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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가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여전히 '여자'라서 차별받고 억압받고, 특정 역할을 하길 강요받죠.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 사회 여성들의 목소리, 여성을 생각하는 목소리들을 몇 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편집자말]
아직 유치원을 다니던 다섯 살인가 무렵,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학원을 다녔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학원은 안쪽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었고, 주인집 누나와 친구들은 거기서 테이블에 둘러앉아 바비 인형을 꾸미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곳에 간 나는 함께 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스스럼없이 무리에 섞여 인형의 머리를 빗고 드레스를 입혔다.

어찌보면 거의 모든 시간을 엄마와 함께 했던 어린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시절 내가 호기심을 가질 만한 가장 가까운 어른의 세계는 엄마의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몰래 립스틱을 바르거나 굽 높은 구두를 신어보곤 했다. 내게 그건 여자의 일이라기 보단 어른들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집 밖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마당은 풀냄새가 향기로웠고 그늘이 시원했다. 누나들은 종종 내가 인형 머리를 묶는 게 서툴다고 타박했지만 그 조곤조곤한 말들은 도리어 편안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고 학교에 입학한 후, 내가 그런 식의 일상을 사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아이들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남자들의 놀이, 여자들이 보는 만화 같은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눈치를 채기도 전에 나는 모든 것이 여성과 남성의 것으로 양분된 세계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위치는 불안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남자 아이들의 세계는 낯설고 종종 지나치게 거칠어 보였으며 지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함께하기에 여자 아이들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네가 왜 거기에 끼어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두 집단 사이에서 나는 소속이 불안정했고 점차 학교 공동체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리고 아이들도 어른들과 다를 것은 없어서 나와 같은 친구들은 학교에서 손쉽게 폭력이나 따돌림에 노출이 됐다. 그 시절 나는 농담처럼 일기장에 그런 말을 남겼다.

"정글을 떠난 모글리는 얼마 못가 죽었을 것이다. 인간은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했던 시절, 나를 일깨워 준 여성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두 권의 책이 나를 잡아 끌었다.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다룬 <길 밖에서>와 <길을 찾아>였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두 권의 책이 나를 잡아 끌었다.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다룬 <길 밖에서>와 <길을 찾아>였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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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유년 시절, 세상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그저 '너의 것'이라고 지정받은 자리는 있었지만, 그 위치는 나에게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식의 삶을 살 것이 요구되었다. 옷은 이렇게 입어야만 하고 말은 저렇게 해야한다. 이런 제스처는 취해선 안 되며 드러내선 안 될 취미나 관심사도 존재한다.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평범한 다수가 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추어 가는 삶이 행복할 리는 없었다. 24시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몸에 배지도 않은 생활 방식을 수행하는 일은 매우 피곤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 남들은 하지 않는 이 고생을 해야할까.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벌을 서는 아이가 된 심정이었다.

그렇게 소외감과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가다, 나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마주했다.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다룬 <길 밖에서>와 <길을 찾아>였다. 처음에는 심심함이나 달래 볼 요량을 집어 들었지만, 이내 그 책은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정도로 나를 잡아 끌었다. 당시에는 처음 만난 실로 놀라운 인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여성의 권리를 선언한 올랭프 드 구주와 메어리 울스턴크래프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선 빅토리아 우드헐. 성별에 따른 사회적 위치 구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시몬 드 보부아르까지. 그리고 책을 읽은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들의 앞에 붙은 '여성으로서 최초로'라는 수식의 의미를. 그들 역시도 세상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던진 질문

즉 그 인물들과 내가 처했던 상황은 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부당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이들은 철학에서, 문학에서, 정치에서 그리고 보편적 인간과 시민의 지위에서 여성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불림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페미니즘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몇 권의 여성주의 도서를 읽은 후, 나는 말 그대로 눈이 새로 뜨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나도 미처 몰랐던 차별과 배제의 현실을 펼쳐 보였다. 물론 그 현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성별인 '여성'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별 규범을 전제로 원하지 않는 위치를 강요받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문제적 존재가 되는 경험은 나의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이러한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을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전혀 자연적이지 않은 양성의 구분, 그리고 그러한 구분이 규범으로 변한 과정과 이유, 이를 토대로 탄생한 불평등하고 유해한 성별 권력 관계를 말이다. 사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폐쇄적인 집단 생활을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폭력과 혐오로부터의 상당한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즘과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바로 어린 시절의 나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의 당신인 내가 겪던 고통들을 여전히 마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 모든 삶들을 모른 척하고 살 수 있는가. 또한 나를 아프게 한 갖은 차별과 배제 위에 만들어진, 그렇게 기득권이 부여된 남성의 자리 위에 당신은 아무 질문 없이 설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차별과 배제 위에 만들어진, 그렇게 기득권이 부여된 남성의 자리에 당신을 아무 질문 없이 설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오'였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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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전혀 그럴 수 없다'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당연한 것처럼 여성학개론 수업을 들었다. 모임에 참석해 페미니즘 책을 읽고 사람들과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단체에 가입해 회원으로서 활동했다. 때로는 글을 썼고 서명을 받았으며 피켓을 들었다. 거리에 서서 발언을 하기도 했고 차가운 시청 바닥에도 앉아 보았다.

매순간 떠올렸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에 설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혹은 가능성과 권리가 박탈된 자리를 배당받은 사람들을. 경계에 몰려 위태로움과 불안함을 느끼던 한때의 나를.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이 벅찬 순간에는 생각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만나 지금의 나로 다다르도록 이끈 책 속의 인물들을. 용감히 사회에서 자신에게 마땅한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싸운 위대한 여성들을.

페미니즘은 질문이다. 왜 특정 성별로 지정된 사람들은 삶의 가능성을 제약 받느냐는. 왜 어떤 종류의 삶은 사회에서 온당한 자리를 점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나길 반복하냐는. 왜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 폭력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인식조차 되지 못하냐는.

그리고 페미니즘은 답이다. 이러한 질문들이 결국 도전하게 되는 규범들은 결코 자연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그래서 우리는 작금의 현실을 거부하고 싸워서 바꿔야만 한다는.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은 가능성이다. 여성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성별 이분법을 중심으로 강요된 자리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차별적이지 않고, 가능성이 박탈되지 않고, 혐오와 폭력의 그늘이 드리우지 않는 온당한 자리를 가질 가능성. 그것이 실현될 이상적인 공동체를 향한 가능성.

때문에 나는 누군가 '페미니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리고 그 정의는 한때의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의 나와 같은 이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 여성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것들이다. 어찌 함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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