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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돌비석에 고구려 혜관 스님의 이야기가 써있단 말입니까?"

어렵사리 찾은 이바라키현 근본사의 가미하라(上原) 주지스님[일본에서는 주직(住職, 쥬쇼쿠)]은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되레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또 한다는 말이, "본당(대웅전)이 원래 이 자리가 아니었는데 본당을 세우면서 이리로 옮긴 것입니다. 그때 이 돌비석의 유래를 몰라 그냥 버리려다 이곳에 옮겨 온 것이지요."

아뿔사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주지 스님한테 절의 유래를 들으러 갔다가 되레 기자가 절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럴려고 멀고먼 한국에서 이바라키현 가시마시(茨城県 鹿嶋市)까지 낯선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나 싶어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

근본사 1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으로 알려진 이바라키현의 근본사 산문(일주문)
▲ 근본사 1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으로 알려진 이바라키현의 근본사 산문(일주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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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사 2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으로 알려진 이바라키현의 근본사 산문(일주문)
▲ 근본사 2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으로 알려진 이바라키현의 근본사 산문(일주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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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기자는 근본사(根本寺, 곤뽄지)를 찾아가기 위해 이른 아침 도쿄역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근본사가 자리한 가시마(鹿嶋 또는 鹿島)까지는 고속버스로 두어 시간 걸렸다. 가시마진궁역이 종점인 곳에 내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간신히 근본사에 도착한 기자는 인기척 없는 경내를 살피다가 본당 앞에 이끼 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오호라! 이 비석이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월의 더께를 뒤집어쓴 탓에 비문은 쉽게 해독이 되지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니 본당 옆에 '근본사종무소'라는 간판이 작게 달려 있어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한참을 지나 '하이'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빠끔히 열렸다. 책을 읽고 있었는지 늦은 잠을 자고 있었는지 주지스님은 눈을 비비며 무슨 일이냐고 했다.

"저, 본당 앞의 돌비석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만..."

돌비석이라면 자신도 아는 바가 없다면서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약간은 귀찮아하는 듯 보였다. 기자는 잽싸게 돌비석이 본당 앞에 세워지게 된 경위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주지스님은 고개만 빠끔히 내밀던 종무소에서 신발을 신고 본당 앞의 돌비석으로 나왔다.

창건기 본당 앞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기가 적혀 있는 돌비석(앞쪽), 뒤쪽은 에도시대 유명한 마츠오바쇼의 시비
▲ 창건기 본당 앞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기가 적혀 있는 돌비석(앞쪽), 뒤쪽은 에도시대 유명한 마츠오바쇼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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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주지 스님에게 1702년에 만겐시반 스님이 지은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 혼초고소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상주 녹도(鹿嶋)의 근본사(根本寺)에 가서 이틀 밤을 묵으며 전각 안을 두루 관람하였는데 혜관 승정의 비(碑)가 있었다. 모서리는 닳았지만 글자 획은 또렷하였다. 주지가 말하길 '이 절은 혜관 때 개산하였다'라고 하기에 옛 기록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였다. 생각건대 옛날 무뢰명 진코케이운 원년에 녹도를 나와 나라 미카사군에서 살아 서로 사귀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탁발을 이리로 옮겨 동민을 타일러 교화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뒷줄임)<餘抵常州 鹿嶋。信宿根本寺。歷觀殿裏。有慧灌僧正之牌。堂慧灌 楞側弊朽。子畫燦然。主曰。慧灌當時開山也。問古記無有之。按昔武雷命。神護景雲元年。出鹿嶋居奈良三笠。郡好相接故。移甁錫諭東民歟。(後略)>"

에도 시대의 승려 만겐시반(卍元師蛮(1626~1710)은 일본 전역을 30년간 발로 뛰어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 1702)>을 썼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에도(江戶)에 이르기까지의 고승 1664명의 행적을 기록한 일본 최고(最高)의 고승전으로 지은이 만겐시반은 옛 자료를 토대로 30년간 일본 전역을 직접 발로 뛰어 이 책을 남기고 90살로 입적했다.

