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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요구 중 가장 우선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아닌 나라로 만족한다면 가까운 사례로는 이명박 정부가 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박근혜 퇴진, 새누리당 해체는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돼야 한다.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것처럼, 박근혜가 가면 새누리당도 가야 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말이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다. 촛불이 한 달째 타오르는 데 친박과 비박이 살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사태 진전을 끊임없이 교란시키고 있다.

새누리가 건재해서 가능했던 박근혜 3차 담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대국민담화 마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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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씨 3차 담화는 새누리당이 건재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근혜씨가 공을 국회에 넘기자 친박과 비박이 냉큼 받았다. 둘은 두 가족이지만 한 집안이다. 박근혜 퇴진을 앞두고 입장이 갈리는 것은 둘의 생존책이 달라서일 뿐이다. 갈등이 극심한 것 같아도 손잡을 땐 손잡는다. 교활하고, 당연하다.

담화 이후 비박은 박근혜씨에게 '4월말 대통령 퇴진을 스스로 밝힐 것'을 제시했다. 박근혜씨가 여야 정치권이 결정하면 따르겠다고 했으니 이 안은 야당에게 던진 것이기도 하다. 친박계는 '내년 4월 퇴진, 6월 대선' 일정을 제시하며 야당에 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다.

두 안의 또 다른 공통점은 '12월 2일 탄핵안 가결 불가'다. 친박은 어떤 경우에도 탄핵 결사반대이고, 비박은 여야협상이 안 되면 9일 탄핵추진 입장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2일 탄핵은 쉽지 않다. 비박이 빠질 테니 부결이다. 자, 이게 옳은가?

2일과 9일의 차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상시국회의 참석자들이 지난 11월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상시국회의 성명서를 낭독한 뒤 고개숙여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상시국회의 참석자들이 지난 11월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상시국회의 성명서를 낭독한 뒤 고개숙여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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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안에는 2일이 안 되면 9일 탄핵하면 된다는 입장이 많다. 1주일 시차는 별것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무엇보다도 역사는 '타이밍'이다.

2일 탄핵이 안 되면 정치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비박의 협상요구가 점차 거세질 것이다. 일부 야당은 벌써 동요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민의당이 문제다.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여야협상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12월 5일부터 그가 비대위원장이 된다. 국민의당 호남 중진의원들도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2일부터 9일 사이, 비박은 협상을 계속 요구할 게 뻔하다. 야3당 공동전선의 균열은 커질 것이다. 요구하고 요구받는 사이. 누가 상황을 주도하는가. 2일 이후 일주일간 주인공은 비박이다. 또 하나. 일주일은 친박과 박근혜가 마지막 판단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판단 가운데는 지금부터 '가정'하는 내용도 포함 가능하다.

만약 박근혜씨가 비박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박근혜씨가 비박의 요구조차도 거부한다면 9일 탄핵소추가 결정된다. 즉시 직무 정지다. 비박이 제시한 4월보다 더 빨리 물러나야 할 수 있고, 4월을 넘겨봐야 한 달 후면 탄핵 심판 180일이 경과한다. 특검의 직접 수사 대상이 될 테고, 퇴임 후 안전보장은 물 건너간다. 그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박근혜씨가 비박의 주장을 수용하면, 여러 가지로 유리해진다. 퇴진 시기가 탄핵 때와 비슷한 것 말고 모든 게 달라진다. 직무정지가 아니므로 특검 수사를 웬만큼 방어할 수 있다. 퇴임 후 안전보장도 모색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2선 후퇴를 하는 것이므로 언제든 대통령 권한을 다시 행사하려 할 수 있다. 4월 퇴진 약속 자체도 북핵이나 국지전 등 상황변화에 따라 나중에 뒤집을 수 있다. 한때 얘기됐던 '<조선일보> 구상'의 극적 부활이다.

무엇보다 여야 협상 전에라도 박근혜씨가 비박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하는 순간, 비박은 탄핵에 불참할 명분을 얻게 된다. 여야 협상을 더욱 촉구할 것이다. 야당의 탄핵 추진 전선은 급격히 교란될 수 있다.

이쯤 되면 믿을 건 두 가지다. 비박계의 '합리적 제안' 조차도 거부하는 박근혜의 몰상식, 아니면 국민의 흔들리지 않는 즉각 퇴진 요구.

2일과 9일의 '진짜' 차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지난 11월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병국 의원(왼쪽부터),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 전 대표, 나경원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지난 11월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병국 의원(왼쪽부터),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 전 대표, 나경원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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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일과 9일의 진짜 차이는 비박을 대하는 야당의 태도에 있다. 비박 눈치를 볼 것인가, 비박이 눈치 보게 할 것인가. 이것이 2일과 9일의 진짜 차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되게 해야지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준다"라고 말했고 "(새누리당 비박계 때문에) 2일 처리는 어렵지 않겠느냐"라고도 했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박근혜씨에게 면죄부를 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탄핵안이 부결되면 국회가 박근혜씨를 용서하는 것인가. 국회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되면 국민이 국회를 용서하지 않을 텐데도?

