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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나고 큰아이 수시 원서를 써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섯군데나 넣어야 하는데 모두 자기소개서를 내야 합니다. 큰아이는 교내 글쓰기 대회나 논문대회 나갈 때마다 상을 타왔고, 아내는 전공이 그쪽인데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사공이 많은 게 문제였습니다. 

처음 아이가 써놓은 것을 아내가 고치고 마지막으로 제가 손을 봅니다. 그렇게 한바퀴 돌아서 아이 손에 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습니다. 그걸 몇차례 반복하다 보니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집 안 공기가 팽팽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아내가 뭉치를 내밉니다.

"다른 것도 좀 봐봐."
"아, 보면 뭐해.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아니, 아빠, 내가 느낀 게 그게 아니라구."

한 학교마다 네가지 문항이 있고 각각 1천자씩 써야 하는데, 한 문항 가지고 저러니 끝이 안보입니다.

"문맥이 이상하대두 그러네. 마, 아빠가 오마이에 글도 쓰고 그러는데 좀 들어라."
"거기서 오마이가 왜 나와. 당신 웃김."
"아빠, 오마이 아무나 글 써서 올리는 데야."
"........."

한방 얻어맞고 부아가 나서 슬며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에잇, 삼순이들 같으니라고.'

동네를 한참 돌다가 들어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합니다. 자기소개서로 당락이 결정될 일도 아닌 것 같고, 모녀지간에 죽이 맞는 듯하여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말거나 그냥 제 식대로 한 번 고쳐주고 신경을 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여섯군데 모두 경쟁률이 두자릿 수를 한참 넘어서 거의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아내는 낙담했고, 저는 불안하고, 녀석이 그나마 담담하니 오히려 정시에서 대박을 내겠다고 허세를 부립니다. 용기는 가상합니다.

그 일을 온 식구가 겪으면서 화를 내다가 낙담하기도 하면서 불안했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화나 낙담이나 불안이나 모두 느낌이 다릅니다. '화'가 날 때 어떤 기운이 감정을 따라 솟구칩니다. 우리는 그 느낌을 '화'라고 하지요.

그리고 낙담할 때 역시 어떤 기운이 솟구치고 그것을 '낙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기운에 느껴지는 색이 달라서 그 색을 따라 화니, 낙담이니, 두려움이니 언어로 갈래를 짓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여러 분깃을 가지고 있고, 각 기운의 크기가 다르지만 모든 감정은 동일한 하나의 근원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이지요.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선종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조로 그의 법통을 여섯 번째로 이어받은 육조 혜능 스님이라고 계십니다. 어느날 바람결에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본 여러 스님들이 옥신각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봐라, 깃발이 움직이지."
"어허, 바람이 움직이는 거라니까."

듣고있던 혜능 스님,

"너희들 마음이 움직이느니라."

우리야 책을 통해서 배운다지만 그 옛날 혜능께서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모르셨다는데  어찌 저런 깨달음이 나올까요. 신기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세상의 지식을 통해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혜능께서 '마음이 움직인다' 함은 각자 지닌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하나의 현상인데 누구에게는 깃발이 움직이고, 누구에게는 바람이 움직이는 거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그 사람  마음의 상태에 따라 화난 세상, 갖고 싶은 세상, 두려운 세상, 슬픈 세상, 혹은 희망찬 세상 등 모두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일상에서 그 무형의 마음 상태가 모양을 띄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저 감정들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자아내는 여러 감정중 하나만 해소되지 않아도 그 하나의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십, 수백 생각을 솟구치게 하면서 때로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시므이는 내가 피난 시절 나를 저주한 놈이니 반드시 죽여라."

성서에 나오는 다윗왕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대권을 이어갈 아들 솔로몬을 앞에 두고 한 마지막 유언입니다. 저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둡니다. 무섭지요. 누구나 평안히 임종을 맞이하고 싶을텐데 죽는 순간에도 증오로 남아있을 만큼 인간의 감정은 쇠심줄보다 질기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다윗왕이 죽는 순간 조차 시므이를 떠올린 그 '생각'은 수십년전 쌓인 '감정'이 여전히 풀리지 않아 솟구친 것이기에 매순간 일어나는 '생각'은 우리의 뇌나 머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뇌는 장기중 하나일 뿐이지 우리 몸은 생각을 할수 없습니다.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라 이 '생각'이나 '감정'이나 '마음'은 특정한 위치성을 가지고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마음을 살피고 있어도 이 녀석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오리무중이라 둘러보면 어느새 혼자 천리를 가고 있습니다. 지 맘대로 가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마음을 무엇엔가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퍼뜩 정신이 듭니다.

내가 마음을 잃은 것이 아니라. . .
마음이 '나'를 잃어버렸네!

등대불이 칠흑같은 밤바다를 비추듯이, 마음을 밝히는 길은 어두운 감정들을 하나씩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찾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 등대 등대불이 칠흑같은 밤바다를 비추듯이, 마음을 밝히는 길은 어두운 감정들을 하나씩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찾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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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감정의 창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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