이 책에는 일본의 초대승정을 역임한 고구려 혜관 스님을 비롯하여 성실종의 시조인 백제의 도장 스님 등 고대 한국 출신 스님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나 한국에는 그 내용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315년 전, 일본승(日本僧) 만겐시반은 기자처럼 고구려 혜관승정의 발자취를 확인하고자 가시마(鹿嶋)의 근본사를 찾아 주지스님과 대화를 나눴다. 당시 근본사 주지 스님은 명확히 고구려 혜관스님이 이 절을 개산(開山, 산문을 연다는 뜻으로 창건을 뜻함)했다고 했다. 그리고 절 경내를 돌아보니 돌비석이 서있었고 그 돌비석에는 혜관 스님이 창건한 절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비석이 서있었다고 했다.

혜관스님  이끼낀 상태지만 '동방약사여래..'라는 글자 등 몇몇 곳은 육안으로 지금도 해독이 가능하다. 이 비석 4행에 혜관스님 이름이 보인다.
▲ 혜관스님 이끼낀 상태지만 '동방약사여래..'라는 글자 등 몇몇 곳은 육안으로 지금도 해독이 가능하다. 이 비석 4행에 혜관스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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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석 고구려혜관 스님의 창건기가 적혀 있는 돌비석 앞에 선 기자
▲ 돌비석 고구려혜관 스님의 창건기가 적혀 있는 돌비석 앞에 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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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낀 상태지만 '동방약사여래...'라는 글자 등 몇몇 곳은 육안으로 지금도 해독이 가능하다. 이 비석 4행에 혜관스님 이름이 보인다.

기자가 근본사에 대한 사서(史書)의 기록을 들려주자 그때서야 주지스님은 돌비석에 관심을 보였다. 몸을 구부리고는 이끼 낀 돌비석을 읽어내려고 한참 동안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돌비석 옆의 활짝 핀 납매화(臘梅花)와 기자는 그런 스님의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탁본을 좀 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지만 탁본은커녕 고구려 혜관 스님과 관련된 돌비석인지도 몰랐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 여기 써있군요. 여기 보세요. 고구려 혜관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요."

주지 스님은 몸을 구부린 채 기자에게 손가락으로 "혜관(惠觀, 이 돌비석에는 惠觀이라고 되어 있으나 慧觀이라고도 쓴다. 기사에서는 慧觀을 따른다)"이라고 쓴 글자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몇몇 글자는 해독이 가능하였다.

돌비석의 글자는 세로로 모두 6행으로 이뤄졌으며, 첫 줄은 "동방약사여래(東方藥師如來)..."로 시작하고 있었으나 군데군데 해독이 가능한 글자를 빼고는 탁본을 해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작스런 기자의 방문에 돌비석의 정체를 알게 된 가미하라 주지 스님은 잠시 종무소로 들어가더니 <추고천황칙원소(推古天皇勅願所) 서옹산소사(瑞甕山小史)>라는 근본사의 유래가 적힌 전단을 가지고 나와 기자에게 건넸다.

"이 절은 스이코천황(推古天皇) 때에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호국흥륭을 위해 지은 절이다. 본존은 동방약사여래를 모셨으며 일본 최고(最古)의 절이다. 개조(開祖)는 고구려 혜관 대승정(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처음에는 삼론종(三論宗)에 속했으나 이후 법상, 천태에 이르러 중세에는 선종으로 바뀌었다.(뒷줄임)"

사전(寺傳)에 있는 창건 유래는 근본사 본당 앞 커다란 오석(烏石)에도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다. 근본사가 일본 최고(最古)의 절이라고 써놓은 것은 스이코천황(推古天皇593~628) 발원 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불교가 백제성왕 때(552년) 유입되어 얼마 안 된 시기에 창건한 절임을 감안하면 관동 최고(最古)의 유서 깊은 절임에는 틀림없다.

근본사의 유래 1 본당 앞에는 근본사의 유래를 검은돌에 새겨두었다.
▲ 근본사의 유래 1 본당 앞에는 근본사의 유래를 검은돌에 새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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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사의 유래 2 유래에는 고려 (고구려)혜관대승정의 개조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 근본사의 유래 2 유래에는 고려 (고구려)혜관대승정의 개조라는 글자가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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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근본사는 근세의 도쿠가와막부 시절만 해도 말사 2개사와 암자 5곳을 거느리는 규모였지만 명치 때 폐불훼석(廢佛毁釋, 불교사원에서 승려들을 몰아내고 불교를 탄압한 사건으로 그 대신 신도'神道'를 육성함)으로 근본사의 사세(寺勢)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되자 때마침 지역의 토호 신사인 가시마신궁(鹿島神宮)은 더욱 세력을 확대하게 된다.