'비박계 때문에 2일 처리가 어렵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들이 '캐스팅보트'라니, 차라리 도둑에게 집 청소를 시키는 게 낫겠다. 비박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들의 생존이다. 김무성이 '대통령 탈당' '탄핵'을 이야기한 것이나 비박계가 비상시국회의를 만들고 탄핵에 동조한 것이나 다 마찬가지다.

동시에 그들은 지난 10월 2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국정교과서 금지법' 심의에 반대했고, 최근까지도 친박과 함께 6인 중진협의체를 꾸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합의했다. 탄핵에 찬성한다는 비박은 이렇게 틈만 나면 박근혜 정책을 옹호하고, 비박과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비박은 비박 이전에 새누리당이다.

친박도 여전히 살아있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목을 축이고 있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11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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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해체 대상은 그에 걸맞게 대우해줘야 한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비박뿐만 아니라 친박조차 여전히 팔팔하다. 친박 중진들이 박근혜씨에게 명예 퇴진 등 정국 수습책을 제시했었다. 모르는 욕도 튀어나오게 할 행위다. 친박 중진들은 박근혜씨에게 자신들과 동반퇴진을 제안했어야 한다.

친박이 이렇게 철 모르고 뛰는 것은 근본적으로 거대 야당들이 이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두 큰 야당은 정의당이 제안한 안을 무시하고 새누리당과 합의해서 특검법을 만들었다. 박근혜가 수사대상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15년 이상 판·검사 경력을 요구해서 고 조영래 변호사 같은 이 조차도 특검이 될 수 없었던 바로 그 특검법 말이다. 특검법 합의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친박계 김도읍 의원이었다.

11월 30일부터 시작된 국정 조사를 이끄는 특별위원회는 새누리당 의원 9명, 야당 의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새누리당 의원 9명 중 여럿이 친박계다. 새누리당 간사는 친박계 이완영 의원이다. 세월호 국정조사 때 유가족들에게 막말과 조롱을 일삼았던 그 인물이다.

지난 11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불출석 문제와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하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수남 검찰총장 불출석 문제와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이 정회를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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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국정조사 특위는 처음부터 삐그덕거렸다. 국정조사계획서를 만들 때 이완영 간사는 출석 및 자료제출 거부를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격렬히 반대했었다. 새누리당은 특위에서 삼성 관련 인사 등의 증인 채택을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박근혜씨 증인 채택은 결국 무산됐다. 이런 결정들은 기본적으로 새누리-민주당-국민의당 여야 간사가 모여 한다.

국정 조사가 이런 상황이니 김수남 검찰총장이 국정조사에 출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은 권력을 물어뜯던 검찰총장이 자기가 물리는 건 싫었던 모양인데, 국조특위 구성이 달랐으면 검찰 총장의 반응도 달랐을 것이다.

지난 주 국정조사 특위가 법무부, 국세청, 한국은행 등에 최순실, 차은택, 안종범 등과 관련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었다. 국세청, 한국은행 등은 개인의 납세 정보와 거래 정보를 줄 수 없다며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국조특위에서 요청한 증인 가운데 김기춘, 우병우, 안봉근, 이재만 등에게는 며칠 전까지도 증인으로 나오라는 공문이 전달되지 못했었다. 청와대 비서실, 법무부 등에서 연락처와 주소는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광장의 분위기는 새누리 해체인데, 국회에서는 한번 여당은 끝까지 여당이다. 그런 여당이 국정조사 특위의 반을 차지하니 정부부처나 관련자들은 이 판국에 과감하게도 비협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이 임명되고, 국정조사가 이렇게라도 진행되고 있는 것은 국회가 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국민 덕이다.

국민 못 따라가는 야당도 심판대상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 11월 3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3당 대표 회동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 야3당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지난 11월 3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3당 대표 회동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 야3당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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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새누리를 해체하라는데 국회에서는 이들이 여전히 여당이다. 국민은 새누리의 권한을 박탈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야당은 그들의 권한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검과 국정조사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탄핵소추 의결을 2일에 할 것인가 9일에 할 것인가의 혼란도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따지고 보면, 이 와중에 국정교과서를 발표하는 교육부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는 국방부 등도 국민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회가 나은 산물이다.

애초에 야당들이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사태 초반에 제안했던 대로 '새누리당을 교섭단체로 인정하지 말자'는 제안을 실행하기 위해 촛불처럼 투쟁했다면 어땠을까. 이정현처럼 단식을 하고, 새누리당처럼 국회의장실을 점거했더라면 또 어땠을까.

어쨌거나 새누리가 여당이고 교섭단체이며 국회 제도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건 '변명'이다. 국민은 바로 그런 상황과 제도에 맞서라고 떨쳐 일어난 것이다. 항쟁의 시기에 국민의 희망을 수렴하지 못하는 정당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태그:#탄핵, #국정조사, #특검, #비박, #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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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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