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제때 식사를 챙겨 먹이며 늘 제대로 안 먹는다고 불만이다. d아이들은 파나 마늘은 어떻게든 골라내기 일쑤고 가리는 것도 많다. 학교급식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다 먹도록 하지만 그때 뿐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나 부모가 안 계신 아이들은 다르다. 언제든 허기가 진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포만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사랑에 주려서 그렇다.

저 아름다운 설경 속에서 어머니 없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참으로 많이 울었다. 배고픈 동생들은 미동도 않고 이불 속에 웅크렸고, 얼어 죽지 않으려면 나무를 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물이 끓으면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멀건 국이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 오색리 설경 저 아름다운 설경 속에서 어머니 없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참으로 많이 울었다. 배고픈 동생들은 미동도 않고 이불 속에 웅크렸고, 얼어 죽지 않으려면 나무를 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물이 끓으면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멀건 국이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느냐 할 이들이 분명히 있다. 6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탓에 두 돌이 채 안 된 여동생과 큰집에 더부살이를 갔던 난 항상 눈칫밥을 먹었다. 여동생은 배가 봉곳하게 불러 뒤로 넘어갈 정도가 되어도 수저를 놓을 줄 몰랐다. 그런 동생을 사촌들은 놀리고 괴롭혔다.

2년 정도의 더부살이 끝에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왔을 때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항상 쌀을 아껴야 했기에 나물이나 시래기를 잔뜩 넣고 쌀 한 줌으로 밥을 지어 두 동생과 배를 채웠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땔감을 가득히 쌓아 놓을 정도가 되자 굶는 일이 없게 됐다.

강서구 양천로에서 '맛대로촌닭'이란 닭집을 운영하는 최원호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우 뭐해? 낼 시간되면 가게로 좀 와줘."

"무슨 일이신데요?"

"와보면 알어. 시간 되지?"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가면 되죠?"

"12시까지는 와야 돼. 아이들 한 20명 닭 먹이려고 그래."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떤 아이들 20명에게 닭을 먹이는데 내가 필요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제법 오래전 장애인들을 매달 초청해 점심을 먹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10년쯤 지난 지금도 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광장에서 몇 번 본 윤성림씨한테 전화를 했다.

"성림씨 내일 낮에 일정이 있나요?"

그는 어느 곳의 연말 행사에 노래를 부르러 갈까 생각중이라 했다. "그런 자리보다는 마음 나눌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주면 어떻겠느냐" 설득해서 승낙을 받았다.

지하철로 까치산역까지 이동해 윤성림씨를 만나 그의 차로 맛대로촌닭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밖에서 정리를 하던 최원호 사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형님 어떤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데 저까지 필요해요? 10년 전에 말씀하셨던 그 친구들인가요?"

"그때는 장애아동들이었어. 그 친구들은 부모가 계시잖아. 3년 전부터는 고아원 한 곳과 매달 한 번씩 아이들을 초청해 점심을 먹게 하는데 아주 어린 애기부터 많아. 오늘은 처음에 20명이 온다더니 30명 정도가 오겠다고 하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자원봉사를 나온 이들이 인사를 했다. 자녀 둘을 데리고 일손을 돕겠다고 온 분부터 주방에서 음식준비를 거들러 오신 분들,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온 레크리에이션 강사까지 주인 내외를 빼고 총 11명이 자원봉사를 나서서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이제 3살 막 되었음직한 아이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30명의 아이들이 봉고차 두 대로 도착했다. 처음 보는데도 냉큼 안기는 아이를 가게 안에 데려와 의자에 앉히고 몇 번 더 밖에 나가 아이들을 맞았다.

자리에 모두 앉은 뒤 주방에서 조리 된 평양칠향계부터 테이블 위에 냈다. 4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평양칠향계다"라고 외친다. 최원호 사장이 애기 때부터 여기 왔다고 일러준다.

