진으로 유배되어 갔음에도 도움조차 쉽게 받을 수 없었음은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요. 참,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 뿐,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유배였습니다.

이런 처지의 정약용을 동문주막의 주모가 거뒀고, 덕분에 몸을 추슬렀으며, 그곳에서 4년간 머물며 <경세유표>와 같은 책들을 쓰는 한편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후 고성사 보은산방과 이청의 집을 거쳐 다산초당에서 해배될 때까지 지냈다는데요. 섬기던 왕의 느닷없는 죽음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인데 형제들까지 사형되거나 유배된 상황, 뼛속까지 아팠을 것은 당연하겠죠. 이런 정약용을 보듬어 준 곳이라고 합니다.

밤기차를 타고 갔기 때문에 강진에는 9시 이전 도착 예정. 9시 이후에나 들어가 볼 수 있는 김영랑 생가는 그 앞을 지나는 것으로 통과. '①사의재~②목리마을~③남포마을~④철새도래지~⑤백련사~⑥다산초당~⑦다산수련원~⑧마전마을~⑨만덕호쉼터공원~⑩가우도 출렁다리~⑪강진읍(버스 이동)', 토요일 온종일 대략 20~30km 가량 걸을 계획이었습니다.

김영랑 생가부터 출발해 다산수련원까지 가는 제2코스(①~⑦,15km)에 15km(⑧~⑩)를 더한 건데요. 그런 후 강진에서 하룻밤을 잔 후 일요일 아침 광주로 이동, 광주를 돌아보고 일요일 오후에 서울로 올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길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백련사(⑤)를 거쳐 다산초당~율동마을을 끝으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이미 백련사 또는 다산초당까지는 갔을 시간까지 강진만 둘레를 몇 시간째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산초당을 끝으로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길 여행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애초 목리교를 건너지 말고 왼쪽에 강진만을 끼고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강진만의 찰랑거리는 갈대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과 정취에 취해 목리교를 생각 없이 넘어버렸고, 오른쪽에 강진만을 두고 오전 내내 걸어 '걸어간 길을 반드시 되돌아 나와야만 어디로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외진 마을 구로리'라는 곳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후 2시 넘은 시간에 오전 10시쯤 걸었던 곳으로 되돌아 나가 다시 걸었고. 4시간을 허비한 거죠.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한 할아버지가 마을을 지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자 듣고 있던 같은 동네 할머니가 틀렸다며 격한 입담으로 알려준 남포 자전거 도로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며 시골 사람들의 나그네에게 길 알려주는 것에도 진정을 다하는 시골 사람들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답니다(2017.3.11)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한 할아버지가 마을을 지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자 듣고 있던 같은 동네 할머니가 틀렸다며 격한 입담으로 알려준 남포 자전거 도로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며 시골 사람들의 나그네에게 길 알려주는 것에도 진정을 다하는 시골 사람들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답니다(2017.3.11)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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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오솔길 따라 900m쯤 거리에 있는 백련사입니다. 이곳 혜장 스님과 다산 정약용은 오솔길로 오가며 마음을 나누고 학문과 세상을 나눴더고 하죠. 멀리 산처럼 보이는 것이 강진만이랍니다. 흐려서 아쉽네요(2017.3.11)
 다산초당에서 오솔길 따라 900m쯤 거리에 있는 백련사입니다. 이곳 혜장 스님과 다산 정약용은 오솔길로 오가며 마음을 나누고 학문과 세상을 나눴더고 하죠. 멀리 산처럼 보이는 것이 강진만이랍니다. 흐려서 아쉽네요(201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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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에서 내어준 귤동 마을 위 만덕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해배되던 1818년까지 10년을 기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중요 저서들을 썼다고 합니다.(2017.3.11)
 다산초당.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에서 내어준 귤동 마을 위 만덕산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해배되던 1818년까지 10년을 기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중요 저서들을 썼다고 합니다.(201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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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사람들 중에 우리처럼 이렇게 강진만을 샅샅이, 몇 시간 동안 걸어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오빠)

사실 전 다산초당과 백련사에 여러 차례 갔었답니다. 그래서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일 수 있으나, 모두와 꼭 가고 싶었습니다. 좋아하는 곳이라 더더욱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지요. 강진 여행에, 정약용 남도 유배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비중 높은 곳이고요. 그래서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작은언니와 제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따라오라며 도망가 버린 오빠를 타박했더니 매사 느긋한 편인 우리 오빠, 이처럼 말하더군요.

"아쉬움이 좀 남는 것도 좋아. 그래야 다시 오지. 덕분에 바닷가 실컷 걸어봤으니 됐지 뭐. 남들 다 가니 우리도 꼭 가봐야 한다는 법 없잖아!"(작은언니)

그에 작은언니는 한 술 더 떠 이처럼 말했는데요.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저도 해안선 따라 걷고 걷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우도 출렁다리 건너는 대신 강진만을 몇 시간 걸었기 때문에 애초 계획했던 30km 가까이 걸었고. 뭣보다 강진만을 맘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진만을 그처럼 걸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 깊은 여행으로 남을 것 같고요, 아니, 함께 걸었던 강진만의 곳곳이 요즘 며칠 떠오르곤 했답니다.  

