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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블랙리스트가 등장했다. 그것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그 정점에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 청와대가 있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있다. 문화체육계 인사들 중에서 정부정책에 비판적이거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사람, 단체를 분류해서 정부보조금이나 사업을 맡기는데 있어 일정한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blacklist)가 무엇인가?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으로 흔히 수사 기관 따위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마련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었고, 어떻게 사용되었느냐에 따라서 큰 파장을 불러와 사회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이다. 이번 블랙리스트의 경우, 우리 헌법적 가치에 반한다. 개인의 인격을 실현하는데 불가결한 자유로 민주주의 토대를 형성케 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헌법 제21조), 누구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것이며(헌법 제19조), 합리성이 없는 자의적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의 원칙(헌법 제11조)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형법상으로도 작성에 관여하거나 공모한 자에 대하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알면서도 묵인하였다면 직무유기, 그리고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숨기려는 과정에서 증거인멸죄를 구성하게 된다.


처음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만 해도 청와대와 관련부서는 부인하기에 급급하였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었는지, 그 대상은 어느 정도인지, 실제로 어떤 불이익이 가해졌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거듭되다가 그 실체가 하나하나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급기야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실체를 부인하기에 급급할 뿐 어디서 어떤 경위로 작성되었는지를 함구하고 있다.


특히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근무했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관부 장관의 태도는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들이 아니다.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국회로부터 위증 혐의로 고발조치를 당하였다. 특히 조윤선 장관의 태도는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이해할 수 없다. 여성정치인으로 비교적 깨끗하고 바른 정치인의 모습으로 투영되었던 그녀였기에 국민들의 실망감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욱이 조윤선 장관은 지난 1월 9일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7차 청문회에 출석했으나 증인선서를 거부하여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였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작성에 관여했거나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 장관은 국조특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특위에서 구인장을 발부하려 하자 오후에 출석하였다.


그리고 출석해서는 선서를 거부한다. 조 장관은 "성실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지난 국조특위에서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의원 분들이 질의한 것에 답한 것이 위증 의혹이 있다고 특검에서 고발했다"면서 "이미 저에 대해 고발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에 따라서 지금 어떤 말을 하더라도 향후 수사나 재판 영향 미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선 법적으로 증인 선서나 증언을 허용 안 해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선서거부 이유를 밝힌 것이다.


조윤선의 선서거부, 타당한가


그의 선서거부나 증언거부 태도가 타당한지 하나하나 살펴보자.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는 증인 등의 출석과 증언의무를 규정하면서, 제3조에서는 증언 등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거부사유는 형사소송법 제148조와 제14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제148조(근친자의 형사책임과 증언거부) 누구든지 자기나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한 관계있는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1.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자

2.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


제149조(업무상비밀과 증언거부) 변호사, 변리사, 공증인, 공인회계사, 세무사, 대서업자,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약종상, 조산사, 간호사, 종교의 직에 있는 자 또는 이러한 직에 있던 자가 그 업무상 위탁을 받은 관계로 알게 된 사실로서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단, 본인의 승낙이 있거나 중대한 공익상 필요 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


위와 같은 형사소송법의 규정은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 근거한다. 조 장관의 경우 앞서 자신이 청문회에 출석하여(지난해 11월 30일) 증언한 부분이 위증이라고 국회에서 고발한 마당에 다시 자신이 반대의 증언을 할 경우 불이익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위증죄의 여부를 가리는 형사재판에 이번 증언이 증거로 사용되어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 증언했던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번에도 그대로 증언하면 된다. 증언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할 이유가 없다. 지난번 증언이 위증이라면 이번에 그 위증을 바로잡는 증언을 함으로써 오히려 형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국회에서 감정, 증언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 후단 참조). 따라서 선서를 거부하거나 증언을 거부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법의 취지를 보더라도 이러한 경우까지 증언거부나 선서거부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문회에 출석한 조윤선 장관은 한 국회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다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증언 내용은 지난번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내용의 증언과 배치되는 것이다. 다만 이번 증언의 경우 선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고, 조 장관이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국회의원에게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하여 그렇게 답변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난 번 증언의 유죄 증거로 사용하기도 어렵다.


또한 이번 증언의 경우 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증죄로 처벌 받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선서를 하지 않고 교묘한 답변을 함으로써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는 셈이다. 국민들은 조 장관의 이러한 태도에서 법비(法匪)를 떠올린다. 법비란 공직자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알고 있는 교묘한 법논리를 내세워 빠져나가는 경우를 일컫는다.


한편, 조 장관은 청문회에서 우리나라 최대의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에 변호사로 근무하는 남편과 카카오톡 대화를 통해서 자문을 구한 다음 답변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감정, 증언에 관한 법률 제9조는 증인의 보호를 규정하면서, '국회에서 증언하는 증인은 변호사인 변호인을 대동할 수 있다. 이 경우 변호인은 그 자격을 증명하는 서면을 제출하고, 증인에 대하여 헌법 및 법률상의 권리에 관하여 조언할 수 있다(제1항)'는 규정에 근거하여 변호사인 남편으로부터 법률적 조언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법률적인 것에 한한다. 증인은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바를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것으로 사실관계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법률적인 조언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답하라는 것은 사실관계를 왜곡시키는 것이어서 법률자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관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변호사가 진술을 일정한 방향으로 하도록 조언하는 것은 위증교사죄에 해당한다. 따라서 조 장관의 남편이 카톡으로 조언한 것은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위증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음을 살펴야 할 것이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특별검사의 수사에서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수사를 받고 구속에 이르고 있다. 지금 드러난 바로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주관한 것으로 보이고,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을 정점으로 해서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된다.


주로 어느 부서의 누가 작성을 했던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정무수석은 이를 못하도록 했어야할 막중한 위치에 있었다. 또한 비록 청와대의 지시라 하더라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그 시행을 거부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가장 핵심적으로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청문회까지 불려나와 거짓증언을 일삼고 있다. 국민들에게 실소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정말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이 이 정도였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입니다. 


태그:#조윤선, #블랙리스트, #청와대비서실장, #김기춘, #문화계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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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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