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북도교육청이 만든 호국보훈교육진흥법 비판 문서.
 전북도교육청이 만든 호국보훈교육진흥법 비판 문서.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가 "학생들의 국가정체성과 애국심을 높여야 한다"면서 호국보훈교육진흥법(보훈교육법)을 입법 예고한 것에 대해 한 시도교육청이 정면 반박 문서를 만들었다.

유초중고 평가권한을 국가보훈처장에게? '무소불위' 법안

11일, 전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이 만든 '호국보훈교육 강제하는 보훈교육법 제정 비판 및 대책'이란 공식 문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이 교육청은 "보훈교육법이 학교현장과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심각한 우려를 갖고 법제정에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도교육청에서 보훈교육법에 대해 정면 반기를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 첫보도 : 인성교육법 이어 애국교육법? '유신교육' 논란)

앞서 지난 10월 26일 국가보훈처는 "자라나는 세대의 건전한 국가정체성과 애국심 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보훈교육법을 입법예고했다.

"대한민국 자긍심과 애국심을 함양하여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확고히 한다"는 기본 원칙을 내세운 이 법안은 국가보훈처장이 유초중고 교육활동에 개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우선 '국가보훈처장은 호국보훈교육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연구·개발·보급한다'(제8조)고 규정했다. 이어 '국가보훈처장은 교육과정에 보훈교육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에게 요청할 수 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한다'(제9조)고 규정했다. 국가보훈처장의 학교 교육과정 개입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법안은 국가보훈처장이 전문 강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제12조). 또한 국가보훈처장은 호국보훈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기관 및 단체에게 이 교육을 받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제13조) 특정 기관이나 단체에 대한 강제 교육의 길도 사실상 터준 셈이다.

끝으로 이 법안은 국가보훈처장이 호국보훈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의 운영 실태에 대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제17조)고 규정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물론 일선 유초중고에 대한 평가권 또한 보훈처장이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북교육청은 A4 용지 4장 분량의 비판 문서에서 "이 법안은 호국보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적 교육관과 획일화된 전시성 성과주의 교육을 학교교육에 전면화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국가보훈처가 교육내용을 독점하여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무력화하고자 한다"고 '법안 제정의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전북교육청은 "이 법안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규정한 헌법 제31조 4항에 배치된다"면서 "국가보훈처가 교육 자료의 제공과 교육과정 제정, 교육활동, 교육평가까지 도맡겠다는 것은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교육공동체의 선택권을 묵살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문서엔 '학교 교육과정 훼손'에 대한 우려도 담겨 있다. 이 문서는 "국가보훈처장이 교육과정 반영 요청권을 갖는 것은 곧 학교의 호국보훈교육시간 확보를 강제하는 것"이라면서 "이미 초중등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있는 호국보훈교육 단원을 충실하게 학습하면 되는데, 이런 교육과정에 대한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몽고의 침략과 고려의 저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극복과정이 소단원으로 편성되어 있다. 게다가 6학년 교과서에도 의병, 독립협회,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군 전투, 민족독립운동 등이 편성되어 있다.

또한 6.25전쟁의 원인과 과정,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내용도 들어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에도 '국가는 왜 필요한가?', '바람직한 애국심은 무엇인가?', '남북분단의 배경과 우리민족의 아픔' 등이 편성되어 있다.

보훈처장이 학교까지 평가? 보훈처 "교원평가하겠다는 것 아냐"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오히려 학교 교육과정을 부실화하고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며, 이미 편성된 호국보훈교육까지 일대 혼란을 줄 것"이라면서 "이것이야말로 국가보훈처가 학교교육을 뒤흔들 '무소불위' 법안"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전북교육청은 이 법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국가보훈처에 내기로 했다. 학교나 교사들의 반대의견 제출도 권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법안을 만든 국가보훈처는 정작 이 법의 적용 대상인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공문 등을 통한 정식 의견수렴을 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중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대한 의견수렴 여부에 대한 판단은 교육부의 몫"이라면서 "우리가 나라사랑교육을 6년 동안 벌이면서 450만 명의 국민들을 교육했는데 정치중립성 침해라는 이의 제기는 한 번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가보훈처장이 유초중고에 대해 평가한다는 규정은 교원평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효과에 대해 판단하는 차원"이라면서 "이 법안에 의견이 있다면 오는 12월 5일까지 의견을 접수하면 된다"고 해명했다.


태그:#호국보훈교육진흥법, #국가보훈처, #보훈교육법, #전북교육청, #교육과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