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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 생가 인근에 지어진 양구인문학박물관의 가을.
 이해인 수녀님 생가 인근에 지어진 양구인문학박물관의 가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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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1914∼1965)과 함께 양구를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은 이해인 시인(1945~)입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이곳이 고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오늘은 시인 이해인과 양구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앞서 읽어드린 <산맥>은 시인이 전국고등학생 백일장에서 장원한 시로, 아마도 이해인이란 한 개인이 문학의 길을 가게 한 계기의 시이기도 하죠. 고등학생이 어떻게 이런 시를 썼을까? 시인인 저로서도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해인 시인은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 동수리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랫말은 이곳을 노래한 것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이곳은 매우 아름답고 정겨운 곳이죠. 시인은 이곳에서보다 다른 곳에서 훨씬 많은 삶을 살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이해인 시인의 삶과 시에는 이곳 동수리의 강변과 들판과 바람과 햇빛, 나무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고 있고 녹아있는 거라고. 시인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발행 40주년인 올해, 시인이 태어나 자란 이곳의 풍경을 보고, 느끼며 시인의 작품들과 삶을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김경식 시인)

10월 22일 강원도 양구에 갔다. '김경식의 인문학기행'에 동참한 것이다. 10월 초 문학기행 관련 메일을 받기 전까지 양구는 여행지로든, 일로든 전혀 갈 생각이 없던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지라 최대한 많은 이야기나 자료를 알고 싶은 박수근(화가)과 이해인 수녀님의 고향이란 것도 몰랐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해인 시인이 나고 자랐다는 생가 부근에 지어진 양구인문학박물관 뜨락에 앉아 시인의 삶과 작품을 이야기했다. 양구인문학박물관은 애초 '이해인시문학관'으로 건립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님의 거절로 시인 이해인이란 개인을 기념하는 곳이 아닌, 양구와 관련된 여러 문학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얼마 전 시인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이 같은 이름으로 다시 발간됐다. 결코 짧지 않은 시인으로서의 삶이다. 적지 않은 독자를 가진 시인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누군가에게 알리는 기념관을, 그것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 아무런 대가나 조건없이 마련해준다는 것은 개인으로서 큰 특혜이자 영광일 것이다.

그럼에도 거절했다는 이해인 수녀님. 어떤 연유로 그랬을까? 누군가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성직자이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삶과 세상에, 그리고 역사에 겸손한 분이라서'가 아닐까?

2016년 가을 현재, 양구인문학박물관 1층에는 양구와 관련된 여러 문학인들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2층에는 철학자 김형석과 고 안병욱(1920~2013년)의 삶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안경이나 원고 등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뜨락 한곳에는 안병욱씨의 묘소도 있다.

"양구는 휴전선이 가깝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사람 살기에 그리 좋은 곳으로 여기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이 화가 박수근과 이해인 시인의 고향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문학적 생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과 다양한 박물관이 건립된 이후에 양구는 인문학적인 토대의 그리움이 일렁이는 파라호처럼 서정성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양구 출신의 박수근 화백은 우리나라의 가난한 민중의 삶을 소재로 사람의 착함과 진실함을 화폭에 담으면서 평생을 민족미술에 바친 화가다." - 김경식의 인문학기행 자료에서.

화가 박수근이 자주 앉아 그림을 그렸다는 작은 개울가에 세워진 동상.
 화가 박수근이 자주 앉아 그림을 그렸다는 작은 개울가에 세워진 동상.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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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은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한눈이 실명, 말년에 한눈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살았다고 한다. 박수근미술관에 전시된 유품 중에서.
 박수근은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한눈이 실명, 말년에 한눈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살았다고 한다. 박수근미술관에 전시된 유품 중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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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미술관 전시물 중 하나인 <박수근 일생기>와 <아내의 일기> 원본. 박수근의 필체다.
 박수근미술관 전시물 중 하나인 <박수근 일생기>와 <아내의 일기> 원본. 박수근의 필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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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닿자마자 찾은 곳은 박수근 생가 터에 개관한 '박수근미술관'이었다. 2002년, 미술관을 세울 당시 "과연 이 산골짜기에 올 사람들이 있긴 있을까?" 반신반의할 정도로 지리적 여건이 열악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 양구는 찾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여행지로 변화하고 있으며, 박수근미술관은 양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매우 큰 공간에 조성된 미술관이다. 마침 그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림대회 때문인지,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림 그리는 학생들과 가족 나들이를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미술관 곳곳이 북적였다.

