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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구시가지와 가운데 뾰족한 탑이 대성당, 그리고 오른쪽 사각형 건물이 알까사르.
▲ 톨레도 구시가지 톨레도 구시가지와 가운데 뾰족한 탑이 대성당, 그리고 오른쪽 사각형 건물이 알까사르.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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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다. 사진 한 장 컴퓨터 화면 가득 띄워놓고 요리조리 살피다 보니 작은 전율 한 가닥 사르르 실핏줄을 타고 흐른다. 사진은 톨레도(Tolledo) 구시가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쪽 전망 포인트(Mirador del valle)에 서서 찍은 것이다. '미라도르 델 벨르', 길동무 이번 여행의 시작점이자 톨레도 여행의 시작 지점인 곳.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남으로 67㎞ 지점에 터를 펼친 톨레도, 이베리아 반도의 젖줄 타호강(Rio Tejo)에 삼면이 둘러싸여 돌출한 작지만 암석 위에 세워진 천연 요새이자 스페인의 대표적인 고도 톨레도, "마드리드에서 하루 시간이 주어지면 반드시 가라"는 그 톨레도, 가기 전 이런 저런 문헌들과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들으며 참 많이 상상했던 톨레도, 그런데 직접 보고 살피고 돌아와서는 가기전보다 더 아련한 곳이 되고만 톨레도. 그런 내게 사진 속 톨레도는 아주 의연하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톨레도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
 톨레도를 감싸고 흐르는 타호강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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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여행이란 영락없는 뒷북치기야. 다녀가서 톨레도를 다시 살피니 더 잘 보이지? 더듬고 가서 톨레도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역사가 쉽게 한눈에 들어오지? 그 현장에서 더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후회될 거야. 경의를 표할 것은 표하고 일갈을 할 것은 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게 바로 후견지명(後見知命)이라는 거야. 특히 여행기를 쓰려니 딱 그렇겠네."

이 여행 이야기는 부제에 새겼듯이 '인상파식'이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낱낱이 살피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 섭렵한 지역들의 문화적 특성을 자세히 스캔하는 것도 목적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 해도 잽도 안 되는 것이 내 역량이다. 하여 그저 믿는 것이 함께 한 길동무다. 길동무는 벌써 십여 년을 함께 하다 보니 이젠 가방만 메고 길을 나서도 척 통한다. 서로 이무럽기가 그지없다. 누군가 "가족사진 찍읍시다" 하면 우르르 둘러선다. 알콩달콩 다섯 부부 이야기만 해도 쓸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다. 믿는 구석이 바로 길동무다. 하여 톨레도를 다녀와서야 느끼고, 그나마 그것이 겨우 한 줌이라 한들 또한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길동무는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내식 먹은 것을 핑계로 점심도 마다하고 톨레도로 향했다. 하룻밤 한나절을 비행시간으로 보냈지만 여독도 밀치고 톨레도 행을 서둘렀다.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 문화가 서로 밀치고 다듬으며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쌓은 도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도시, 피카소에게 절대적인 지주가 된 엘 그레코의 도시이자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고 예술가들이 사랑한 도시 톨레도, 유일의 톨레도를 보기 위해 길동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설렘 때문일까 감동이 빠르다.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사이에 싸르르 감동이 인다. 객을 맞이하는 파수꾼 때문이다. 마치 사찰의 일주문 같은 성 밖의 성, 회교도로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았던 무어인들이 세웠다고 추정하는 헐어진 성의 일부가 선뜻 다가 왔다.

머리를 뒤로 젖혀야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톨레도 성벽, 그 절벽 밑바닥에서 마치 성에서 떨려난 듯 무너진 채로 파수를 서고 있는 성 밖의 성벽, 역시 무너진 것이 안기는 느낌은 성성한 것의 그것과는 영 딴판이다. 무너진 그곳에서 역사는 더 생생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에 얽힌 인물들의 스토리는 무너지기 보다 더 단단하게 전해진다. 범상치 않던 무너진 성 밖 성의 첫 인상, 이젠 돌아와 다시 톨레도의 사진을 훑는 순간에 톨레도의 그날을 선명하게 새기게 하는 그 알지 못할 힘이라니.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흔히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 세상을 최고 문명세계라 여기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현대라는 말의 의미가 그렇게 유도하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컴퓨터 세대, 핸드폰 하나가 훌륭한 비서 역할을 하는 시대의 세대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그 위 할아버지 세대들을 자기들보다 구식일 것으로 여긴다. 내게도 어느 구석에 그런 의식이 있었을까? 톨레도를 돌아보는 동안 몇 번이고 현재와 과거, 나와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대척점이 무엇인가를 따져보게 했다.