실제로 이바라키현의 가시마시(鹿嶋市)는 가시마신궁의 참배객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아예 도쿄에서 빈번하게 가시마신궁 앞까지 오는 고속버스가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근본사는 하츠모우데(정초 새해맞이 참배) 손님도 거의 없다고 했다.

절 주변에 큰 신사(神社)가 없는데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군마현의 미즈사와절(水澤寺) 같은 곳은 정초 기도를 위해 찾는 참배객들로 넘치지만 근본사는 정초에도 조용했다고 한다. 절이든 신사든 찾는 이가 많아야 경영도 원활하고 종사자들도 신명이 날 텐데 근본사는 1981년(소화 56)에 가서야 지금의 본당을 겨우 중수할 정도이니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느낌이 확 든다.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관동지방 세 곳의 절을 찾아 떠나기 전 기자는 한국에서 미리 군마현의 수택사(水澤寺, 미즈사와데라), 광은사(光恩寺, 고온지)에 주지스님과 연락을 해두었었다. 그러나 이바라키현의 근본사는 주지스님에게 메일로 사연을 보내려고 아무리 누리집(홈페이지)을 찾아도 없어 그냥 출발했었다.

마침 광은사에 갔을 때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던 고바야시(小林)씨를 알게 되어 근본사 주지스님을 어떻게든 전화로 섭외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1주일을 기다려도 소식이 감감했다. 고바야시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메일을 보내와서 '근본사에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마냥 주지스님과의 약속을 기다릴 수 없어 기자는 어제(10일) 무작정 근본사를 찾아 나선 참이었다. 다행히 주지스님은 종무소에 있었지만 자신이 주석하고 있는 절의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은 갖고 있지 못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주지를 맡고 있는 가미하라(上原) 주지스님은 먼 곳에서 찾아온 기자를 처음에는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일본의 경우 절 경영이 어려운 곳에서는 주지스님이 아르바이트로 택시운전을 하거나 별도의 직업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근본사 역시 형편이 어려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주지스님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기자의 말을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기자를 찍어 주겠다고 했다.

동방약사여래 본당 앞에는 돌비석 첫줄에 나오는 '동방약사여래'상이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은 근대에 만든 것이다.
▲ 동방약사여래 본당 앞에는 돌비석 첫줄에 나오는 '동방약사여래'상이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은 근대에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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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돌비석 때문에 처음에 석연치 않던 응대가 호감으로 바뀐 것은 다행이었다. "이 돌비석은 매우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중에 꼭 탁본을 해주십시오"라고 기자는 돌비석에 대해 신신당부를 했다.

근본사 경내의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기(創建記)가 적힌 돌비석의 공개는 국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본조고승전(本朝高僧傳, 혼초고소덴)>에 나오는 혜관스님에 관한 논문을 기자가 처음 썼기 떄문이다. 사실 고구려 혜관스님의 기록은 국내에는 전무하지만 일본에는 다음과 같은 많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日本書紀>, <元亨釋書>, <本朝高僧傳>, <續日本紀>, <日本三代實錄>, <日本紀略>, <類聚國史>, <三論師資傳>, <僧鋼補任(興福寺本)>, <僧鋼補任抄出>, <扶桑略記>, <日本高僧傳要文抄>, <東大寺具書>, <內典塵露章>, <三論祖師全集>, <東大寺續要錄>, <三會定日記>, <東大寺圓照行狀>, <東國高僧傳>, <淨土法門源流章>, <寧樂逸文>, <平安逸文>, <鎌倉逸文>, <大日本古典文書>, <大日本史料>, <淨土依憑經律論章疏目錄>, <三論宗章疏>, <東域傳燈目錄>, <諸宗章疏錄>, <大正新修大藏經>, <日本大藏經>, <群書類從>, <續群書類從>, <續續群書類從>등

위 기록 가운데 혜관스님에 관한 가장 자세한 책은 1702년에 만겐시반 스님이 30년간 일본 전역을 발로 뛰어 쓴 <본조고승전>이다. 기자가 근본사 경내에 돌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본조고승전>이 전하는 고구려 혜관스님에 관한 기록을 더 보자.