전시공간은 박수근의 여러 그림들과 상당히 많은 사진 자료들, 박수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품 등이 진열된 박수근기념전시관과 현대미술관 그리고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4년에 조성된 파빌리온으로 되어 있다. 파빌리온에선 천경자 등 유명한 작가들의 기증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건물 주변에 큰 규모로 메밀밭을 조성한 것이 인상 깊었다.

화가가 생전에 자주 그림을 자주 그렸다는 작은 개울가 나무 아래 있는 박수근 동상은 이제까지 만난 동상 가운데 가장 친근한 동상으로 기억될 것 같다. 

뒷동산에 있는 묘소 참배 후 길라잡이인 김경식 시인에게 후손에 대해 물으니 "화가의 두 자제분인 박성남, 박인숙씨는 중견화가로 활동 중이다. 가난 때문에 헐값에 팔렸던 아버지의 그림들을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매입해 미술관에 기증할 정도로 평생을 불운하게 살았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박수근미술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답해준다.

박수근미술관에선 '<귀로>-특별전(2016.7.26~2017. 4.23)이 열리고 있다. <귀로>는 화가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51년 만에 귀향한 것이다.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박수근 유작전(1965년)' 이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라고. 워낙 의미 있는 전시인데다, 건축물과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니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꼭 가보길 권하고 싶다.

한폭의 수채화 같은 양구 파라호-한반도섬 가을.
 한폭의 수채화 같은 양구 파라호-한반도섬 가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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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지리를 아우르며, 삶의 실천적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으로 유명한 문학기행 길라잡이 김경식 시인.
 역사와 지리를 아우르며, 삶의 실천적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으로 유명한 문학기행 길라잡이 김경식 시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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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는 선사유적지로도 가치있는 곳이다.
 양구는 선사유적지로도 가치있는 곳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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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이미 알았던 김경식의 인문학기행이다. 그럼에도 처음 참여했다. 최근 몇 년간 정신없이 지내며 짬이 나질 않았다. 아니 그동안 몇 번 참여하려고 기웃거렸다. 하지만 마음먹고 관련 카페에 들어가 보면 정원 40명은 이미 마감, 몇 명씩이나 대기하기를 되풀이하면서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간 다른 문학기행을 기웃거리지 않은 이유는 김경식 시인이 지금의 문학기행을 이끌기 전 다른 단체에서 이끄는 문학기행에 동참했는데, 워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용운 생가와 최순우 옛집 등을 탐방했는데,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인연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들과 가거나 누구에게든 추천할 정도로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양구를 만난 것도 시인 덕분이다. 양구에서 하룻밤 묵으며 양구를 좀 더 알고 싶은 것도, 박수근 미술관에 다시 들러 시간을 정하지 않고 곳곳을 실컷 느끼고 싶은 것도, 메밀꽃 피는 모습이 궁금해지는 것도, 미술관의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는 순간 나무와 사람들이 어우러진 화가의 그림들이 생각나는 것도 말이다.

박수근 화가와 이해인 수녀님이 나고 자란 곳에서 느낀 2016년 가을은 특별하게 기억되리라.

"시한부 환자의 문학 기행 후 달라진 삶, 보람있다"
[인터뷰] 김경식 시인
김경식의 인문학기행은 한 달에 한번(넷째 토요일) 진행된다. '움직이는 학교'로서 역사와 지리를 아우르며, 삶의 실천적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여행으로도 유명하다. 1985년부터 시작한 '역사가 있는 문학기행'을 비롯하여, 학교나 단체 등 수백 회에 이르는 문학기행을 이끈 경험과 축적된 자료들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문학기행 <이병기 시인을 찾아서>가 교과서(중학교 1학년 2학기 개정판 국어교과서(지학사)에 실렸다. <논둑길을 걸으며>, <사색의 향기 문학기행>, <서울문학지도북> 등 여러 권을 썼다. 2만 여 권의 장서가이기도, 특히 '국내 출간 모든 시집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인은 현재 '김경식의 인문학기행'과 '서울 詩문학기행(서울시 주최)'을 이끌고 있다. 2016년 현재 국제 PEN한국본부 사무총장 6년째 재임 중이기도.

