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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정부가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가입자간 형평을 높이기 위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간 대안으로 꾸준히 제시되어 온 "자격 구분 없이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정부의 설명자료에 따르면 정부개편안으로 개정되면, ▲생활이 어려워 지하 단칸방에 살지만 월5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부담한 A씨는 최저보험료안 1만3천원을 적용받게 되고, ▲넉넉한 살림에도 직장인 아들의 피부양자가 되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았던 B씨는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또한 ▲퇴직 후에 건강보험료가 10만원이나 오른 C씨는 개편으로 보험료가 낮아지고, ▲월급 이외에 소득이 넉넉했던 D씨는 보험료가 적정수준으로 조정된다.

소득 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그간 형평성 논란이 있는 문제점을 적지 않게 개선했다. 17년만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 대해 성 또는 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던 방식은 폐지됐다. 소득이 높고 재산이 많음에도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던 사람들은 지역가입자로 전환시켜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

지난 기사에서 사례로 들었던 우병우 전 민중수석비서관의 사례를 끄집어내보자(관련기사 : 우병우의 이자 수익 4700만원, 건보료 부과 안 된다). 우 전 수석은 근로소득 이외에 27억 상당의 예금 및 해외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연간 약 4700만 원에 달하는 금융이자 소득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현행 부과체계는 소득월액보험료 부과기준이 7200만 원 미만이므로 보험료가 면제됐다. 하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1377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고소득자 봐주는 늑장 개편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가 보인다. 정부의 개편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개편을 즉각 시행하지 않는다. 3년 주기로 3단계에 걸쳐 개편이 될 예정이다. 2018년 1단계 개편안이 시행되고 2021년 2단계 2024년에서야 3단계 개편안이 시행된다. 앞선 우 전 수석의 사례를 들어보면 근로소득 외 소득에 대해 2018년부턴 연 663만 원, 2021년부터 연 1020만 원, 2024년이 돼서야 1377만 원의 보험료를 납부한다.

정부는 "보험료를 내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개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해할 수 없는 단서도 단다. "시행후 3년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되, 각 단계별로 성과를 평가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1년 반발이 심하면 1단계 개편에서 멈춰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개편안에는 송파 세 모녀 사건 등과 같은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고통보다는 고소득자의 보험료 부담을 지나치게 고려한 저의가 숨어있다. 이는 청와대가 2년 전 정치적 부담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중단했던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정부는 수치만 앞세우며 국민을 호도했지만 사실상 낮은 개편의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실제 공청회 현장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제기됐다. 김진현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지금 논의도 20년만에 처음하는 것인데 2, 3단계에서 또 이 같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3년 주기 3년 개편안이 아닌 일괄시행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또 다른 약속

한 가지 더 개선돼야 할 점이 남아있다. 바로 건강보험 재정지출에 대한 투명성 확보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 의료보장"이라는 좋은 제도이다. 그럼에도 60% 초반의 낮은 보장성을 보인다. 재정지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을 산업활성화라는 미명하에 정부의 재원으로 인식해 대기업 등에 무분별하게 "지원성" 투입하는 것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도 높이고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개편안의 목표와 같이 공평하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재정지출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공평한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정부는 늑장 부리다 여론에 떠밀려 개편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고소득자 눈치보기,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한 개편안이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간다. 20대 국회가 "소득 중심", "일괄(개편) 추진", "재정지출 관리" 등 산재한 숙제를 제대로 해낼지 지켜볼 때이다.


태그:#건강보험, #건강보험 부과체계, #소득중심, #지역가입자, #경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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