16세기 모습 그대로 멈춰선 톨레도 골목 길
 16세기 모습 그대로 멈춰선 톨레도 골목 길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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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옛 도시의 상징이라고 알고 온 톨레도가 보여준 실제가 혼돈의 첫째 원인이다. 무너진 성 밖의 성이 안긴 감동이 채 호흡으로 밀려나지도 않을 즈음, 눈앞에 나타난 것이 놀라운 길이와 높이로 말없이 여행객을 실어 올리는 에스컬레이터였다. 미관을 해치지 않으려 꽁꽁 숨겨 설치한 에스컬레이터, 그럼 그렇지 현대인데 별 수 있어 싶었다.

그런데 톨레도 구시가지의 중심 소코도베르 광장에 올라서자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골목길에 접어들자 보란 듯이 얼굴을 바꾼다. 암석지대에 건립된 도시답게 펼쳐진 시가지가 좁고 구불구불하다. 심지어 경사가 가파른 곳도 많고 지면이 울퉁불퉁하다. 그런데 너무도 당당한 거다.

"에이 기대보다 촌스러운 걸" 속으로 느끼고 있는데 톨레도로부터 경종이 날아든다.

"꼼짝 마 너는 지금 16세기를 걷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16세기는 다시 천 수백 년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네 앞에 나타난 거야."

그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다. 고도에 왔으니 고도의 풍모에 순응하자. 역사가 아무리 나를 겁박해도 나는 현대인이 아닌가. 의연하자. 그러나 그 스스로를 향한 안위 또한 옷깃 여밀 틈도 없이 바뀌고 만다. 돌아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톨레도의 대성당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현대를, 그리고 현대인인 나를 패대기를 친다.

"현대란 뭔 줄 알아? 아무리 옛날도 그날은 현대였고, 그것이 오늘 존재하면 그게 바로 현대인 거야. 톨레도? 오랜 세월을 거쳐 온 현대일 뿐이야. 세월 배불리 삼킨 현대, 그래서 오늘에 더 빛나는 현대, 오랜 진리를 전하는 현대 그거 알아? 그냥 현대라고 자랑만 할 뿐인 껍데기 얇은 현대들이여 그걸 알긴 알아?"

톨레도 대성당 대제단 제단 병풍. 7열의 조각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다. 중앙 열 하단부터 차례로 성모상, 성체 현시대, 예수의 탄생, 성모 승천의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주변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이 묘사되어 있다.
 톨레도 대성당 대제단 제단 병풍. 7열의 조각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다. 중앙 열 하단부터 차례로 성모상, 성체 현시대, 예수의 탄생, 성모 승천의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주변에는 예수님의 생애와 고난이 묘사되어 있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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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단 성체 현시대 뒤쪽 성배 등을 보관하고 작은 예배실에 조명을 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보조 공간. 1721년부터 약 10년간 공사를 했다. 맞은편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울리면 거기 새겨진 조각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 뜨란스바렌떼(El Transparente) 대제단 성체 현시대 뒤쪽 성배 등을 보관하고 작은 예배실에 조명을 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보조 공간. 1721년부터 약 10년간 공사를 했다. 맞은편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울리면 거기 새겨진 조각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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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했다. 오늘날까지 스페인 성당 중 수석성당 자리를 잃지 않고 있는... 이슬람 왕국 시절에는 회교 사원... 알폰소 6세... 고딕과 무데하르... 나자리 왕조... 등 말과 말 사이가 끊겨 들렸다. 긴가민가한 단어들이 귓전에서 윙윙 거렸다. 건축 양식과 야나 문(Puerta Liana), 사자의 문(Puerta de Los Leones), 대성당의 신랑(Nave) 설명이 도대체 뇌리에 박히지를 않았다. 그러나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은 이어졌다.

"올려다 보세요. 뜨란스바렌떼(El Transparente)라 합니다. 대제단 성체 현시대 뒤쪽 성배 등을 보관하고 작은 예배실에 조명을 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보조 공간이지요. 1721년부터 약 10년간 공사를 했는데 시대를 넘어 경외의 대상, 아니 논란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거기 금장의 조각물들과 네 명의 대 천사 조각, 상부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대리석 조각물들 때문에 논란이 이는 것이 아니고요. 맞은편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질 때 드러나는 환상적인 자태,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착각하게 하는 그 모습이 경외감이 일기 때문이죠."

분명히 한국어인데 외국어처럼 들렸다. 미궁의 톨레도요 수수깨끼의 톨레도라더니 누린 세월만큼이나 큰 숨으로 그 위대함으로 호흡 짧은 현대인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몇 안 되는 고야(Goya)의 종교화를 보겠다고, 심오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는 엘 그레꼬(El Greco)의 사도상을 마음속에 넉넉히 담아 오겠다고 벼르던 생각은 간데 온데 없어졌다. 

