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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 초록의 것들이 유독 눈에 밟혀서

창고 천정작업의 시작
 창고 천정작업의 시작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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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카페로 꾸민 창고는 J가 유독 신경을 많이 쓰고, 공을 들인 공간이다. 외벽 작업에 이어 내부 천장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창고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푸르게 뻗어나가고 있는 저 넝쿨들이 보기 좋아 천장을 그대로 노출시키려 했다. 하지만, 지붕을 바로 노출하자니 여름에는 너무 더울 것이고, 겨울엔 또 너무 추울 것 같아 결국 합판을 치기로 했다.

창고 천정 합판치기
 창고 천정 합판치기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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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합판을 고정시켜 줄 각목을 사이사이 하나씩 고정해주고, 스티로폼으로 단열작업을 한 후에 합판을 재단하여 각목 상에 고정시켰다. 그러던 중에 유독 넝쿨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던 부분이 눈에 밟혔다. 저 부분을 보이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부분을 살리면 어떨까?! 투명한 유리나 아크릴 같은 걸로 막아서 말이야..."

나는 얘기했고, J는 그러겠노라 했다(주로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때론 정말 얼토당토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J는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내가 말한 부분을 남겨두고, 합판 작업을 완료하였다.

나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고민하는 J
 나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고민하는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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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것들을 보이게 만든 투명 창.
 초록의 것들을 보이게 만든 투명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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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문제의 그 부분! 내가 툭 하고 내뱉은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J.. 고민 끝에, 유리는 무거워서 어려울 것 같고, 아크릴판으로 해야겠다 싶어 동네 철물점과 문구점을 다 돌아보았다. 하지만 크기가 작은 아크릴판이 전부였다. 아쉽지만 그 작은 것이라도 공수하여 J는 너무도 멋진 투명 천장을 만들어냈다. 하하! 저 초록의 풀들이 선명하게 잘 보인다. 예쁘다-!

넝쿨 대신 조화와 탁구공 조명으로 만들어진 천장 조명
 넝쿨 대신 조화와 탁구공 조명으로 만들어진 천장 조명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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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투명 아크릴 너머로 보이는 초록의 넝쿨이 너무도 예쁘고 생명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아 좋았는데... 공사를 진행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초록의 잎들은 점점 시들어갔고,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시련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했던가!

넝쿨이 다 떨어져 텅 비어버린 저 천장을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해보기로 했다. 육지에서 공수해온 조화들을 넣고, 탁구공 조명을 만들어 넣었다. 그랬더니 마음에 쏙 드는 천장조명이 만들어졌다. 처음의 초록 잎들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넝쿨의 줄기와 몇몇 살아남은 건강한 잎들도 사이사이에서 보였다.

#. 삼다도표 돌길

예부터 바람 많고, 여자 많고, 그리고 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 그래서인지 집 공사를 하는데 여기저기에 돌을 참 많이 사용했다. 심지어 집 건물이 흙 돌로 지어진 집이다. 마당에 다닐 길을 만드는 데에 조그마한 돌멩이들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까운 계곡에 가서 작은 돌멩이들을 주웠다.
 가까운 계곡에 가서 작은 돌멩이들을 주웠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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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마당에 삥 둘러 걸어 다닐 길을 만드는데, 자갈을 퍼다 깔아봤지만 영- 마음에 들지가 않던 참이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J가 샤워실 앞에 만들어 놓은 작은 돌계단을 보고는 영감을 얻은 나는 J를 데리고 조약돌이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제주는 아무 곳이나 가면 돌들이 그냥 쌓여 있다. 우리만의 비밀 장소(?)에 가서 돌을 주워왔다. 이왕이면 동글동글 예쁜 녀석들로 골랐다. 그리고 근처 석재상에 가서 판석을 구해왔다. 부정형 판석. 혹은 난석이라 불린다.

원래는 가운데 잔디 자리를 비워두고, 자갈을 깔아 자갈길을 만들어 두었었다. 그 자갈길을 없애고 다시 새로이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퍼다 나른 자갈을 다시 열심히 퍼 담아야 했다(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부정형 판석을 마당에 모양을 맞춰 깔았다.
 부정형 판석을 마당에 모양을 맞춰 깔았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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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앞마당에 배달 온 판석을 한 장 한 장 깔았다. 모양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잘 맞추어서 놓아야 한다. 판석을 쫙 깔아 놓은 후, 보통은 판석 사이 간격을 좀 더 좁게 해서 매지(줄눈)를 넣고 마무리하면 끝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언가 색다른 것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J가 판석을 자리에 놓을 때에 나는 열심히 주워온 돌멩이들을 크기와 모양별로 분류하고 있었다.

시멘트 반죽을 묽게 하여 판석 사이를 메꿔준다.
 시멘트 반죽을 묽게 하여 판석 사이를 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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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돌멩이들을 고무망치를 이용해 시멘반죽에 박아준다.
 주워온 돌멩이들을 고무망치를 이용해 시멘반죽에 박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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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반죽을 조금 묽게 해서 판석 사이사이 공간을 메꿔준다. 간격이 넓으니 시멘트도 꽤나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날도 덥다. 나는 열심히 반죽을 퍼서 부어주고, J는 흙손을 이용해 쭉쭉 펴준다. 하루 종일 걸린 것 같다. 그리고 바깥 샤워실 앞 작은 계단에서 나온 몹쓸 아이디어가 바로 이것이다.

주워온 돌멩이들을 시멘트가 굳기 전에 하나하나 판석 사이 공간에 박아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덥고, 돌멩이가 엄청 많이 들어간다. 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꾹꾹 눌러 넣는다.

판석 사이 간격이 큰 부분은 돌멩이로 문양을 만들어주었다.
 판석 사이 간격이 큰 부분은 돌멩이로 문양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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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다도표 돌길
 삼다도표 돌길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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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빗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띄어쓰기 같은 물길을 내어주고, 하루가 꼬박 걸려 완성했다. 다 해놓고 보니, 돌멩이를 한 천 여개쯤 박은 것 같다. (사서) 고생한 만큼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왔다. 바람, 여자, 돌이 많은 삼다도표 돌길이다.



태그:#제주옛집, #농가주택고치기, #셀프리모델링, #오래된집에머물다, #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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