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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잇따라 출간한다. 자서전에는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자신들과 관련된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해 스스로 관점을 담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진은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24일 출간한 '당신은 외롭지 않다' 자서전 표지. 2017.3.24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잇따라 출간한다. 자서전에는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자신들과 관련된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해 스스로 관점을 담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진은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24일 출간한 '당신은 외롭지 않다' 자서전 표지. 2017.3.2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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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의 인터뷰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 자서전을 출간한 이순자 여사는 동아일보-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과 관련한 여러 평가를 내놓았는데, 유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만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 인터뷰에서 이순자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우리가 제일 편안하게 살았던 것 같다. 매 분기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주셨다. 얘기를 전할 수 있는 언로를 터주시고. 우리 집 양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2009년 8월 1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을 할 때 말한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에 계실 때 전직(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정적을 용서하고 포용하려고 한 김대중은 대인배'라고 평가하는 경우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인적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김대중의 행동을 비판하는 경우다. 비판하는 쪽은 김대중의 인식이 나이브했다는 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평가를 보면서 필자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전두환 문제는 민주화 운동 당시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사안이다. 그 당시 과거사 청산 논쟁의 성격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적폐 청산 문제와 그 성격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해는 적폐 청산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역사적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사 청산에 있어 그 당시 김대중 전략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것이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과거사 청산, 적폐 청산이 중요한 이유

권위주의 정권은 강권통치를 하면서 여러 가지 반민주적, 반인권적 조치를 자행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므로 과거사 청산은 민주화 이후 직면하게 되는 매우 중대한 정치사회적 과제가 된다.

흔히 과거 청산을 도덕적이고 당위적인 행위로 규정하면서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위와 거리가 먼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통념에 불과하다.

과거 청산은 진실을 통한 소통, 피해자에 대한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권위주의의 잔재와 그 근원에 대한 발본색원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통합의 힘을 통해 새로운 국가 발전의 동력을 창출하려는 것이므로 과거청산은 미래지향적 성격을 띠게 된다.

더군다나 한국은 권위주의 통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연원한 여러 문제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우회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거사 청산은 민주주의 심화, 국민통합, 국가발전을 위한 기본적 전제가 되는 매우 중대한 시대적 과제가 된다. 그래서 적폐 청산이 운위되는 2017년 현 시점에서 봐도 민주화 운동 당시 제기된 과거사 청산 논의는 전혀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단절론과 화해론, 김대중이 화해론을 주장한 이유는?

지난 2009년 8월 14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했다. 이희호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
 지난 2009년 8월 14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했다. 이희호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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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당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하여 단절론과 화해론의 두 가지 방식이 제기되었다. 두 가지 주장 모두 진상규명을 통한 역사적 진실의 회복(명예회복), 피해받은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 배상 및 보상을 주장했다. 그래서 사회적 차원의 치유회복을 의도했다.

단절론과 화해론의 차이는 가해자에 대한 처리 방식에 있었다. 단절론은 법적 절차에 따른 엄격한 인적 청산을 주장했으며 민주화 운동 진영 내에서 사회 운동 진영이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김영삼 역시 대체로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 화해론은 법적 처리와 정치적 사면 두 가지를 단계론적으로 강조한 입장이며 김대중이 이 입장을 대표했다. 김대중이 1997년 12월 대선 승리 이후 당선자 신분일 때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을 건의한 것도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김대중이 화해론을 제시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김대중은 이미 1980년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법정 최후진술 및 옥중서신 등을 통해서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강조한 바 있었다.

이렇게 보면 김대중의 화해론은 종교적 신념의 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상 그 내면을 더 들어가면 한국 현대사의 극단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역사적,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해론, 정교하면서도 담대한 정치적 비전 속에서 나온 전략

김대중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냉전분단구조로부터 파생된다고 인식했었다. 그래서 김대중은 민주화 운동 당시 선민주-후통일의 입장을 내세웠다. 즉 한국의 민주화를 먼저 실현시키고 그 뒤에 평화적 통일의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 민주화는 김대중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김대중에게 있어 한국의 민주화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중요 전제이자 단계였다. 그래서 그의 정치적 행동은 1차적으로는 민주화 2차적으로는 냉전분단구조 해체를 위한 전략적 고려라는 측면에서 복합적이고 단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과거청산과 관련한 김대중의 화해론 역시 이 관점에서 이해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민주화는 다수의 국민이 합의한 보편적 가치였다. 그러나 오랜기간 걸쳐서 진행된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대북화해협력정책에 대한 대중적 지지기반은 매우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김대중은 화해론을 통해서 민주화 운동 세력의 도덕적, 역사적 권위를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화해론을 통해서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일반인들의 우려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동력을 통해 그가 구상했던 3단계 통일론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이다. 민주화 운동 당시 과거 청산의 방법으로서 김대중이 화해론을 제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지난 200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씨가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입장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씨가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에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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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위에서 보듯 김대중이 전두환을 용서한 것은 복합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김대중을 대인배', '나이브한 역사 인식의 한계'라는 식의 평가는 역사적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다.

김대중의 화해론은 단순한 구상이 아니었다. 선거를 고려한 정략적 차원의 구상이 아니었으며 종교적인 개인 신념의 발현도 아니었다. 김대중의 구상은 한국이 민주화 이행 단계에 있다는 점, 민주화 이후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점 등 그 당시 한국이 처해 있던 거시역사적 조건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지금은 2017년이기 때문에 김대중의 전략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적폐 청산은 민주화 운동 당시 과거사 청산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주는 현실적 함의가 매우 중대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과거와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따라서 적폐 청산을 일시적인 정치적 인기를 위한 포퓰리즘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혹은 결과적으로 회피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실 진단과 목표,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 전략 등을 정교하게 고민해서 하나의 체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지금 이 시점에서 김대중의 화해론을 재조명해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그:#김대중, #전두환, #이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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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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