성가대실 출입구에 있는 일명 웃는 성모상.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조각되었다고 함.
▲ 백 성모상(Virgen Blanca) 성가대실 출입구에 있는 일명 웃는 성모상.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조각되었다고 함.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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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엔리께 데 아르페에 의해 제작(1576∼1524).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18kg의 금이 사용되었고, 금 외에도 쓰인 보석들이 다양함. 성체 현시대는 매년 성체 축일이 되면 톨레도 시내를 도는 행렬에 참가를 위해 성당 밖 나들이를 한다고 함.
▲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독일의 엔리께 데 아르페에 의해 제작(1576∼1524).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18kg의 금이 사용되었고, 금 외에도 쓰인 보석들이 다양함. 성체 현시대는 매년 성체 축일이 되면 톨레도 시내를 도는 행렬에 참가를 위해 성당 밖 나들이를 한다고 함.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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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현대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조직적이었던 대제단의 제단병풍, 성가대실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취해 기진맥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혼미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미소가 나타났다. 성가대실 앞에 선 '백 성모상(Virgen Blanca)'이었다. 일명 웃는 성모상으로 불리는 성모상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안에서 나로 하여금 편히 숨을 내쉴 수 있도록 마음을 위무했다. 역시 어머니의 미소였다. 그러나 놀랍기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물실의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란 어마어마한 실체가 남아 있었다.

"이 화려한 작품은 엔리께 데 아르페란 독일 작가에 의해 제작(1576∼1524) 되었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18kg의 금이 사용되었고요 보시다시피 금 외에도 쓰인 보석들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찬란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중앙의 다이아몬드 십자가로 평가합니다. 성체현시대는 매년 성체 축일이 되면 톨레도 시내를 도는 행렬에 참가를 위해 성당 밖으로 나섭니다."

뜬금없이 아까 소코도베르 광장 문 밖에서 스쳤던 가짜 세르반테스가 떠올랐다. 그는  책을 든 세르반테스(Cervantes)라 이름 붙은 동상 옆에 있었다. <돈키호테> 발간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동상이라 했다. 그 동상 옆에 작은 책상하나 놓고 앉은 가짜 세르반테스는 생전의 세르반테스처럼 모양새를 꾸미고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세르반테스의 명언들을 들려준다고 했다. 물론 그는 앞에 놓인 바구니에 많은 동전이 쌓이기를 바라며 앉아 있다. 400년 전 시대를 오늘로 삼아 태연하게 살고 있는 그와 싸워보지도 않고 나는 그에게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빠진 사이에도 나는 길동무를 따라 걸었고, 함께 들어선 곳이 대성당 근처 산토 토메 성당이다. 저 유명한 엘 그레꼬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Burial of the Conde de Orgaz)>을 보기 위해서다. 참 이야기가 많은 작품, 조촐하게 독립적이고, 그러므로 숨 고르며 감상할 수 있는데 스민 이야기 또한 참 위대하고 또 아기자기하다. 

"이 작품은 오늘날 산토 토메 성당의 중요한 재정 담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웬 말인가? 벽에 걸린 작품 한 점이 한 성당의 재정담당이라니. 그랬다. 우리 길동무가 1인당 입장료로 낸 2.5유로도 그렇거니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하루에 500명을 헤아릴 때도 있다니 과연 쌓이고 쌓인 2.5유로의 힘이 성당의 전적인 유지 관리 재정에 절대적인 공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만히 작품을 살피니 오늘날 화가들에게 던지는 화두가 있다.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의 중요한 재정 담당역할을 하고 있는 작품
▲ 엘 그레꼬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Burial of the Conde de Orgaz)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의 중요한 재정 담당역할을 하고 있는 작품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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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이여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역사의 인물, 시대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가? 스스로 역사가 되고 싶은가? 반드시 이 작품을 참고할 지어다. 보아라! 이 훌륭한 살아있는 선생을. 파블로 피카소가 왜 마드리드 미술학교를 자퇴하고 톨레도를 학교삼아 다녔겠는가? 바로 이런 작품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마침내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을 한 점 작품 게르니카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명쾌하게 작품으로 대변했던 이 작품의 영향 때문이 아니겠는가?"

