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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4차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이화여대 세 교수의 언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정유라 특혜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 것은 자신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예견된 일이긴 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대학 자체 조사 내용까지 부정하면서 정유라의 입학이 특혜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모습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의 행위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방송을 시청하면서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저 장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초등학생도 알 만한 뻔한 거짓말을 태연자약하게 늘어놓고 있는 '교수님'들의 추하고 파렴치한 모습에 대통령은 분개했을까?

아니면 그들의 거짓 증언을 질타하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고자 힘을 쏟고 있는 의원들의 행위에 분개했을까? 이런 느닷없는 물음이 솟구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군통수권자이면서 또한 교육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당연히 전자이어야 함에도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그녀의 대통령 후보 시절 3차 TV토론회에서의 일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과거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해직 교사 변호를 맡은 것과 당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전교조 위원장 출신 이수호 후보를 지지하는 것 등을 문제 삼아 왜 전교조와 친하게 지내느냐고 따져 물었다.

2012년 12월 16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열린 사회·교육·과학·문화·여성 분야 후보자 초청 3차 토론회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보다 앞서 도착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박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2012년 12월 16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열린 사회·교육·과학·문화·여성 분야 후보자 초청 3차 토론회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보다 앞서 도착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박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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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문 후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불법단체도 아닌 전교조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기에 나 또한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전교조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동안 전교조가 해온 일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들고 출범한 전교조는 무엇보다도 거짓 교육을 청산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거짓 교육으로 학생들을 바른 삶으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교조가 탄생하기 전의 모든 교육이 거짓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전교조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일들이 참이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거짓 교육의 최종 피해자가 학생들이며, 그것을 여실히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침묵해야 했고, 혹은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굴종의 삶'을 더 이상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의지였다. 전교조의 존재적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겠다.         

'전교조 27년, 그리고 그 후를 위하여'란 부제가 붙어 있는 <다시, 닫힌 교문을 열며>(양철북)를 읽었다. 이 책은 전교조가 기획하고 전교조 교사인 윤지형이 집필한 전교조 이야기다. 그는 책머리에서 "누군가 은연중 상상하고 바랄지도 모르는 '하나의' 전교조란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 이유가 뭘까? 

"하나는 추상이고 관념이다. 하나의 전교조 혹은 두 갈래의 전교조가 아니라 무지개 일곱 빛깔의 전교조가 삼천리 방방곡곡,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할 수 있다. 때론 빽빽이 함께, 때론 드문드문 홀로인 듯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묻는다. 나는 왜 전교조를 이야기 하고 싶은가? 그건 한 마디로, 선생 노릇한 지 30년이 넘는 동안 내게 전교조는 참 괜찮은, 살아 볼만한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 왜 그러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나는 또한 단박에 대답할 수 있다. 전교조 동네에서 나는 정말 멋진, 훌륭한, 아름다운, 헌신적인 선생님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고 그는 무조건 전교조, 혹은 전교조 교사들을 두둔하지 않는다. 그도 전교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배 권력의 집요한 '전교조 죽이기'나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막무가내 험악한 비방과 매도를 일단 옆으로 밀쳐 두면 좀 제대로 하라는 회초리로서의 전교조 안팎의 비판이 내 앞을 성큼 가로 막는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학교가 깡그리 망하지 않는 한은 내일도 존재할, 아니 존재해야 마땅한 그런 선생님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그의 다음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한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면 거기 전교조는 꽃처럼 피어난다. 그 행복의 가능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한 전교조는 거기 살아 있다. 그러나 그 교사가 어느 날 경쟁 교육이나 수월성 교육 체제의 옹호자로 돌아서면 거기 전교조는 사라지고 없다. 혹은 한 교사가 권력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강행에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거기 전교조는 꽃피어 있다. 그러나 그 교사가 권력에 순응하거나 동조마저 하게 되면 그 순간 전교조는 시든 꽃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나는 2016년 2월 정년퇴임을 하였다. 나에게 전교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전교조는 '사랑'이었노라고. 그 사랑은 내가 매일 같이 교단에서 만난 '내 학교 내 아이들'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전교조를 만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눈 내리는 새벽, 1986년 1월 5일 한 소녀가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렇다. 한 소녀가 죽었다. 중학교 3학년생이었다. 아이가 '친구 H'에게 보낸 유서 편지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올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떨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 준 사랑스런 엄마. 너무나 모순이다. 모순, 세상은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아니 대학! 대학! 공부만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가감 없이 말하자면, 나는 눈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의 언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전교조 27년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해일처럼 일었지만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

이유는? 하나가 아닌 전교조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 저자의 노고를 아둔한 내 글 솜씨로 짧은 지면에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저자 윤지형의 전교조와 교육에 대한 순정한 마음까지 비껴갈 수는 없었다.