아이들은 처음 만났어도 낯을 가리지 않고 붙임성 좋게 안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렇게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30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맛대로촌닭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천진함 아이들은 처음 만났어도 낯을 가리지 않고 붙임성 좋게 안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렇게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30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맛대로촌닭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스스로도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이 아이들을 위한 초청행사에 자원봉사를 나왔다. 한꺼번에 자리한 아이들을 위한 음식준비에 세분의 자원봉사자와 주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 자원봉사 스스로도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이 아이들을 위한 초청행사에 자원봉사를 나왔다. 한꺼번에 자리한 아이들을 위한 음식준비에 세분의 자원봉사자와 주인은 바쁘게 움직였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주방에서 준비되는 아이들을 위한 음식은 총 4가지로 메뉴 하나당 3~4명이 먹을 정도 된다. 여기에 콜라와 떡 과일, 과자까지 아이들을 위해 준비됐다. 훗날 행복한 삶들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음식을 날랐다.
▲ 평양칠향계 주방에서 준비되는 아이들을 위한 음식은 총 4가지로 메뉴 하나당 3~4명이 먹을 정도 된다. 여기에 콜라와 떡 과일, 과자까지 아이들을 위해 준비됐다. 훗날 행복한 삶들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음식을 날랐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음식을 모두 내고 잠시 밖으로 나와 최원호 사장에게 "아이들이 의외로 평양칠향계도 잘 먹네요"라 하자 "어른보다 더 잘 먹어"란다. "저기에 볶음밥도 주겠죠?"라 묻자 "이제 시작이여. 치킨에 어머나도 먹고 볶음밥까지 먹어야 아이들 먹는 거 끝나"라 했다. 평양칠향계 한 냄비가 어른 4명이 먹을 양인데 거기에 튀긴 닭 한 마리와, 닭고기를 넣고 떡볶이를 한 어머나를 먹은 다음 볶음밥까지 먹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정에 주리면 늘 허기가 진다는 걸 알기에 아이들이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리라 생각됐다.

"그런데 형님, 참 대단하십니다. 평양에 닭집을 내고 곧장 갈 수 없어 손해가 이만저만도 아니고 어려우신데 어떻게 매달 이렇게 아이들을 초청할 수 있어요?"

"그건 나하고 한 약속이여. 저렇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면 좋잖아. 사실 오늘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도 모두 힘들어. 임대아파트에 살고 그러는 이들은 달려와 도와주지만 정말 어렵지 않은 사람들은 온다고 해 놓고도 잘 안 와."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입장을 잘 알죠. 어쨌든 이번에 좀 나라가 나라답게 바뀌어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부터 남북경협사업까지 모두 다시 재개되면 좋겠습니다. 입만 열면 애국 타령을 하는 것들이 정작 통일이나 남북간의 교류는 막는 꼴 더 보기 힘듭니다. 남북교류를 통해 우리가 준 것보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득을 보고 있었는데 그걸 중단시키는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이젠 확실히 끝낼 땝니다."

"그려. 나도 평양 내 가게 가보고 싶어. 잠시 집에 좀 다녀올게 어머니 식사 챙겨야 돼."

고양시로 가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돌아온 최원호 사장 내외에게 아이들이 직접 만든 고마운 마음을 담은 이야기들이 전달됐다. 작은 손으로 저마다의 표현을 했을 아이들은 최원호 사장 내외에게 인사말을 적은 패널이 전달될 때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 감사 인사 고양시로 가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돌아온 최원호 사장 내외에게 아이들이 직접 만든 고마운 마음을 담은 이야기들이 전달됐다. 작은 손으로 저마다의 표현을 했을 아이들은 최원호 사장 내외에게 인사말을 적은 패널이 전달될 때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과자를 먹을 때 오락시간을 가졌다. 윤성림씨가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이 달려 나와 춤을 췄다.
▲ 오락시간 아이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과자를 먹을 때 오락시간을 가졌다. 윤성림씨가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이 달려 나와 춤을 췄다.
ⓒ 정덕수

관련사진보기


최원호 사장은 노모의 식사 때문에 고양시로 달려갔다. 많던 직원들까지 헤어질 정도로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외로운 누군가를 불러 따뜻한 한 끼를 나누는 그가 환하게 웃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준비되는 대로 4가지 음식을 테이블로 옮기기 바쁘게 아이들은 맛나게 먹었다. 1시간 반 이상 음식을 먹던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자 앞에 나와 춤을 춘다. 아이들 가운데 중고등학생도 제법 된다. 이들을 위해 시낭송을 했다.

"아저씨가 이 시를 썼을 때가 지금 여기 가장 큰 언니와 같은 나이인 18살이었어요. 아저씨는 결혼이 늦어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이 있어요. 여러분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여러분도 뭐든 열심히 하면 나중에 행복할 수 있어요."

불려나가 시낭송을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

그래 1월에도 아저씨 서울 있으면 우리 또 만나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맛대로촌닭, #평양칠향계, #최원호, #아이들, #허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고, 그보다 더 많이 생각한 다음 이제 행동하라.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실천할 때 명예로운 것이다. 진실이 아닌 꾸며진 말과 진실로 향한 행동이 아니라면 시인이란 이름은 부끄러워진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