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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경비부터 주차관리, 분리수거, 택배관리 등 풀코스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주부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 편안함과 안락함이 대부분 누군가의 고된 노동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아파트는 오로지 입주민을 위한 공간으로만 인식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파트를 생활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경비·미화(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 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에게 모욕적인 갑질을 당한 경비노동자가 분신자살로 '을 중의 을'의 절규를 항변하고서야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안산지역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과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9일 오후 안산시청 제1회의실에서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를 열었다.

경비노동자, 월 2회 이상 욕설·구타 등 '갑질' 당해

29일 오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로 안산시청 제1회의실에서 열린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에서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이 결과보고를 하고 있다.
 29일 오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로 안산시청 제1회의실에서 열린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에서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이 결과보고를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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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안산지역 112개 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전수 조사한 결과를 보고했다. 먼저 경비노동자의 노동실태를 살펴보자.

경비노동자(설문참여 224명)의 평균연령은 68.1세였다. 근속연수는 평균 2.8년이며, 용역회사가 변경될 때 전원 재고용하는 비율은 25.4%(4명 중 1명)에 불과해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인해 이직률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비노동자의 올해 평균임금은 156만원이었으며,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53.8%로 추정됐다. 근무형태는 용역·위탁업체에 고용된 1년 단위의 계약직(89.2%)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위탁관리-용역회사라는 2중의 간접고용이 일반적인 고용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64%, 정년 적용은 21%에 불과했다. 또 전체의 95.3%가 격일제(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고, 휴게시간의 휴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휴게시간을 근무지 안에서 보내거나 근무지에서 대기하는 게 다반사였다.

연차휴가는 32.1%만이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휴가가 없는 경우(15.8%)도 있었다. 산재보험 적용은 21.9%에 불과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등에 대한 설문결과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영향력(64%)이 큰데다, 입주민과의 관계에서 욕설 등 '갑질'을 당한 경험이 27%(월 2.4회)로 부당한 대우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힘든 점으로 '저임금>고용불안>장시간 근무>입주민 응대>과도한 업무량>휴게공간' 등을 꼽았다.

미화노동자, 10명 중 8명 '지하'에서 끼니 때워

미화노동자(291명)의 평균연령은 63세였고, 평균임금은 94만원이었다. 최저임금 위반 비율은 71.6%로 매우 높게 추정됐다. 근무형태는 위탁관리(88.3%)가 대부분이었고, 소속 회사는 용역회사가 90.5%를 차지했다. 고용승계 비율은 63.7%였고,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67.3%였다.

주 근무시간은 30.8시간이었으며, 자유로운 휴게시간 사용은 57.8%로 절반을 넘었다. 휴게공간은 지하공간(77.9%)이 대부분이었고, 여기서 취사(49.8%)나 도시락(39.8%)으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26.1%)하는 비율은 1/4 수준이었고, 휴가가 없는 비율도 32.4%에 달했다. 산재보험 적용은 40%로 절반에 못 미쳤고, 힘든 점으로는 '저임금>고용불안>입주민 응대>인력 부족>과도한 업무량' 등을 꼽혔다.

시설관리노동자, 입주민 자기 '집안 일' 요구 부담 커

시설관리노동자(279명)의 평균연령은 50.5세로 평균임금은 226만원이었다. 근무형태는 위탁관리(91.5%)가 대부분으로 경비·미화노동자와 같은 2중 간접고용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전원 고용승계 비율은 16.8%에 불과했으며,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70.2%로 가장 높았으나 임금 등 노동조건 명시의무 위반 사례가 많았다. 또 근무는 격일제가 62.5%였으며, 휴게공간이 별도로 있는 경우(57.4%)는 절반이 넘었으며, 연차휴가는 48.7%만이 자유롭게 사용했고, 산재치료는 20%만이 적용을 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영향력이 76%에 달할 정도로 컸다. 구체적인 업무지시(43.5%)가 경비노동자(26%), 미화노동자(25%)에 비해서 높은데다 입주민들이 자기 집안 시설을 관리해 줄 것을 요청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점은 '저임금>입주민 응대>고용불안>인력부족>장시간 노동' 순이었다.

아파트는 '자치관리'로 전환하고, 안산시는 '자치규약' 제정해야

29일 오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로 안산시청에서 열린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29일 오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주최로 안산시청에서 열린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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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안산지역 아파트 노동자들은 최저 수준에 가까운 저임금을 받으면서 휴게시간에도 택배를 처리하고, 좁은 경비사무실 한켠에서 쪽잠을 자거나 지하실에서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만성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실태조사를 실시한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 ▲관리방식의 개선 ▲고령노동(정년 문제)을 제기했다.

임금 및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최저임금 준수와 생활임금제 확대 ▲휴게시간 상한 규제 ▲감시·단속적 근로 승인 문제를, 휴게공간에 있어서는 ▲휴게실 설치 규정 ▲휴게실 개선사업을, 인격적 대우와 관련해서는 ▲아파트공동체활성화 지원 ▲좋은아파트운동 사례 확산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센터는 아파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관심과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아파트 관리를 기존의 위탁관리에서 '자치관리'로 전환하고, 정규직 채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자치관리로 전환할 경우 위탁수수료와 관리비 등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는 평가다.

특히 센터는 안산지역 아파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휴게시간 조정을 통한 최저임금 지급 회피, 휴게시간 미보장, 쪼개기 근로계약, 아파트 비리 등의 실태를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산시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공동주택법(제93조)에 따라 지자체는 공동주택관리규약을 마련해 지역 실정에 맞게 공동주택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센터는 매년 인상되는 최저임금 인상분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늘려온 것에 대해 시가 '감시·단속적 노동자의 휴게시간과 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적정 수준의 준수를 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시가 이러한 내용의 '자치규약'을 제정해 가이드라인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들어 정부가 경비원 처우개선을 위해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철 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는 아파트연합회 대표, 경비·청소노동자, 안산시의원,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민주노총 안산지역지부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토론회 말미에는 '안산시 아파트 비정규직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협약(안)'에 대해 안산시와 시의회, 노동부, 안산시아파트연합회, 안산시아파트입주자대표자회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안산시지부,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공감하고 내년 초에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공동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협약(안)의 주요내용은 ▲노동관계법 준수 ▲고용안정 노력 ▲최저임금 준수 ▲휴게시간과 공간 제공 ▲지속적인 노동인권 개선 등이다.


태그:#안산 아파트 비정규직노동자 노동실태, #아파트 경비·미화·시설노동자,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 #아파트 자치관리, #지자체 자치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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