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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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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성주에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지 28일로 200일을 맞았다. 성주 주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을 들었다.

지난해 7월 13일 사드 배치를 발표하고 이틀 후(15일) 황교안 총리 등이 성주를 방문했을 당시 주민들은 물병을 던지며 분노했다. 황급히 차를 타고 피하던 황 총리를 향해 단 몇 분이라도 성주주민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외부세력'의 개입이라는 왜곡된 언론보도였다. (관련 기사 : 분노 "새누리당 탈당 운동 전개" 억울 "우리가 총리 감금했다고?")

주민들은 정부의 압박과 언론의 왜곡보도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해 미국 백악관 누리집 청원사이트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에 1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8월 15일에는 908명이 동시에 삭발을 했다. 또 성산포대에서 성주군청까지 인간띠잇기 행사도 진행했다.

성주군민들이 2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성주 사드 배치 반대'가 아닌 '평화를 위해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런 단결된 목소리는 평화를 염원하는 자발적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뜨거웠던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 설에 200일 맞아

<오마이뉴스>는 지난 27일 오후 매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성주군청 앞 '평화나비광장'에서 촛불을 이끌어온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 노승화 단장을 비롯해 김충환 공동위원장, 김성혜 원불교 교무, 이강태 청년위원장, 김경숙 총무팀장 등과 촛불집회 과정을 되짚어봤다.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왼쪽부터 김경숙 총무팀장, 김성혜 원불교 교무, 김충환 공동위원장.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왼쪽부터 김경숙 총무팀장, 김성혜 원불교 교무, 김충환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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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환 공동위원장은 "그동안 촛불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초전면 소성리 할매들"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소성리 할매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힘을 주셨다"며 "할매들은 청년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청년들은 할매들이 나와서 고맙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성혜 교무는 "촛불이 처음에는 얼마나 갈까 했는데 지금까지 왔다"며 "비가 오면 사람이 적겠다, 나라도 가야지. 추워서 안 나오면 어쩌나 하면서 빠지지 않고 나왔다"며 "정산종사님이 이곳에서 나셔서 그런지 성주 주민들이 모두 성자 같다"고 말했다.

이강태 청년위원장은 "처음 정부가 강압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을 때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며 "스스로 공부하고 각성하면서 시민의식이 생기고 목소리도 낸 것 같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모든 주민들이 행사의 진행팀이 되어 불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처음 성주에 사드가 들어온다고 발표되었을 때 성주군민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강태 청년위원장은 "손이 떨리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조건 군청으로 몰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이미 군청 앞에는 수천 명의 주민이 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친환경 성주에 사드가 웬 말이냐'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많았는데 성주에만 안 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드배치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며 그 이후 '성주뿐만 아니라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고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부 세력' 안 먹힌 건 인터넷 언론의 역할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노성화 단장.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노성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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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화 단장은 "황교안 총리가 다녀간 후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며 "지금까지는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면 '종북 좌파'의 개입설을 주장했는데 성주에서는 주민들이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주장이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단장은 "주민들이 언론에 대해 금방 파악했다"며 "TV조선, 채널A 등 종편과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을 믿지 않았다. 대신 오마이뉴스, 팩트TV, 뉴스민 등 인터넷뉴스가 진실을 보도해주어 많은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김충환 위원장은 "사드배치 반대를 외치니까 언론에서 님비다, 지역주의다 하면서 성주군민들을 비난했다"며 "거기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를 외쳤는데 '좌파 종북'이라는 공격이 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극복해냈다"고 회상했다.

촛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밝힐 수 있었던 데에는 SNS의 역할도 컸다. 성주에서 처음 친환경 먹거리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카오톡' 단체방은 사드배치가 결정되면서 '사드배치반대 1318'방으로 바뀌었다. 1318은 카카오톡 단톡방에 1318명까지만 참여가 가능해 붙여진 이름이다.

김경숙 총무팀장은 "염채언씨가 처음 만들었는데 성주분들이 다 알아야 하니까 사드배치가 결정된 후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순식간에 늘어나 1318명 이상 초대하지 못하게 되니까 들어오기 위해 대기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노승화 단장은 "1318방이 순식간에 알려지면서 많은 역할을 했다"며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를 할 때 상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니까 하룻밤 만에 상여가 만들어지고 피켓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노 단장은 "SNS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휴대전화가 혹사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이강태 청년위원장.
 지난 27일 오후 성주군청 옆 '평화나비' 광장에서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 관계자들과 200일 동안 촛불을 밝히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봤다. 이강태 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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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단톡방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성주군문학회 회원들은 "세월호 노란리본이 있는데 우리도 평화의 리본을 만들어보자"는 내용을 공유하며 '파란 나비리본'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성주군에서 그림을 그리던 '동네미술팀'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현수막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김경숙 총무팀장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며 "미술팀도 아이들이 방학하니까 아이들을 위해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군청 앞에 펼침막을 만들었는데 엄마들이 참여하면서 옷에 글씨도 쓰고 꽃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충환 위원장은 "지금까지 행사는 주로 관이 주도해왔는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행사가 많았다"며 "투쟁위가 주도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행사를 만들고 진행해 직접민주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촛불 위기에도 돈독한 유대관계로 극복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군민들이 20일 오후 100번 째 촛불을 들었다.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군민들이 20일 오후 100번 째 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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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진행하면서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김항곤 성주군수가 성산포대 대신 제3부지로 배치장소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주민들은 김 군수의 발표에 반발하다가 쫓겨나오기까지 했다.

김충환 위원장은 "당시 군수가 성산포대를 철회하고 제3부지를 국방부가 정하라는 요구를 발표했는데 먼저 노광희 1기 투쟁위 홍보위원장이 발표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만일 합의해서 발표했으면 동력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성혜 교무는 "군수가 제3부지로 요구한 뒤 군청의 불이 꺼지고 거리로 쫓겨나왔다"며 "비가 오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때는 사드 반대가 아니라 군수 퇴진을 외쳤다. 군수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컸다"고 기억했다.

200일 동안 하루도 촛불을 꺼뜨리지 않은 힘을 이들은 성주군민의 60%가 참외농사를 지으면서 가져온 돈독한 유대관계를 꼽았다. 또 대도시와 가까워 귀농한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도 사드 반대의 목소리를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말했다.

김성혜 교무는 "성주는 같이 참외농사를 짓는 사람들 간의 '고을에서 산다'는 강한 유대감이 있다"며 "이들이 '성주참외' 대신 '사드참외'를 팔 수 없다는 믿음이 광장으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96차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사드 밴대'가 쓰인 머리띠를 메고 박수를 치고 있다.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96차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사드 밴대'가 쓰인 머리띠를 메고 박수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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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드배치는 가능할까? 성주군민들은 어떻게든 결론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 이들은 사드가 배치되든 배치되지 않든 성주군민들은 계속해서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충환 위원장은 "사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다만 시간이 문제다"며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성주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승화 단장은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와 생각을 달리했던 주민들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혜롭게 마무리가 잘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 단장은 웃으면서 "촛불이 끝나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나 고민이 된다"며 "하지만 이런 동력들이 앞으로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주 주민들은 설날인 28일 오후에도 촛불을 들고 사드 배치 철회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날은 고향을 찾은 주민들과 함께 풍물패를 앞세워 길놀이를 시작으로 강강술래,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도 함께 진행한다.



태그:#사드, #성주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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