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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헌재의 선고로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상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헌법수호의지'가 부족했으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위헌·위법 행위' 등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결정적인 설명과 함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을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었던 모든 근거가 바로 우리 헌법에서 비롯된 셈이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최종 선고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모습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최종 선고하는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모습
ⓒ JTBC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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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파면시킨 헌법, 언제 만들어졌을까

사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 대해 군 통수권을 비롯해 공무원 임면권, 사면권 등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끌어내릴 수 있는 '탄핵'이라는 견제장치도 설치해놨다.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는 대통령도 파면할 수 있다는 우리 헌법에 새삼 경외감을 느꼈다. 이 멋진 헌법은 도대체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도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책을 집어들게 된 계기도 바로 그런 궁금증 때문이었다. 저자인 한양대 사학과 박찬승 교수는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법학자도 아닌 역사학자가 헌법에 대한 책을 썼다니 얼핏 봐서는 의아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헌법 제1조 성립의 역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법리적 해석을 담고 있는 법학서적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헌법의 기원과 성립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역사서적인 셈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책 표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책 표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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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헌법의 기원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무려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항 직후 서양의 정치사상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개화파 관료와 지식인들이 '인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인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새로운 정치체제 도입 필요성을 느낀 그들은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관료의 권한을 확대하는 '군신공치'의 제한적 군주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변혁 시도가 바로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이다. 그러나 개화파의 급진적인 개혁 시도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민주권' 획득을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898년 성립된 독립협회는 과거 개화파의 군신동치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시도를 했다. 백성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군민동치'의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혁명이 아닌 개혁으로 정치체제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권력을 쥔 이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는 법이다. 기득권을 가진 보수 세력은 왕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고종을 부추겨 독립협회를 강제해산시켰다. 이어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뒤, 황제 1인에게 군사·행정·사법·입법 등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다. 입헌군주제에 대한 두려움이 전제군주제라는 역사적 반동으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당시의 '역사적 퇴행'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만약 독립협회의 입헌군주제 도입이 실현되었다면,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고자 체결했던 조약들 대부분이 의회의 비준을 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적어도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근대 헌법의 시작 대한민국 임시헌장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근대 헌법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저자는 그 기원을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으로 보고 있다. 3.1운동의 결과로 수립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 수립과 동시에 오늘날의 헌법의 기원이 되는 '임시헌장'을 제정·선포했다. 임시헌장의 제1조를 장식한 문구가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었다. 오늘날 우리 헌법 제1조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 중국의 헌법이나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에서도 '공화제' 국가라는 표현은 있었지만 '민주공화제' 국가라는 표현은 없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임시정부의 헌법 제1조는 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매우 과감하고 진보적인 조항이었음을 밝혀낸다.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이런 진보적인 헌법을 구상해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본 조선 사회는 일부 양반 가문이 모든 권력을 틀어쥔 비정상적인 사회였다. 토지 소유 역시 불균등했으며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탓에 하층민의 사회진출 역시 활발히 이뤄질 수 없었다.

그런데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한 이후, 사회적 불평등과 악습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고 봤다. 일제에 의한 토지 수탈과 차별교육이 그를 증명한다. 결국 이러한 구체제와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불만이 진보적인 헌법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구체제에 대한 불만이 새로운 체제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금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을 중심으로 불어오는 '개헌' 논의만 봐도 알 수 있다. 박근혜라는 거대 악(惡)과 싸우는 과정에서 지금의 헌법으로는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919년 9월 17일 열린 제6차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폐원식 기념 사진
 1919년 9월 17일 열린 제6차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폐원식 기념 사진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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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탄핵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다

아울러 이 당시 헌법에서는 임시의정원(오늘날 국회)의 임시대통령 탄핵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지도자를 끌어내릴 수 있음을 성문화한 것이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이 조항에 의해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책에서 설명하는 이승만 탄핵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탄핵 근거는 '대통령직 수행 소홀' 등으로 정리된다.

