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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달걀 먹어도 되나요?

조류독감
17.02.23 17:01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의 달걀 먹어도 되나요?

"달구새끼가 알을 억수로 놯는디 가지고 갈끼가?"

고향집에 갈 때면 으레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수탉 1마리 암탉 여러 마리를 감나무밑에 놓아기르는데 알을 척척 낳아 고맙긴 하지만 어른 두 분이 먹기엔 그 양이 많다. 이 닭은 여름날 자식들, 손자들 몸보신을 위한 제물이 될 터이기 때문에 기르는 수를 줄일 수도 없다. 어쨌든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알콩달콩 알을 많이도 낳는다.

하지만 그 알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알이 아니다. 옴폭옴폭 들어간 네모난 종이상자에 정갈하게 일정한 크기로 뺀질짼질 들어 앉은 알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먼저 크기가 일정치 않다. 그 안에서도 세력 다툼이 있었을까? 많이 못 먹어서인지 진짜 작은 알이 있고, 개중에 큰 알은 마트에서 파는 왕란 못지않다.

크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달걀에 붙은 닭똥이다. 늙으신 부모님께서 나름 자식들에게 준다고 대충 씻어냈어도 뺀질뺀질한 알만 보던 눈이 보기에 일단 더럽다. 더덕더덕 붙은 닭똥은 내가 바로 유정란임을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다. 

어떻게 안먹겠다는 소리가 나오겠나 싶지만 막내올케는 '아버님, 달걀은 안 가지고 갈래요' 소리를 잘도 한다. 나와 첫째올케는 '가서 씻어 먹을게요'라며 아싸 계란값 굳었다며 진심 고맙게 들고 온다. 물론 아이들이 보지 않게 몰래 물에 불려 놓았다가 씻어 냉장고에 넣어놓는다. 닭똥쯤이야~~.

그러다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온 나라를 휩쓴 조류독감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사실 조류독감에 관심도 없었다. 언제든 모든 일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것이 된다. 겁도 없이 조류독감에 대한 기사를 맡겠다고 하면서 모든 일은 시작된다.

시사인을 정기구독한 지도 어언 5년차, 오래된 독자로서 어느 한 코너에 애정이 없는 곳이 없지만 문정우 대기자의 '활자의 영토'는 가장 좋아하는 코너기도 하고 워너비코너이기도 하다.

몇 주 전 488호에 관심 가는 책이 소개되었다. 미국의 역사학자.도시사회학자이자 생태학자인 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은 <조류독감>(돌베개)이다. 무려 2005년에 출간되어 2006년에 개정된 책이라니 뭔가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책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조류독감 사태를 보자면 2005년 이후 조류독감에 대한 연구나 조류독감에 대한 대처나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책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었다. 알고보니 조류독감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책이었다.

사실 그렇게 오래된 책인지도 몰랐다. 먼저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았는데 절판된 책이라고 떴다. 다시 인터넷서점에서 찾아봤다. 역시 없다. 며칠 고민하다 중고책을 알아봤다. 그렇게 배송비 2000원을 주고 4800원짜리 책을 샀다. 그 전 주인이 빼곡히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중요한 부분은 덤이다. 그인지 그녀인지 뭘 그렇게 열심히 읽었을까 살펴보는 것이 중고책의 묘미다. 그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읽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

역사광답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본지점은 조류독감의 역사였다. 조류독감. AI는 과연 어디서부터 온것인가. 그리고 과연 닭똥 붙은 아버지의 달걀을 먹어도 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르겠다'다.

1918년 H1N1(스페인독감)으로 1억명 이상의 인류가 사망했다. 그 전까지는 그저 가벼운 병으로 취급받던 인플루엔자가 사람을 그것도 그렇게나 많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사례였다. 인플루엔자는 조류와 돼지, 개, 말, 인간 등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다.

H5N1이라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처음으로 인류에게 명함을 내민 것은 1997년 홍콩에서였다. 그 이전부터 이 바이러스가 있어왔고 간간히 가금류를 죽이고 있다는 사례도 있었지만 인간이처음으로 이 바이러스가 옮을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1997년 홍콩에서 부터였다는 말이다.

물새에서 인간에게 전이된 것으로 확인된 이 바이러스로 인해 당시 감염자 18명가운데 6명이 사망했으며 홍콩당국은 모든 가금류를 살처분함으로써 이 사태를 제압했다. 이름도 H5N1이라고 고상하게 붙은 이 바이러스는 가금류는 물론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대두되었지만 일단 제압에 성공하며 '조용한 보유숙주'로 지하로 잠복했다. 그리고 2003년 중국과 동남아시아전역에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등장하며 다시 그 위용을 떨치게 된다.

