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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은 2017년 1월 1일부터 버스삯이 모두 1000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시내 버스삯이 1300원인가요? 고흥에 사는 시골사람이니 서울에서 버스삯이 얼마 하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는 읍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1700원씩 치렀으니 버스삯이 700원 내린 셈이에요. 저희는 읍내하고 15km쯤 떨어진 마을(도화면 신호리)에서 살기에 1700원이에요.

저희보다 읍내에서 더 먼 곳에서 사는 분이라면 2200원이나 3500원도 내요. 4000원이 넘어가는 마을도 있어요. 도양읍이나 봉래면이나 도화면 지죽리 같은 곳에서 읍내를 거쳐서 동강면 같은 곳을 가자면 6000원을 웃돌고요.

버스삯이 바뀌었다는 알림판이 버스 유리창에 붙었다. 그런데 군에서 늘 해온 대로 마을방송으로 미리 알려주었으면 다들 진작에 아셨을 텐데.
 버스삯이 바뀌었다는 알림판이 버스 유리창에 붙었다. 그런데 군에서 늘 해온 대로 마을방송으로 미리 알려주었으면 다들 진작에 아셨을 텐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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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들쑥날쑥하면서 '읍내하고 먼' 마을에서 살수록 버스삯을 더 많이 치러야 했는데, 새해부터 어디에서 버스를 타든 모두 1000원만 내도록 하는 얼거리로 바뀌었어요. 시골 어르신들이 읍내나 다른 마을로 자주 나들이를 다니시지는 않습니다만, 버스삯 1700원이니 1900원이니 2200원이니 2700원이니 4200원이니 하면, 천 원짜리하고 백 원짜리를 챙기기 만만하지 않아요. 이런 대목에서도 한결 나아졌다고 할 만해요.

시골은 도시하고 많이 달라서, 교통카드를 안 쓰는 어르신이 대단히 많아요. 그냥 맞돈을 챙겨서 타시지요. 그런데 막상 버스를 타자니 잔돈이 없어서 어쩔 줄 몰라하시기도 합니다. 잔돈을 미리 챙기지 못한 어르신은 버스를 탈 적마다 버스 기사한테 타박을 듣습니다.

시골버스 손님은 으레 할머니 할아버지.
 시골버스 손님은 으레 할머니 할아버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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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을 달리는 버스
 시골마을을 달리는 버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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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버스삯이 1000원으로 똑같으니 어르신들이 버스 기사한테 타박 듣는 모습은 더 안 볼 수 있구나 싶고, 버스를 타며 잔돈을 챙기느라 허둥대시는 모습도 더 안 볼 만하구나 싶어요. 깊은 시골에 사는 어르신이라면 버스삯 짐이 퍽 홀가분하게 줄어들 테고요.

시골에서는 버스를 타는 손님이 거의 할머니하고 할아버지예요. 여기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있고요. 이러다 보니 시골버스에서는 '경로우대'나 '경로할인'이 따로 없습니다. 고흥군에서는 버스회사와 협약을 맺고 '고흥군 1000원 버스' 제도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을 보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본다면, 전남 신안군처럼 고흥군도 '완전한 버스공영제'로 바꾸어 군에서 버스회사를 넘겨받아서 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신안군에서는 모든 버스가 '무상버스'이거든요.

신안군에서는 '완전공영 무상버스'로 바꾸고 나니, 그동안 군에서 버스회사에 해마다 대주던 지원금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공영버스를 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손님이 있으면 바로 택시처럼 작은 버스를 몰아서 태울 수 있기도 한답니다. 효율과 예산 아끼기에서도 '1000원 버스'는 징검돌이요, 앞으로는 시골에서 새로운 버스 얼거리인 '무상버스'가 태어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에요. 버스회사에 지원금을 주기보다 군에서 그 지원금보다 적은 돈으로 버스회사를 꾸리는 길이 주민복지에서도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가을날 시골버스는 멋진 여행버스하고도 같습니다. 2016년 10월.
 가을날 시골버스는 멋진 여행버스하고도 같습니다. 2016년 10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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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는 곳, 또 버스를 타고내리는 곳은 포근하며 고즈넉한 모습입니다. 2014년 10월
 버스를 기다리는 곳, 또 버스를 타고내리는 곳은 포근하며 고즈넉한 모습입니다. 2014년 10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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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고흥군 '1000원 버스' 뒷이야기를 하나 적어 본다면, 군에서 2017년 새해에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면서 제대로 알리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새해에 갑자기 바뀐 제도예요. 이리하여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내던 분들은 그만 예전 버스표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버스삯이 1700원이거나 2200원이거나 3200원이거나 한 마을에 사는 분들은 예전부터 '버스표를 한꺼번에 여러 장 끊어'서 마을에서 읍내로 나올 적에 내곤 했어요. 교통카드를 거의 안 쓰시니, 다들 잔돈을 미리 챙겨야 하니까,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쓰시지요. 그러니까 군에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서 새해 첫날부터 받아들인다면, 마을 어르신이 버스표를 미리 끊어서 '못 쓰는 표'가 생기지 않게 알려줬어야지요.

군에서 무슨 행사를 하면 그동안 이레나 열흘에 걸쳐서 아침 낮 저녁으로 마을방송을 했어요. 이번에 버스삯이 바뀌는 제도를 놓고는 마을방송이 한 차례도 없었어요. 읍내 버스역에 알림판도 안 붙었을 뿐더러, 알림판이 있다 한들 '글씨 못 읽는 할머니'도 많은데, 그 알림판은 거의 쓸모를 못 했겠지요.

마을과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시골버스. 2016년 4월
 마을과 들과 숲을 가로지르는 시골버스. 2016년 4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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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타기에 좋은 버스, 또 시골 아이들하고 청소년도 타기 좋은 버스로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3년 10월
 어르신들이 타기에 좋은 버스, 또 시골 아이들하고 청소년도 타기 좋은 버스로 거듭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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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스삯을 내리는 일뿐 아니라, 시골버스를 좀 부드럽게 달리도록 하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버스삯은 1000원으로 내렸으나, 예전이나 요즈음이나 버스를 너무 거칠게 몰아요.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버스 손잡이를 움켜잡아도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몹시 힘듭니다. 읍내에 한 번 다녀오면 다들 속이 거북해요.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느낌이니까요. 앉아서 손잡이를 꽉 잡더라도 굽이진 길에서는 짐이 구르고, 사람마저 쓰러질 판이기 일쑤입니다.

저희한테도 '못 쓰는 버스표'가 제법 생깁니다. 돈으로 치면 아까울 수 있지만, 그동안 고흥에서 버스표가 바뀐 자취를 돌아보도록 남겨 보자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고흥에 처음 깃들던 2011년에는 누런 종이로 조그마한 표였다가, 생김새가 한 차례 바뀌고, 또 한 차례 바뀌었어요. 버스삯도 1500→1700→1000원으로 바뀌었군요.

자리가 없으면 바닥이나 짐에 앉는 시골 할머니. 2015년 5월
 자리가 없으면 바닥이나 짐에 앉는 시골 할머니. 2015년 5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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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러니까 2013년까지 쓰던 오래된 고흥군 시골버스 종이표
 예전에, 그러니까 2013년까지 쓰던 오래된 고흥군 시골버스 종이표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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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고흥에서 살면서 표가 바뀌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봅니다.
 2011년부터 고흥에서 살면서 표가 바뀌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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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시골노래, #고흥, #천원버스, #무상버스, #시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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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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