사의재 옆에는 강진군청에서 운영하는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있답니다. 미처 몰라 다른 곳을 예약하는 바람에 우린 이용하지 못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가격에 비해 시설이 좋다는 평이 많더군요. 사의재 주막에서 파는 음식도 저렴하면서 맛있다는 사람들이 많고요. 그러니 강진 여행을 계획 중이면 이용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싶네요.

결혼으로 수많은 관계들이 생겨나고 각각의 관계와 호칭으로 얽힙니다. 형제가 많을수록 복잡해지죠. 이런 속에서 특별하게 얼굴 붉힌 일 없었어도 공연스레 서먹하고, 그래서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 어색해하는 그런 사람들이 어느 집에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빠와 큰형부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단둘이 어디를 가거나 둘이서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오빠와 형부가 토요일 거의 온종일 함께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걷다가 어느 순간 오빠가 앞서 걷고 형부는 그 뒤를 따라가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걸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둘이 착 붙어 걸으며 끊임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걷더군요. 그러다가 어느새 보면 둘이서 저 멀리 걸어가 버리곤 하더니 우리는 나 몰라라 둘이 도망쳐 버리기까지 하고.

그런 둘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앉더니(우리에게 나머지 기차표를 던져주고)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고 노트북으로 드라마까지 보더군요. 형부가 우리 식구가 된 것이 30년. 그럼에도 '말이 통하지 않아 환장하도록 어색하기만 했던, 그래서 우리가 '환장의 커플'이라 부르곤 했던 둘은 '환상의 커플'이 되어 돌아왔답니다.

아자 아자 홧팅~! 오빠와 큰언니와 작은언니, 형부와 올캐, 그리고 나. 저마다 각각에게 다른 호칭으로 불리우는 여러 관게의 사람들이 뭉쳤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2017.3.12)
 아자 아자 홧팅~! 오빠와 큰언니와 작은언니, 형부와 올캐, 그리고 나. 저마다 각각에게 다른 호칭으로 불리우는 여러 관게의 사람들이 뭉쳤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된 것 같습니다(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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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으로도 유명한 백련사 오르는 길에 만난 동백꽃 하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요?  걷는 사람이 만들었을 하트, 걸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하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17.3.11)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으로도 유명한 백련사 오르는 길에 만난 동백꽃 하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요? 걷는 사람이 만들었을 하트, 걸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하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17.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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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난 참 좋았어. 덕분에 오랜만에 (새)언니랑 많은 이야기를 했거든. 서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잘못 알고 있던 것도 풀게 되고. 참 좋더라."(큰언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손톱만큼 작아질 정도로 앞서가고 있는 오빠와 형부를 붙잡는다고 작은 언니와 속력을 부쩍 높여 걸었습니다. 이유가 있어서였지만 도보여행 처음인 큰언니와 올케만 두고 걸어버렸음을 미안해했더니 큰언니는 이처럼 말하더군요. 맏딸이란 책임감으로 그동안 올케들에게 싫은 소리도 해야만 했던 큰언니도 새언니와의 막연했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고요. 두루두루 정말 멋있는 여행 맞죠?

"어떤 사람하고 여행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여행이었다. 오빠하고 형부하고 저렇게 좋아 죽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어. 올케도 함께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아까 고모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에도 와봤다고 말 할 때 뭉클하더라…."(작은언니)

"그러게. 나한테도 몇 번이나 말하더라고. 그동안 오빠하고 여행도 제대로 못하고 산 것 같아 맘이 짠해지고 그랬는데 함께 오길 정말 잘했어. 앞으로도 함께 다니고 그럼 좋겠어."(나)

그 지역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죠. 하루 종일 걸은 다음날 아침 광주로 이동한 우리는 광주송정역 인근 떡갈비 골목에서 떡갈비로 아점을 먹었습니다. 그 후 1913시장을 구경한 후 용산행 KTX를 타고 서울로 왔습니다. 오전 7시 40분 무렵부터 캄캄해진 오후 8시 무렵까지 걸었습니다. 오빠 말에 의하면 70리 정도 걸었다는데, 처음 걸은 큰언니와 형부, 올케 모두 좋았나 봅니다. 다음에도 꼭 끼워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

글을 쓰며  "고모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에도 와보고…"라던 올케의 말이, 그 말을 하며 목이 잠기곤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삼각김밥 하나에도 즐거워하던 큰언니와 처제들을 유독 챙기려 들던 형부 모습도 떠오르고요. 오빠의 밝은 모습에 기분 좋고요. 카메라 들이대며 붙으라면 붙고, 웃으라면 웃던 오빠와 새언니, 큰언니와 형부, 그리고 둘째 언니와의 순간, 순간들이 떠오르고요.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태그:#몽실가 여행, #강진 정약용 남도 유배길, #다산초당, #도보여행, #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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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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