2003년에서 2004년사이에 발생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가금류산업이 붕괴하는 한가운데에 '다닌 체라바논'이라는 61세의 억만장자가 있다-제스퍼 베커

'다닌 체라바논'이 세운 차룬폭판드라는 방콕소재 농산물수출기업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3년-2004년 겨울 H5N1바이러스가 다시 돌아와 전 아시아 지역의 인류와 생태계에 가공할 위협을 불러오면서 부터였다.

'아시아의 부엌이 되자'라는 거창하고 다소 섬뜩한 기업표어를 가진 이 그룹은 아시아 전역에 10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기업화된 축산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육계부분에서는 거의 흔한 구조가 된 계약사육농가를 아시아 전역에 1만농가를 보유했다고 전해진다.

계약사육농가란 대기업이 전체 생산과정을 지배하고 농민들에게 병아리와 사료와 약을 팔고 농민들은 생산물을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름만 계약사육농가였을뿐 농민들은 각자의 농장에서 공장노동자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계약사육은 대다수의 타이농가들에게 부채의 증가와 자주성의 상실, 그리고 딸들이 계속해서 방콕의 노동착취농장과 매음굴로 팔려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그룹의 성장배경에는 아시아는 물론 미국까지 아우르는 엄청난 양의 청치적 뇌물과 불법이 한몫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온 탕아인 h5n1바이러스의 재 출현도 은폐되었다. 이시점에 방콕인근 닭고기 가공공장의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로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이미 10월부터 닭을 먹지 않았다고 후에 증언했다.

웃긴점은 이 침묵의 장벽이 걷히게 된 계기는 서울이었다. 2013년 12월 서울인근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가면서 한국의 농업당국자들은 발빠르게 국제수역사무국에 이 사태를 보고했다. 일주일후 대량살처분계획이 발표되었고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 1억2천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었다.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사례도 뒤늦게 발표되었다.

이 사태 후 <네이처>는 H5N1은 이제 아시아 가금류의 풍토병으로 자리잡았고 놈은 확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아주 오랫동안 인류에게 대유행병의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네이처의 발표대로 2003년 겨울 사태이후 13년동안 조류독감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은커녕 원인마저 확실치 규명되지 않고있는데 21세기 대명천지에 생명을 가진 수억마리의 생명을 이유도 모르고 계속 파묻어 왔다니 말이 되는가싶지만 현실이다.

홍콩에서의 첫 인간감염이 확인된 후 2004년 타이 북부에서 닭과 함께 뛰어놀던 사꾼딸라가 조류독감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사꾼딸라의 엄마 쁘라니가 인간 대 인간의 첫 감염사례로 사망했다. 이후 조류에서 인간으로의 감염사례는 꾸준히 보고 되고 있지만 아직 인간대 인간대 감염사례는 보고되지 않고있다. 그러나 H5N1은 계속 진화하여H6,H7,H9의 아종이 가세했고 치명성이나 전염성은 인류가 과연 이 바이러스를 통제가능한지 의문이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이 조류독감이 공장형양계장에서 충전된 폭약이 되어 터지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유럽에서는 2025년까지 공장형 양계를 방목형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 사태의 진원지인 아시아지역에서는 논의는커녕 입도 못 떼고 있다.

해외여행은 지역에 국한되었던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퍼뜨렸다. 습지의 파괴는 평화롭게 대륙을 오가며 그들의 구역안에서 살던 야생물새들이 먹이를 구하기위해 점점 더 인간의 구역으로 가까이 오게 했다. 저수지와 관개수로 또한 야생물새의 '조용한 바이러스'를 그대로 인간의 구역으로 날라다주었다. 인간이 자연에 가한 충격은 그 배로 되어 인간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확산되는 슬럼,기업형축산업과 패스트푸드산업,부패한정부는 이 새로운 점염병이 출현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을 제공하고 이윤에 눈이 먼 제약회사들은 백신개발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충분한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가로막고 있다.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는 앞으로 도래할지도 모를 대 유행병의 사태에 인간이 어떤 대책도 갖고 있지 않음을 가질 의지도 없음을 대변한다.

저자의 말처럼 연못에서 헤엄치는 오리와 이웃집 고양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면서 우리는 H5N1의 피할 수 없는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고작 아버지의 달걀을 먹어야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면서 이사태를 지켜보자니 한심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태그:#조류독감,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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