당시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오랜 시간 임정을 비워두고 있었다. 이에 임시의정원에서는 국무총리 이동녕에게 대통령직을 대리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반발한 이승만은 하와이 동포들이 임정에 보내기 위해 모금한 독립운동 자금을 자신이 이끄는 구미위원부가 쓰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임시의정원은 1925년 3월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2대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얼마 전 파면 당한 박 전 대통령을 두고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고 강조하지만, 임시정부의 역사까지 소급한다면 최초의 탄핵 대통령은 이승만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박근혜 둘 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 소홀이 파면의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평행이론'을 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박근혜를 파면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미 대통령을 탄핵해본 우리의 역사적 기억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정부 수립 초기부터 지적된 '제왕적 대통령'

해방 후 새로운 정부 건설을 앞두고 제헌국회에서는 가장 먼저 헌법에 대한 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런데 이 당시 헌법 제정을 두고 벌어진 논쟁을 살펴보면 정부 수립 초기부터 이미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제헌국회 출범 후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만든 헌법안의 정부 형태는 원래 '내각책임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제헌국회 의장이던 이승만은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로 바꾸지 않으면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국회가 한 발 물러섰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승만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필요했던 한국민주당은 대통령중심제로 당론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본래의 내각책임제 초안에는 정부의 국회 해산, 그리고 국회의 정부에 대한 불신임, 국무위원 임명 시 국무총리의 제청권 등의 규정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각책임제 관련 조항들은 내각책임제가 하루아침에 대통령제로 바뀜에 따라 대부분 삭제되고 말았다. 다만 내각책임제 정부의 성격을 갖는 몇몇 조항들은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국무원 제도,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국무위원의 국회 출석 및 발언권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만든 제헌헌법 초안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이면서도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 되었다." – p.344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의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조봉암은 "이 초안이 만들려는 대통령은 전 세기에서는 몰라도 지금의 전 세계에서는 그 예를 볼 수 없을 만큼, 제국 이상의 강대한 권한을 장악한 대통령"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초창기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조약 체결과 비준, 선전포고와 강화, 국군통수권, 계엄선포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쏠려있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역시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되었다고는 해도 실상은 제왕적 대통령을 보장하는 대통령 중심제였던 셈이다.

결국 어느 정도의 제동장치는 만들어야 한다는 반발로 인해 국무총리 임명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구하도록 최종 수정됐다. 그러나 저자는 "대통령의 권한은 여전히 막강했고, 결국 대통령 이승만의 독재를 막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임시정부의 헌법을 계승하고자 했던 제헌헌법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는 타협점을 찾기 힘들었지만, 제헌의원들은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이 꿈꿨던 이상을 제헌헌법에 담아내고자 했다. 1941년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강령으로 채택된 삼균주의가 대표적이다.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우리 헌법 전문에 명시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한다'는 구절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바로 '공화주의'다.

"제헌헌법에서 지향하는 공화국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제헌헌법은 '공화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제헌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으면서, 양자의 대립적 측면을 공화주의로써 조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은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면 공화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357

삼균주의와 공화주의를 핵심 가치로 지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은 그 자체로 건국정신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볼 때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의미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개인주의적 사조가 강화되면서 사익의 추구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볼 때, 우리는 이와 같은 제헌헌법이 담고 있는 공화주의의 건국정신을 되돌아보고 더욱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 p.358

헌법 고친 독재자들, 모두 비극적 최후 맞아

제헌헌법이 제정된 이후로도 우리 헌법은 끊임없이 개정되어왔다. 돌이켜보면 개헌의 역사는 그 자체로 수난의 역사였다. 이 땅 위에 군림했던 독재자들은 늘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노라 선서해왔지만 임기 중 번번이 개헌을 시도했다. 헌법을 뜯어고침으로써 권력연장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헌법에 손을 댄 권력자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지 않은 이도 없다. 발췌개헌·사사오입 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꿈꾼 이승만은 스스로 물러나야만 했다. 유신헌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을 통과시킨 박정희는 최측근의 총탄에 권력과 함께 목숨마저 잃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역시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려는 호헌 조치를 발표한 직후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그리고 박근혜는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파면을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헌법은 국민과 지도자 사이에 맺은 일종의 '위탁계약서'다. 국민들은 지도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조건으로 깨끗하고 올바른 통치를 주문했다. 역대 권력자들이 권력연장 목적으로 개헌을 시도한 것은 일방적인 계약위반행위였다. 권력자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은 계약 위반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였던 셈이다.

개헌, 후손들을 위한 치열한 고민 전제되어야

이제 개헌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인 것처럼 보인다. 15일 더불어민주당을 뺀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오는 5월 치러질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 하자는 데 합의했다.

1987년 제9차 개헌을 끝으로 30년 동안 우리 헌법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급속도로 진보하는 사회에서 현행 헌법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더욱이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문제점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개헌 논의는 신중해야만 한다.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과 제헌국회 의원들은 후손들에게 더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일념으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헌법의 뼈대를 만들어냈다. 새롭게 개정될 헌법은 먼 훗날, 이 땅 위를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치열한 고민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또한 헌법을 건드린 권력자의 최후가 증명하듯 권력유지의 목적으로 개헌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경계하고 검증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헌법 성립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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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박찬승 저, 돌베개, 2013.07.12,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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