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해 4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사전투표 현장 '민주주의 꽃은 선거입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지난해 4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모든 공직에 정년을 두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후 JTBC <뉴스룸>은 팩트체크를 통해 표창원 의원의 주장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공직에 정년을 두는 것은 참정권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표창원 의원은 JTBC 팩트체크의 주장을 재반박했다. 그는 독일의 사례를 들면서 "독일 대부분의 주에서 시장 및 군수 선거에 있어서 피선거권 연령 상한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피선거권의 연령 상한을 두는 이 법에 대해 독일연방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어째서 모든 공직에 정년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그는 공직에 정년을 도입하면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청년에게 더 폭넓고 활발한 참여 공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다만 은퇴한 공직자는 경험이 풍부한 '어른'으로서 갈등과 대립이 있는 곳에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표 의원은 제론토크라시를 언급하며 공직에 정년을 도입하자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년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특권층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론토크라시란 '고령자에 의한 지배'로 노년층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여 젊은 세대에게 권한을 넘겨주지 않고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 의원은 소수 특권층의 예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을 들었다.

정치인의 문제는 나이에 있지 않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는 표 의원이 주장한 정년 도입에 반대한다. 우선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참정권은 국민이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말하며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선거권의 연령을 낮추면서까지 참정권을 확대하는 추세에 피선거권에 상한을 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표창원 의원이 제시한 사례처럼 독일은 공직에 정년을 두고 있는 국가다. 하지만 독일의 피선거권 상한 규정은 시장과 군수 같은 자치단체장에만 적용되고 하원의원과 대통령, 총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현재 77세로 표 의원이 제시한 정년 기준인 65세를 넘는다. 어째서 독일이 자치단체장에 한해서만 피선거권에 상한을 두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정년이 모든 선출직에 적용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표창원 의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고위 공무원에게만 없는 정년을 특권이라고 주장하며, 그 특권을 누리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데도 노인복지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표창원 의원이 인터뷰에서 말한 특수 기득권의 청산과 노인복지 개선이 과연 정년제 도입으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정년을 도입하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을 '강제퇴직' 시킴으로써 이들을 쫓아낼 수는 있겠지만, 이들이 물러나는 이유는 '나이' 때문이지 무능력이나 부패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고령의 정치인들이 현직에 머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 복지가 실현되지 않는 까닭은 이들의 나이 때문이 아니라 무능력과 부정부패 때문이다. 이들을 유능하고 청렴한 사람들로 교체하면 노인 복지는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시스템은 정년이 아니라 무능한 정치인들을 끌어내릴 수 있는 제도다.

특권의 기준을 정년이 있느냐 없느냐에 두는 것도 문제가 있다. 지금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정년이 없는 것이 특권으로 보이는 까닭은 정부가 성과연봉제나 유연근로제를 들어 평범한 사람들의 안정적인 노동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정년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안정적인 노동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이든 선출직이든 공평하게 만 65세 정년을 두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잠시 정년이 없는 것을 특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제하고, 선출직과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는 차이점을 짚어보겠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정년제가 어느 곳에 적용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정년제는 공무원들에게 적용된다. 적어도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공무원이 잘릴 일은 없다.

반면 선출직은 임기가 끝나면 정년과 상관없이 물러나야 한다. 공직에 정년을 둔다 치더라도 국회의원은 4년만 하면 끝이다. 임기가 끝난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면 그는 직장을 잃는 셈이다. 선거 때마다 당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65세가 넘으면 피선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처사일 수 있다. 선출직뿐만 아니라 임명직인 장관과 비서실장도 종신직은 아니다. 정년이 없는 것을 특권으로 보려면 최소한 공직자의 임기가 법적으로 무기한일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 선출직은 국민이 투표를 통해 뽑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갈아치울 수 있다. 그들의 '정년 없는 특권'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정년 이후 삶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부터 바꿔야

공직에 정년을 도입하자는 논쟁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정년제를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다. 정년을 도입해 일정 연령에 도달한 사람은 퇴직하고 새로운 사람이 영입되는 구조가 사회의 순환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사람이 정년을 넘으면 '쓸모가 없고', 젊으면 '쓸모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부 사람들은 정년이 지난 노인들을 퇴물로 취급한다.

유럽에는 사회정년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이 일정 연령까지 일하면 사회에 공헌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근로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정년을 대하는 인식은 사회정년처럼 바뀌어야 한다. 논쟁에서 종종 보이는 "늙어도 나잇값 못한다" "노인네들은 빠져라"같은 날선 발언은 갈등만 더 키울 뿐이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사람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표 의원의 견해는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표 의원은 "노인폄하 발언을 하지 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다른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의 원로까지 나서서 "65세 정년 발언을 반성하라"고 표창원 의원을 비판했다. 이는 '정년'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는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년은 '직장에서 내쫓기는 것' 아니면 '늙고 무기력한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년퇴직한 노인들을 폄하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가 갖는 인식은 반드시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개개인이 갖는 예절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수 사람들이 노인을 공경해도 법과 제도가 노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면 정년과 노인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 '노인복지 후진' 이런 것을 보면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가질 수가 없다.

노인 빈곤이나 노인복지 문제는 법과 제도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년층은 노인의 복지를 개선하는 정책을 펼치는 정당보다 복지를 축소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꺼리는 정당에 투표한다. 이런 불합리한 면을 보고 노년층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년층을 제외한 다른 세대에서도 복지축소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특정 세대에게만 노인 문제의 책임이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아무리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

나는 표창원 의원이 제시한 선출직 공직자 정년제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표창원 의원의 정책 제안을 가지고 '노인폄하' 운운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인폄하'를 운운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노인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태그:#선거권, #정년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