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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이상 고온 현상으로 자연 생태계에 이런저런 좋지 않은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겨울이 따뜻하면 봄에 해충이 창궐한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강원도 지역은 빙어 축제나 산천어 축제 등도 열지 못할 정도로 날씨가 푹해서 도민들의 한숨이 깊다. 거기에 AI의 창궐은 청정 지역 제주도까지 미쳤으니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대한 결과들이 하나둘 인간을 찌르는 창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소비일색의 삶의 양식과 공장식 축산 생산 방식을 바꾸고, 로컬 푸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 사회 스스로 자립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 최소한의 먹거리라도 자본의 교환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얻어가려는 노력만이 이런 문제들을 점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되돌릴 수 없는 너무 먼 길을 달려온 것은 아닌지 두려움도 들고, 나 혼자 그렇게 산다고 해서 이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하겠는가 회의감도 든다. 그러나 큰 바다의 시원이 작은 이슬 한 방울이듯 그냥 나는 그렇게 나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갈 뿐이다.

강원도 소초 노지에서 캐온 겨울냉이를 다듬고 있다.
▲ 냉이 강원도 소초 노지에서 캐온 겨울냉이를 다듬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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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9일)은 봄날처럼 날씨가 따스해서 바깥나들이 하기가 좋은 날이었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에 사는 작은 누님으로부터 지난가을 담갔던 김장 김치가 남아돈다며 김치가 무르기 전에 가져다가 만두 속이라도 해서 먹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새로 개통된 광주·원주 간 고속도로 덕분에 30분은 앞당겨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빠름'이라는 편리성이 너무도 깊이 들어와 있고, 그것은 '천천히'와 '느릿느릿'이 가진 미덕을 은폐한다. 신자유주의는 천천히, 느릿느릿의 미덕뿐 아니라 '텅 빈 충만'과 같은 동양적인 것들, 심지어는 죽음과 생조차도 철저하게 은폐시킴으로 현대인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느낄 겨를이 없이 만든다. 그리하여, 기꺼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죽음과 삶의 경험은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이뤄졌다. 장례식을 통해 죽음을 보고, 아이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생사의 문제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었으며, 먹거리를 자연에서 얻는 경험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과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됨을 터득했다. 그런 환경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을 키워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면, 반듯한 매장에 깨끗하게 포장되어 진열된 것이 아니면 먹기를 거부한다. 자본은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은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 주먹, 5명 식구 한 상에 올라올 정도의 양으로는 충분하다.
▲ 냉이 한 주먹, 5명 식구 한 상에 올라올 정도의 양으로는 충분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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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도졌다.

그냥 겨울 들판에서 로제트 이파리를 한 냉이가 지천으로 퍼진 것을 보았고, 마침 땅이 얼지 않아 쉽사리 캘 수 있었고, 조금 다듬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한 줌 다듬어 된장찌개에 넣었더니 한겨울 노지 냉이가 가진 향기가 장난이 아니더라. 그리고 냉이의 효능을 살펴보니 이런저런 좋은 것이 많더라. 냉이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향으로 먹는 나물이라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겨울에 노지 냉이를 먹었다고 자랑하면 그만일 것을, 무슨 신자유주의가 어쩌고저쩌고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나의 오래된 고질병인 것을 어쩌랴.

블랙리스트에 혹시 내 이름이 있나 찾아봤으나 문학이나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있을 리가 없다. 혹시 다른 블랙리스트에는 이름이 있을까 싶다가도 있어도 없어도 그 얼마나 고약한 일인가 싶다. 어쩌자고 그렇게 사람을 네 편 내 편으로 가르고, 자기편으로 여겨지는 이들만 챙기는가?

향기 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냉이만도 못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따스한 봄, 향긋한 냉이 향 같은 세상이 오길

된장국에 냉이를 넣었더니 봄내음이 가득하다.
▲ 냉이된장국 된장국에 냉이를 넣었더니 봄내음이 가득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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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냉이로 냉이된장국을 끓였다.

냉이 된장국에는 직접 키운 콩나물, 그래서인지 대가리가 유난히도 고소한 콩나물에 가을에 말려두었던 시래기 약간과 봄에 말려둔 고사리가 더해졌다. 그런데도 냉이 향이 온 집에 가득하다.

노지 냉이의 힘이리라.

공주밤을 넣은 밥을 훌떡 냉이된장국에 말아 먹으니 몇 그릇이라도 먹을 것 같지만 애써 참고 한 그릇만 먹는다.

지난 월요일 해온 냉이로 냉이된장국을 끓여 먹는 날 아침, 서울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란다. 냉이국으로 속이 든든해진 덕분인지 밖에 나왔는데 그리 추운지 모르겠다. 하긴, 아직 저 멀리에 있는 봄을 미리 몸에 모셨으니 어찌 추우랴!

풀 한 포기도 이렇게 향이 깊어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는데, 그 어떤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서서 어찌 그리도 썩은 내만 진동하는가? 그분도 냉잇국이라도 먹으면 좀 향이 날 수 있을까?

공주밤을 까서 냉동실에 두었다가 밥에 넣어 함께 지었다.
▲ 밤밥 공주밤을 까서 냉동실에 두었다가 밥에 넣어 함께 지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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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냉이는 1월 9일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노지에서, 밤은 지난 가을 공주에서, 된장국에 들어간 콩나물은 시루에 직접 키운 것입니다.



태그:#냉이, #봄나물, #향기, #먹을거리,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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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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