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은 지난해 12월 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박영수 특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시행자들에 대한 기소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뿐만 아니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특검 소환도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는 9일 김종덕 전 문화체육부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에 대해 직권남용과 위증 혐의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과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리스트 작성뿐 아니라 예산배제·차별지원 등 정황 인지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박근혜 정부 들어 각종 문화계 지원정책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인사들의 명단을 말한다. 이들은 정부에 밉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적인 차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앞서 지난 6일 이 문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공식 확인했다. 특검은 청와대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실무부처인 문체부를 통해 실제로 정책집행에 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이들이 블랙리스트를 정책활동에 적용한 구체적인 정황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규철 특검보는 9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만으로는 직권남용 죄를 묻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저희도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리스트를 만들고 문화정책 예산을 배제하거나 적극 지원하는 등 별도의 정황을 인지했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특검팀은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한 4명의 법적 처벌에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이 특검보는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 문제는 국민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네 명이 말맞추기를 하거나 증거인멸 정황이 있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말맞추기나 증거인멸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이 특검보는 김기춘 전 실장이나 조윤선 장관 조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잡힌 게 없다"라고 덧붙였다.

조윤선 "블랙리스트 죄송하지만, 나는 관여 안 했다"

큰사진보기
▲ 청문회 증인석에 앉은 조윤선 장관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7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도중 두 눈을 감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특검이 이번에 구속영창 청구한 인사들을 보면 김 전 실장 및 조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시점에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 장관은 구속영장 청구 예정인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의 직속상관이었다.

하지만 조 장관은 자신은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해선 알았지만 작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날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깊이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문건의 작성에 대해서는 "본 적도 없고 제가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면서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블랙리스트는 교육문화수석실과 정무수석실이 함께 추진한 일인데, 업무 계통이 다른 두 수석실의 '합동작업'의 지시 주체로 그보다 윗선인 김 전 실장이 꼽히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평소 정부나 대통령에 비판적인 내용의 전시나 영화 상영을 방해하도록 지시해왔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일에는 김 전 실장의 지시가 꼼꼼히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 원본을 확보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 수첩에는 김 전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홍성담 화백을 고발하고 전시를 무산시키는 데 깊숙이 관여한 정황,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방해한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