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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 아래 제주가 기다리고 있다.
▲ 제주하늘 저 구름 아래 제주가 기다리고 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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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된 여행 팀의 제주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16년 11월 22일 오십 넘은 두 중년 사내들은 군산공항 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가한 평일 낮 비행기는 단출한 손님을 태우고 금세 제주하늘에 닿았다. 얼굴을 스치는 제주 바람은 육지에서 못 느끼는 신선함으로 가득 했다.

평일임에도 제주공항은 마치 제 집인 양 활보하는 중국 관광객들과 여행사 직원, 렌터카 업체 등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 같으면 빨리 피하고 싶은 복잡한 상황이지만 여행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붐비는 공항청사가 그리 싫지 않았다.

잠시 의자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나름대로 이색적인 풍광을 즐겼다. 그러는 사이 친구에게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근무시간임에도 굳이 픽업하러 나와준 친구가 고마웠다. 제주시내를 지나 잠시 머물 친구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뭐 살림살이는 없어도 내 집처럼 편히 쉬어."

어쩌면 인사치레로 던졌을 이 말이 후에 얼마나 큰 폭풍으로 다가올 지 친구는 몰랐을 것이다. 툭 던지고 나가는 친구가 한없이 고마웠다.

제주에서 첫날 오후는 아무 계획이 없었기에 그냥 빈둥거리며 방에 퍼져 시간을 보냈다. 보일러를 완전히 가동시켰다. 갈 곳도 할 일도 없이 방바닥에 퍼져 있으니 평온함이 밀려와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 이 맛이 여행이다.'

그렇게 빈둥거리며 늘어져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와. 내가 맛난 거 쏠게. 뭐 먹고 싶어?"
"뭐 우리야 아무 꺼나 다 잘 먹어."

친구 안내로 도착한 곳은 바닷가 횟집이었다. 친구는 겨울이 제철이라는 고등어회를 먹자고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고등어회는 처음이었다. 횟집 주인장은 고등어회 먹는 법은 다른 회와 다르다며 짧게 설명해 주고 갔다.

알려준 대로 김 위에 여러 가지 양념으로 만든 소스를 찍어 싸먹으니 입안에 별난 맛이 퍼지며 혀를 행복하게 했다. 제주 밤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맛난 고등어회에 한라산 소주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다.

'아 좋다.'

이 이상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제주도 소주 한라산: 한라산은 두 종류가 있다. 초록색병과 무색병, 우리 입맛에는 무색병 한라산이 더 맞았다.
▲ 제주도 소주 한라산 제주도 소주 한라산: 한라산은 두 종류가 있다. 초록색병과 무색병, 우리 입맛에는 무색병 한라산이 더 맞았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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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친구는 차 키를 주며 제주 왔으니 꼭 가볼 곳 몇 군데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 말을 따르지 않았다. 차를 몰고 바람 부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사람 북적이는 관광지보다 그저 흐르는 대로 다녀 보기로 했다.

한참 운전하며 한림쪽으로 가는데 '제주 왔으니 한라산 산신령님께 인사도 드릴 겸 한라산 가자' 이 한마디에 우리의 첫 일정은 한라산 등반이 되었다. 가장 무난한 코스라는 영실계곡 코스를 택했다.

풍광이 좋기로 소문난 영실계곡에 도착하니 운무에 휩싸인 영실계곡은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눈꽃이 활짝 펴 있었다. 올 들어 처음 내린 한라산 첫눈이라고 했다. 눈 꽃핀 풍광은 오기 전 익숙했던 잘 익은 늦가을 알록달록 풍광과 교차되며 더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첫 일정인 한라산 등반은 그렇게 환상적인 풍광을 선물로 주며 우리를 반겼다. 준비 없이 간 옷차림 때문에 몸은 엄청 추웠지만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눈 호강으로 족했다.

영실계곡에 눈꽃이 피었다. 2016년 11월 23일
▲ 한라산 영실계곡1 영실계곡에 눈꽃이 피었다. 2016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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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계곡에 핀 아름다운 눈꽃, 2016년 11월23일
▲ 한라산 눈꽃 영실계곡에 핀 아름다운 눈꽃, 2016년 1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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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계곡의 눈꽃은 장관중의 장관이다.2016년 11월23일
▲ 한라산 눈꽃2 영실계곡의 눈꽃은 장관중의 장관이다.2016년 11월23일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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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초겨울 제주도는 밀감 따는 철이라 일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 밀감 따러 가자."

제주 올 때부터 밀감 따러 간다고 했지만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되든 안되든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으니 언젠가 제주에 후배 한 명이 터잡아 살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바로 전화를 했다. 마침 후배는 '착한여행'이라는 콘셉트의 작은 여행사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유목농민 여행족이야"
"유목농민여행요?"
"어 사람들 마음 속에서 모두 노동에 대한 갈망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해. 그런 갈망을 여행으로 풀어 주는 거지. 여행자의 갈망과 여행지를 연결시켜주면 여행자는 현지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며 갈망을 충족하고 그 대가로 일부 여행 경비까지 충당하게 되니 좋고, 현지인들은 그 노동력을 받아 생산성도 높이고 또 그 경비를 여행지에서 쓰고 갈 테니 좋은 거지. 이거야 말로 일타쌍피, 여행자나 현지인들이나 모두 윈윈하는 여행 아닐까?"

둘의 열정적인 '유목농민, 유목농업여행' 강의에 후배는 폭 빠져 들었다. 우리의 짧은 교화가 성공했는지 후배는 당장 밀감 따는 일자리를 알아 보겠다고 하였다. 후배를 그렇게 꼬셔 놓고 얼마나 흡족했는지 둘은 연신 낄낄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후배에게 카톡이 날라왔다.

'선배 길게는 아니고 2일 정도 가능해요?'

바로 답장을 날렸다.

'콜.

육지의 늦은 가을 제주의 초겨울, 이렇게 우리의 제주 '유목농업여행'은 시작되었다.


태그:#제주도, #한라산, #영실계곡, #무전여행, #착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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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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