작품에 얽힌 이야기 대강은 이렇다. 1323년 사망한 톨레도 지방의 귀족 오르가스 백작은 일생동안 성당에 재정 지원을 했다. 지역의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남은 재산마저 가난한 성도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유언으로 남겼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그가 죽은 지 692년이 지났고, 엘 그레꼬가 그의 장례식에 얽힌 전설을 작품으로 그린 것이 430년이 지났다. 그의 무덤 위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교회가 산토 토메 성당이고 엘 그레코의 작품은 그를 위한 부속 예배실 중앙을 보벽하고 있다. 작품 한 점의 재정담당 역할이 이미 수백 년을 이어왔는데, 앞으로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이미 많은 문서들에 설명이 되어 있을 것이어서 췌언일 것이다. 그러나 길동무 여행다운 인상파식 감상기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에 일단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톨레도 사진을 들여다볼 때는 뭘 써야지? 절절한 느낌이 뭐였지? 뭘 메모했더라? 막막해서 길동무들께 유도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쓰다 보니 장황함을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읽는 시간으로 이미 커피 한 잔이 식을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감사와 아울러 조금 더 읽어주실 것을 믿는다.

오르가스 백작이 사후에도 변함없이 성당 재정에 공헌할 수 있게 한 것은 그야말로 엘 그레코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그는 이 그림에서 현실과 상상, 지상과 천상을 그렸다. 천사와 성인을 그리고, 왕과 사제를 그렸다. 매장되는 죽은 오르가스 백작과 천상으로 오르는 그의 영혼도 형상화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작품에 적절히 등장시키고, 장례식의 성가대와 천상과 천하의 조문객들 또한 놓치지 않고 그렸다.

특별한 부분이 바로 거기 있다. 지상 조문객들의 면면이다. 엘 그레코는 조문객들로 당시 스페인의 저명한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이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위해 엘 그레코는 이들을 실제 스케치했다고 한다. 조문객 중에는 화가 자신도 있고 그의 아들 호르헤이도 있다. 호르헤이의 주머니에 걸친 손수건에 1578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바로 호르헤이가 태어난 해라고 한다.

그림 한 점에 이야기에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너무 생생한 이야기이고 모두가 관심을 가질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그림을 보기 위해 그림 속 인물들의 후손부터 지역 사람들, 성지 순례자들, 화가들, 문화관련 종사자들까지도 기꺼이 찾아온다. 천혜의 요지 톨레도의 한 성당 안에서 시간이 흐르고 인걸은 바뀌어도 변함없이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며 이야기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톨레도, 나는 톨레도를 떠나며 톨레도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을 샀다.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다른 톨레도에 대한 기록들을 살피며 생각했다. 도대체 몇 권의 책이어야 톨레도 이야기를 다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쯤해서 톨레도 이야기를 마치며 톨레도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지우련다.

산토토메 교회의 훌륭한 탑, 구 시가지를 돌아나와 건넌 알깐따라 다리(Puente De Alcantara)의 멋진 인상을 그냥 쉽게 제외한다. 오랜 시대에 걸쳐 명성을 얻어온 톨레도의 명검에 대한 인상, 골목길에 둘러서서 나눠 먹기 체험을 해봤던 쿠키 마사판(Mazapan)과 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도 모른 척 넘어 가리라.

하물며 꼭 가보고 싶었으나 가보지 못한 알까사르(Alcazar), 꼭 숙박을 해보고 싶었으나 실행하지 못한 스페인 최고의 전망과 품격을 지닌 호텔 톨레도 파라도르(parador), 그리고 타호 강변과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난 산책길 등은 애써 들먹여 아쉬움을 남길 필요 무엇 있으리. 하여 나는 다시 컴퓨터 화면 가득 톨레도 사진들을 띄운다. 길동무의 경건한 기도 모습을 사진으로 다시 새기고 톨레도 골목길에 흘린 길동무의 깔깔 웃음을 이젠 거둔다.

하나 덧붙일 말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하루가 주어지면 반드시 톨레도에 가라. 마드리드에서 3일이 주어지는가? 그 또한 반드시 톨레도에 가라. 톨레도는 그 3일을 거뜬히 충족시켜줄 것이다. 

아 톨레도!
 아 톨레도!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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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려니 톨레도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 하나가 고개를 쳐든다. 역사를 살펴보면 톨레도는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너진 적이 몇 번 있다. 아무리 견고한 요새라 해도 요새를 요새로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톨레도는 역사적 사실로 가르쳐준다. 아무리 훌륭한 요새도 그것을 지키는 것은 사람이다. 작금 고국이 시끄럽다. 권력이 권력으로 지켜질 수 없음을 생생하게 본다. 모두가 사람의 일임을 본다. 부디 역사를 보고 배울 일이다.

느낌 많고 이야기 많으며 가르침 많은 톨레도여, 이제 그만 안녕!

덧붙이는 글 |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태그:#톨레도, #엘 그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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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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