문학기행은 문학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문학인 또는 문화 인물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같은 곳을 탐방하더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해주는가에 따라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양구와 양구의 인물을 연결해주는 설명이 좋았다. 문학기행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실감한 기행이었다.

길라잡이 김경식 시인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 이번 문학기행 참가자 한분이 "당분간은 이 문학기행 일정으로 여행을 대신할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기행 지역 선정이 좋다는 말로 들렸어요. 다음 기행은?
"11월 문학기행은 충북 음성입니다. 음성과 농민문학가 이무영과 조선 초기 인물 권근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감곡성당'도 탐방할 예정입니다. 1896년에 세워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8번째로, 음성에서는 첫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죠. 명동성당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닮았습니다. 충북무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 있는 근대건축물이기도 하구요.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이죠. 70년대 초 인기드라마 <여로>의 작품의 무대이기도 하지요."

- 매회 적게는 한 사람, 많게는 다섯 인물을 선정, 72회 동안 270여 명을 이야기했다고 하셨는데, 지역이나 인물 선정에 어떤 원칙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이해인 시인의 시에서 종종 맑은 햇살을 느끼곤 합니다.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 되는 해라 이왕이면 어떤 계절보다 햇살도 곱고 그 햇살이 잎에 머무는 시간이 아름다운 10월에 이해인 시인의 고향을 탐방하자 싶어 양구를 선정했습니다. 10월 15일에 같은 제목의 시집이 재출간됐다고 합니다. 공교롭게 맞물렸네요. 박수근 특별전도 선정이유가 됐고요. 이처럼 어떤 특별한 사연을 염두에 두고 선정하기도 합니다. 이번 양구처럼 어떤 지역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는 계절에 탐방, 그 고장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었던 분, 인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았던 분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 참가자 한분에게 이 여행을 정의해달라고 했더니 "빡센 공부 여행, 하지만 기꺼이 참여하게 한다"고 하더군요. 16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만 공부해도 어떤 지역과 인물을 연관시켜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자료 준비 시간과 노력도 만만찮을 듯해요.
"어떤 지역이 결정되면 일단은 그 지역을 상세하게 문헌학적으로 조사합니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고 제게 있는 모든 책들을 찾아 정독을 시작합니다. 최대한 다양한 시각의 자료를 참고하구요. 그리고 그곳의 역사와 지정학적인 위치를 비롯한 인물탐방을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형태로 서술합니다. 현재의 문학기행을 이끌기 전에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문학기행을 이끌기도 하고 제 문학적 호기심으로 평소 수시로 탐방을 다니곤 하는데, 사전 탐방을 하는 등으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담아보고 있습니다."

- 5만 7천원으로 양구의 대표적인 곳들을 탐방하고 점심과 아침 김밥까지. 거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양구에 다시 가면 그 집에 가서 먹겠다 싶을 정도로 맛있는 점심이었거든요.
"외부 길라잡이를 따로 두게 되면 돈을 지불하게 되는데 제가 진행과 강의를 다 하는 것으로 일단 경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지금 금강산 여행이 막혔잖아요. 그로 운행을 멈춘 관광버스를 활용하는데, 그럼에도 아마 주최 측((주)현대 아산)은 매번 어느 정도의 적자를 안거나 간신히 경비를 맞추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도 기업들의 이와 같은 사회 환원이 좀 더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욕심을 내보고 있습니다."

- 보람이나 아쉬움도 있을 것 같고요.
"문학기행을 갔다 온 후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 연락을 받곤 하는데 6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전화는 기분이 좋습니다. 보람을 느끼죠. 몇 년 전, 시한부 암 환자 한분이 가족들과 참여했는데, 문학기행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문학기행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나 피우지 못한 꿈이나 좌절 등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이 억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그간 주어진 삶이 도리어 감사했다는 생각까지 하자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고요. 덕분에 삶을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마음까지 되었다고요."



태그:#김경식문학기행, #박수근(화가), #이해인수녀님(시인), #민들레의 영토, #귀로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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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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