저자 윤지형은 2016년 현재 법외노조의 처지에 내몰려 있는 전교조를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왜 문제적인가? "우선 숙명과도 같은 지배 권력과의 불화부터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술회한다. 그러면서 "권력은 속성상 교육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포기한 적이 없는데 반해, 전교조는 교육의 자주성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라는 말을 덧붙인다. 전교조는 출범하면서 '참교육 실천'을 선언한 바 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문제적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참된 교사, 참된 교육, 참된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 선언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문제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사들의 순정한 양심에서 터져 나온 이 같은 자기반성적 선언은 뜨거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최소한의 마땅한 응답이었지만, 곧바로 전교조의 존재이유가 되었고, 동시에 양날의 칼과도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바깥의 거짓 교사, 거짓 교육, 거짓 사랑을 치는 칼이면서 내 안의 그것들도 가차 없이 쳐야하는 양날의 칼 말이다. 문제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문제적인 거짓 교육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 또한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의 전교조가 과연 그 일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성찰은 필수불가결하다 할 것이다. 그동안 전교조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구어낸 눈물겨운 열매들을 상기한다면 환골탈태와 분골쇄신의 정신으로 더욱 정진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전교조의 역사와 지향과 마음 혹은 전교조 교사들의 삶을 열쇠 말 두 개로 풀고 있다. '투쟁'과 '공부와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1부 '투쟁의 길'은 출범 전야에서부터 27년 항해까지의 역사와 사학 정상화, 교육대개혁과 공교육 정상화 등 전교조가 교육과 교사를 지배하려는 권력과 싸워 온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교사, 민족의 교사, 국민의 교사로서 말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부터 비정상 학교의 정상화 투쟁, 비민주적 학교 현장의 민주화 투쟁, 교육과 관련한 법과 제도의 개선 투쟁까지를 두루 담고 있다.

2부 '공부와 실천의 길'은 대안 교과서, 전교조신문과 <우리교육>, 분과 활동과 참실연수 등 공부와 실천에 대한 내용으로 전교조 교사들의 공부를 향한 부단한 열정과 그 풍성한 결실들 그리고 협력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교과별, 주제별로 모인 교사들의 공부와 교실에서 한 실천은 그야말로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해 온 것이니만큼 그 의미가 성과는 더욱 빛난다. 현장 교사들의 애환과 삶의 향기가 묻어있는 교단일기와 혁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을 요한다. 그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장의 이야기를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전교조 교사 식별법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기획하고 전교조 조합원인 윤지형이 쓴 '전교조가 전교조를 말하는' 책이 나왔다.
▲ '다시, 닫힌 교문을 열며' 표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기획하고 전교조 조합원인 윤지형이 쓴 '전교조가 전교조를 말하는' 책이 나왔다.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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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책을 읽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 순간도 있었다. 전교조가 출범한 1989년 여름이었다. 한 시사월간지는 당시 문교부가 대외비로 일선 학교 교장들에게 보낸 공문 하나를 입수해 공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다. 내용은 이렇다.   

*촌지를 받지 않은 교사.
*학급 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신문반, 민속반 등의 특활반을 이끄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아이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자기 자리 청소를 잘 하는 교사.
*학부모 상담을 자주 하는 교사.
*사고 친 학생을 정학이나 퇴학 등 징계를 반대하는 교사.       

이런 전교조 교사들을 식별해내어 상을 주자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당시 교장이 왕인 학교에서 눈엣가시인 '벌떡 교사',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의 지배 아래 숨 막히는 학교의 '민주 교사'를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의 관리자들은 학교 현장에서 본 바를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본의와는 전혀 상반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겠지만 모처럼 정직한 일을 한 셈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윤지형은 월간 <우리교육>에 3년여 동안 연재한 '인물로 만나는 교육운동사'를 묶어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20년의 비망록>을 상재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청년 교사시절부터 전교조의 역사와 교사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한 나머지 이십년 넘게 발품을 팔아 <나는 왜 교사인가>, <다시 교육의 희망을 묻는다면>, <세상의 교사> 등을 펴낸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교조가 전교조의 삶과 진실을 가만가만 들려주는 책'에 대한 갈증을 어쩌지 못하고 또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다음은 책 맨 앞장에 적힌 이 책의 헌사다. 

참교육, 전교조와 함께 인생을 살아온 수많은 교사들과 우리 교육의 이후를 이끌어갈 갈 젊은 교사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사리사욕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악한 부패사학재단에 맞서 싸우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지켜낸 참교사들의 이야기며, '교육대학살'로 인해 교단을 떠나야했던 1500명 해직교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 등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거나 갈피를 접어놓은 곳이 부지기수지만 지면관계상 부족한 서평을 이 정도로 갈무리해야할 것 같다.

다만, 전교조의 일과 역사를 전교조 조합원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적극적 의미의 소개서로 전교조가 기획된 이 책에는 교육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온 전교조 스물일곱 살의 역사와 그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은 꼭 해야할 것 같다. 참담한 세월을 겪으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지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왜 권력이 저토록 집요하게 그들의 뜻을 꺾으려 했는지, 그들이 온몸을 던져 이루고자 했던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닫힌 교문을 열며 - 전교조 27년, 그리고 그 후를 위하여

윤지형 지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기획, 양철북(2016)


태그:#전교조,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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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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