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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 성당에서 가르친 학생, 요양원 신부가 되다

2월 19일 사회복지와 관련한 강연을 인천 답동성당의 교육관에서 들었다. 오전 강의교재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강연자가 바로 내가 27년 전에 성당에서 가르쳤던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는 중학교 1학년 학생으로 나는 인천의 한 성당에서 그 학생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로 처음 만났다. 그런데 그가 한 요양원을 책임지는 신부님이 되어서 그 자리에 온 것이다.

3년 전 일이다. 그를 24년 만에 처음 만났다. 종교를 공부하는 우리 모임에 강사로 초빙되어 그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때는 그를 몰랐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주일학교 선생님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어렴풋하게 그가 생각났다. 아주 개구쟁이로 주일학교 교리시간 분위기를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어놓곤 했던 학생이었다.

그러니까 3년 만에 다시 그를 보게 된 것이다. 자리에 앉아서 그 당시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 신부님의 강의를 하나하나 필기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어떻게 신부님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네 군데 썼는데 하도 공부를 안 해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절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꼭 붙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만약에 하느님이 대학교를 붙게 해주신다면 하느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드디어 대학교 합격발표가 있는 날 차례로 세 군데가 안 됐고 마지막으로 그 가운데 가장 센 대학교가 남았다.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친구들이랑 그것을 잊으려고 술을 마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적처럼 그 대학교에 합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마냥 좋아하며 대학 4년간을 재밌게 다녔다.

졸업하고 일반 직장에 들어가서 남들처럼 사회생활을 해나갔는데 어느 날 문득 예전에 하느님께 약속한 기도가 생각났다. 대학만 합격시켜주면 하느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겠다고 한 기도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자식을 넷 정도 낳아 신부와 수녀 되게 하고, 자신은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활동하면 그것도 큰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 성당의 신부님이 그를 보고 한번 사제가 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였다. 그 권유가 그의 마음을 몹시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하느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겠다고 한 그 기도를 되새기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어렵지만 부모님도 잘 설득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님인지라 처음에는 반대했어도 나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해주셨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는 재수생처럼 책을 파고들어서 남들 다 졸업해서 신부님의 길을 가는 나이인 29살에 신학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는 신학대학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그 심정은 내가 잘 안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27살에 대학 들어가서 학우들과 어울리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20살, 재수나 삼수했다 하더라도 21~22살이니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학대학이야말로 천사들의 세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나중에 신부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들어온 곳이니 거기야말로 천사들의 세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세계도 일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부가 되겠다고 일반 직장생활까지 그만두고 신학대학교에 들어왔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나 맞지 않아서 하루빨리 때려치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아까웠지만 자신의 앞날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딱 1년만 다니고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그렇게 정리하니 가슴속이 매우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하는 대신 1년 동안 눈 딱 감고 거기에서 가장 힘들고 궂은일들을 먼저 나서서 즐겁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 일 할 사람?" 하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가서 물불 가리지 않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을 했다.

그렇게 1년이 다 됐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함께 했던 학우들과 이별의 시간을 갖게 됐다. 둥글게 앉아서 그가 이제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가게 된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에 한 학우가 먼저 입을 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기가 신학대학교에 들어와서 적응이 잘 안 되고 여러 잡념이 생겨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는데 그를 보고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뭐든지 기쁜 표정으로 즐겁게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고 그로 인해서 그 고통을 이겨내고 견딜 수 있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맙다고 그의 두 손을 잡아주었다.

그는 할 말을 잊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 학우 앞에서 그는 자기가 신학대학을 이제 그만두게 됐다는 얘기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바꿨다. 앞으로 1년만 더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면 그 안에 그렇게 말한 그는 입대하고 없을 테니까 내년에는 편안하게 때려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일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는 다시 1년 동안 더 열심히 봉사활동 하겠다고 결심했다. 딱 1년만 더 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신학대학 생활이 예전과 달리 보였다. 그렇게 힘들고 맞지 않았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적응이 잘 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쏙쏙 귀에 들어왔다. 그는 그렇게 신부님이 되었다.


태그:#곰, #신학대학, #봉사활동, #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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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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