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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택시, 그 따뜻한 이름

16.12.08 15:4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2016년 9월 1일자로 교장이 되었다. 내 평생 '승진'에는 무심했던 터였으나, 2018년부터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고(통상 공립 대안학교라 부른다)로 전환되는 고산고등학교에, 그것도 교장 자격이 없어도 지원이 가능한 '내부형 공모교장제'에, 좋은 학교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운동적 관점에서 지원하라는 주위의 권고가 솔깃하기도 하여 결국 수석교사의 지위를 포기하고 응모, 최종 선정이 되었다.

아직 대안학교로 전환되기 이전의 일반계 고등학교, 그것도 전주 인근에 있는 면단위 고등학교의 특성상, 대부분 전주시 일반계 고등학교를 가기 어려운 아이들이 들어오는 학교에서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첫째 과제였다.

먼저 1년 반의 '준비 기간' 동안 학교의 틀(비전, 철학)을 세우는 일과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할 시설(기숙사, 작업장)을 갖추는 일이 시급했다. 예산 확보의 절차는 왜 그렇게 복잡하고도 까다로운지....

다음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하는 것이었다. 벌써 1년의 절반은 지나갔고, 수업도 없는 처지에서 아이들을 익히는 것은 큰 숙제였다. 부임 후 다음날부터 아침 일찍 교문에 섰다.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안녕?" "어서 오너라!" "잘 잤니?" "밥은 먹었니?" ...
아이들은 처음엔 쭈뼛쭈뼛하면서 어설픈 태도로 손을 잡았다. 일부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냥 지나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루이틀 지나면서 손을 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추운데 고생하신다는 아이도 있고 양 손을 내밀면 와락 안기는 아이들도 생겼다. 
그러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택시를 타고 등교하는 것이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같은 고산면이지만 제법 먼 마을에서 오는 아이들도 있고, 또는 완주군 내 다른 면에서 오는 아이들도 있다. 택시비가 제법 부담될 듯하여 얘기를 건네보니, 그렇지 않단다. 편도 1,000원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아니, 택시를 시내버스보다 훨씬 편하고 싸게 이용한단 말이지 않은가?  알고보니 완주군에서 시행하는 제도 덕분이었다.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이거나 버스노선이 닿지 않는, 그래서 통학시간이 긴 아이들로부터 신청을 받아서 선정되면 1,000원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는 것. 가만히 보니 완전히 아이들의 전용 기사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내려주면서 주고받는 인사는 아빠와 아들, 딸들이 나누는 인사와 별 차이가 없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30분간 교문 앞에 서 있는 동안 내가 만나는 택시는 약 10대 가량 된다. 이제는 나도 택시 기사님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교장이 아침에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대개의 자치단체장들이 표가 되는 대상들에게만 주로 예산 투자를 하는 각박한 세태에, 당당한 '군민'의 한 사람인 학생들에게 예산이 지원되는 모습이 오히려 내게 신선하게 보여졌다.
내일 아침 8시에 나는 또 어김없이 교문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여 분의 택시 기사님들을 만날 것이다.  아침마다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로 오고, 아이들 하교 시간이면 어김없이 교문 앞에 와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완주군의 "부릉부릉 안심택시"는 우리 고산고 아이들의 "스쿨택시"라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태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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