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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감을 다친 경우에는 후유증이 심각하다

17.02.26 15:3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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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만날 이가 있어서 길가에 서있었다.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50대의 남자가 다가와 내 앞에 섰다. 그래서 길을 물어 보려나 싶어서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실은 정보서비스를 좋아한다. '교사'에다 '사서' 공부까지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그 전부터 그랬으니 타고난 기질이다. 특히 아는 길을 물어보면 더더욱. 워낙 길치여서 모르는 곳이 많아서인지, 내가 아는 그 얼마 안된 지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엔 상대적으로 쾌감(?)지수가 급상승한다.

그런데 사내는 대뜸 "**엄마 아니여?" 라고 물었다. 이런... 실망이다. "아닌데요"라 하니 "**엄마인 줄 알았네"라 하더니 갔다. 하지만 잠시후 다시 되돌아 오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제가 광주 가려고 하는데..."라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신이 나서 손짓으로 건너편 북부터미널을 가리키며 " 이 길 건너 터미널에서 타시면 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가 더 어색한 웃음을 한가득 지으며 "광주 가야 하는데 차비가 부족해서... 천원만 주세요"라 말하였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지갑을 두고 왔는데요"라고 대답하자, 사내는 순순히 "예"라 말하더니 떠났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지갑에서 돈을 꺼내 주었을 거다.
그런데 그간 살면서 전문사기꾼에게 당한 적도, 비전문가에게 속은 적도 제법 있던 경력(?) 덕에 이젠 내가 이처럼 사기를 치게 되었다. 당시 내가 맨 가방에는 지인과의 식사에다 귀가시 장을 볼 것도 대비해 5만원이 넘게 든 지갑이랑 카드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은행통장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 나에게 누구 엄마라고 묻고 가지 않았더라면 덜 의심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과 옷에서는 제법 긴 노숙 생활의 흔적이 절여 있었다.

내가 천원을 주었어야 했을까?

10대 시절. 상가건물인 집의 지하실 방향 계단에서 함부로 찢겨진 채 뒹굴고 있던 '모금함' 상자를 보았다. 그리고 성인이었을 때 장을 보고 힘들어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쉴 때 그만 보고 말았다. 가짜 모금의 현장을.

거긴 제법 큰 재래시장에 대학병원, 병원, 약국 등이 밀집한 곳이었다. 스커트 차림새에 예쁘장하고 잘 웃는 20대 초반의 아가씨. 그리고 좀 행동이 어눌한 청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여자는 사람들이 없을 때 청년에게 무어라 소근거렸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버스를 타려고 모이자 여자애의 표정이 돌변했다. "힘들게 공부하는 대학생을 도와주세요. 장애인을 도웁시다." 나플거리는 치마 자락처럼 살살거리는 그녀. 그녀는 전문 사기꾼이었다.

대학시절. 교내에서 등교를 하는데 한 아줌마가 "어이, 학생.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에 갈 차비가 없네. 좀 도와줘"라 말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지갑을 열어 있던 돈 만 몇 천원을 드렸다. 그러면서 내가 "이건 다른 곳 버스 승차권 -예전엔 시내버스 승차권이 있었다. 그 이전엔 토큰이라던가. 동전식- 도 몇 장 있긴 한데요"라 말하니 그것도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아줌마가 집에 잘 가셨길 기원하며 즐겁게 왔다. 도서관에 와서 점심을 먹으며 아는 선배에게 이야길 했다. 그러자 4학년 선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타박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그 아줌마는 맨날 지갑 분실했다 타령이네. 수법 좀 바꾸지."

그렇다. 강아지눈에 금방 상대와 공감하는, 나는 사기꾼들에게는 손쉬운 사냥감이다. 그래서 오늘같은 일을 겪을 때마다 울적해지고, "나도 사납고 기세게 보이도록 화장하여 사기를 쳐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에휴.

내가 사기꾼이 다른 범죄자보다 더 나쁘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선량한 마음을 악용하고, 그 사람에게 불신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치는 것이 교통사고보다 후유증이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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