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기사 한눈에

  • new

    저녁 내내 싸우신 다음날은 각자 제게 전화를 하셔서 서로를 비난하세요. 그런데 웃기는 건요. 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 비난, 아버지에게 어머니 비난을 하면 싫어하세요.
"한심해, 한심해, 여편네가 아주 한심 나까무라야."
"이 인간 저 인간 그냥, 대머리를 딱 반으로 쪼개버릴까부다."

45년.

짧은 세월이 아니지요. 제 부모님이 결혼하신지 벌써 그리 되었네요. 결혼하시고 오빠를 낳으시고 또 4년 후 저를 낳으시고도 평생을 저리 티격태격 싸우시네요.

젊을 때는 베개까지 던지며 싸우신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저렇게 말로 전쟁을 치르세요. 그런데 왜 싸우셨는지 이유를 들어보면 별 것도 아니에요. 아직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퇴근 후 초인종을 눌렀는데 설거지 중이던 어머니가 잘못 듣고 늦게 열었다고.

어머니는 "아, 문 열어! 한심한 여편네야" 이랬다고 주장하시고, 아버지는 "여보, 문 좀 열어줘어~" 하고 좋게 말했는데 느닷없이 어머니가 화내시며 문열어 주면 되지 왜 성질이냐 그랬다고. 어휴.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도 없고 어느 편을 들 수 없는 자식 입장이기에 그저 묵묵히 제3지대처럼 듣고만 있답니다.

물론 아버지가 젊은 시절 어머니를 힘들게 하기도 했어요. 젊은 나이 실직하셔서 어머니가 힘들게 번 돈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살았으니까요. 저와 오빠 도시락까지 준비하시고는 본인은 아침 한술 못 뜨고 부랴부랴 출근을 하셨죠.

구로공단으로 가는 아침버스는 한 대 놓치면 만원이라 타기가 힘들었거든요. 그 당시 유기화학물질을 만지는 일을 하시다가 직업병으로 간 손상이 왔어요. 후유증인지 당뇨가 생기더니 현재는 투석과 당뇨족으로 고생을 하십니다.

실직 후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드시고는 만취가 되어 들어오시기 일쑤였고요. 실직 후 고개숙인 가장을 보듬기에 저희 집은 경제적 문제가 시급했던 상황이었기에 아버지의 힘듦보다 어머니의 고단함이 더 안쓰러웠던 시절이기도 해요. 술을 드실 때면 피곤한 몸 이끌고 퇴근하신 어머니와 다투는 날이 많았고요.

"돈 좀 번다고 유세냐!"
"그럼 돈 벌어와! 돈 갖고 와! 돈 없음 들어오지 마!"

그 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어머니가 안쓰러웠지만 돌이켜보니 아버지도 힘드셨을 거예요. 실직 후 놀고 먹는다는 생각이셨는지 어머니의 끝없는 인신공격과 비하발언도 있었고요. 어느 가장이 실직하고 싶어 하셨겠어요. 저도 부모가 되어보니 아버지 심정도 이해가 가요. 얼마나 힘드셨을지...

저녁 내내 싸운 다음 날은 딸에게 서로를 비난하는 전화

그 후 어렵게 다시 아버지는 취직을 하셨어요. 그리고 두 분의 관계는 어머니의 일방적 공세에서 팽팽한 힘겨루기를 유지하다 잠시 휴전을 하는 듯 싶더니 10여년 전 손주가 태어나고 할머니·할아버지가 되고 또다시 총성없는 전쟁을 하시네요.

"하이고~남자가 늙어가면서 왜 저렇게 좁쌀영감이 돼가는지 그냥. 어제 끓인 찌개는 버려라, 딸네집에 매일 전화해라. 지가 좀 하지!"
"한심 나까무라. 한심 나까무라. 가스불은 왜 맨날 키고 돌아댕기는지 여자가 말이 많아. 듣기 싫어!"

저렇게 저녁 내내 싸우신 다음날은 각자 제게 전화를 하셔서 서로를 비난하세요. 그런데 웃기는 건요. 제가 어머니에게 아버지 비난, 아버지에게 어머니 비난을 하면 싫어하세요. 호호.

그래서 전 바쁠 때면 부모님보다 더 부모님을 비난하죠. 아버지 전화 오면 어머니같은 여자를 만나지 말았어야 아버지가 행복하셨다, 어머니한테 전화 오면 아버지 안 만났음 엄마 아프지도 않았을 거다, 이렇게요. 그럼 두 분이,

"그래도 니네 엄마같은 여자 없어. 내가 뭐라 해도 니들은 엄마한테 잘해야 돼. 끊어!" 
"내가 아플라니까 아프지 그게 니 아부지 탓이냐. 너도 참, 너나 잘해. 끊어!"

친정 집 전화기 밑 종이뭉치 사이 다 드신 어머니 약봉지 위에 아버지 글씨를 보았어요. 어머니가 합병증으로 당뇨망막이 온 후 시력이 안좋아셔서 뭐든 진하고 크게 써드려야 잘 보시거든요. 점심, 저녁 약을 구별하여 놓으신 거였지요. 그리고 약봉투 뒤편에 볼펜으로 흘겨쓴 글씨. '내 아내는 함부로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아내가 아픈 것이 다 내 죄다'라고.

다른 아내들은 다 건강한데 본인만 아파서 직장 나가는 남편 내조도 잘 못해준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어머니.

서로에게는 그리도 다정하지 못하시면서도 속마음은 사랑하신다는 거 다 알아요. 아직도 신혼처럼 사랑싸움 하시는 부모님,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 주세요. 두분의 전우애 오래도록 보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태그:#부모님, #전우애, #부모님사진, #45년, #비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