"석혜관(釋慧灌)은 고구려 사람이다. 수나라에 들어가 가상대사 길장(吉藏)에게 삼론종의 종지를 받았다. 스이코왕 33년 정월 초하루 본국(고구려)에서 일본으로 보내와 칙명으로 원흥사(元興寺) 머물러 있게 하였는데 공종(空宗, 곧 삼론종)을 부지런히 강설했다. 이 해 여름에 가물어서 왕이 혜관을 불러 비를 빌게 하였다. 혜관이 푸른 옷을 입고 삼론을 강설하니 비가 크게 와서 왕이 크게 기뻐하고 발탁하여 승정에 임명하였다. 백봉(白鳳)10년 봄 2월에 와슈 선린사(禪林寺)가 완성되어 혜관을 청해다가 낙성을 경축하는 도사(導師)로 삼았다. 혜관은 또 가와치 시기군에 정상사(井上寺)를 창건하여 삼론종을 널리 폈다. 나이 90에 멸도하였는데 본조(일본) 삼론종의 시조다. <釋慧灌 高麗人。入隨從嘉祥寺吉藏大師禀三論旨。推古三十三年正月元日。本國貢來。勅住元興寺。盛說空宗。是歲夏旱。詔灌祈雨。灌著靑衣演講三論。大雨卽下。天皇大悅。擢任僧正。白鳳十年春二月。和州禪林寺成。請灌爲落慶導師。灌又河內志紀郡創井上寺。弘通本宗。垂年九旬以滅度。爲本朝三論宗始祖焉。>"

혜관스님의 족적을 알 수 있는 완벽한 이 기록은 1702년에 만겐시반 스님이 해놓았다. 그리고는 이바라키현 가시마(鹿嶋)의 근본사를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기자처럼 말이다.

마츠오바쇼 근본사는 에도시대 유명한 시인인 마츠오바쇼가 다녀갔다고 해서 곳곳에 시비가 서있다.
▲ 마츠오바쇼 근본사는 에도시대 유명한 시인인 마츠오바쇼가 다녀갔다고 해서 곳곳에 시비가 서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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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의 발상지인 아스카(飛鳥), 최전성기인 나라(奈良) 시대에 창건한 절은 거의 고대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 시대의 사원건축이 백제나 고구려의 영향이 짙다는 사실(史實) 또한 국내외의 수많은 연구서들이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하드웨어에 속하는 것들로 소프트웨어는 뭐니 뭐니 해도 '고승'들의 활약이다. 불교가 어디 건축물만으로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그 안에서 울고 웃었던 사람냄새 물씬 풍기던 주역들은 역시 고승들이다.

나라시대의 실력자인 후지와라씨의 중병을 낫게 한 치료승 백제의 비구니 법명스님, 초대 승정이 된 고구려 혜관스님, 역법(曆法)을 전한 백제 관륵스님, 일본세기를 지은 고구려 도현스님, 화엄경의 첫 강설자인 신라의 심상스님 등등.

이들이 머물렀던 절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일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고구려 혜관스님의 창건 유래를 간직한 관동 3사(寺) 답사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1월 10일 사이에 이뤄졌다. 걸음걸음마다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기자를 따스하게 맞이해준 군마현의 수택사(水澤寺, 미즈사와데라), 광은사(光恩寺, 고온지), 이바라키현의 근본사(根本寺) 주지스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올린다. 다음 기회에 다시 답사할 절을 공부한 뒤 기사를 이어 갈 것을 다짐해본다.

★ 고구려 혜관스님의 유서깊은 절 근본사(根本寺, 곤뽄지) 가는 길
   * 주소: 茨城県鹿嶋市宮中
   * 전화: 0299-82-4720
   * 가는 길: 도쿄역에서 가시마진구역행 고속버스로 종점인 가시마진구역(鹿島神宮駅)에서 내려 11분 거리에 있다. JR가시마진구역(鹿島神宮駅)에서 정면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7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100엔숍이 보이고 이 건물을 따라 오른쪽 길로 첫 번 신호등이 나올 때까지 4분정도 걷는다. 2차선 도로를 끼고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무덤이 나오고 좀 더 내려가면 신호등이 나오는데 신호등 오른쪽으로 난 동네 길로 들어서면 근본사에 닿는다. 도쿄역에서 JR열차가 있으나 편수가 적으므로 고속버스가 편하다. 시간대별로 다르지만 보통 1시간에 2~3대 다니며 요금은 1830엔, 약 2시간 여 걸린다.

*일본한자는 약자체를 쓰나 약자체 지원이 안돼 구자체로 표기함을 이해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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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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