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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현장훈련이라는 애초의 목적과 달리 현장실습의 민낯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에 현장실습생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지역의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현장실습제도의 명암을 알고, 이를 통해 현장실습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지역의 한 특성화고교 건축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준식(가명) 학생. 그는 A리조트에서 1개월 동안 현장실습하고 해고됐다. 이 글은 9월 21일 그와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기자 말

A리조트에서 한 달 남 짓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던 준식이는 휴일 마치고 왔더니, 프론트에서 일하는 정직원이 '소식 들었냐'고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준식에게 정직원은 '너 짤렸다'며 짧은 몇 마디를 건넸다.

"네가 전구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우고, 시설관리팀 정직원 외출했을 때 핸드폰 보고 있는 거를 상황실에서 봤나 봐. 회사에서 너 쉬는 날 이야기 됐다고 하던데..."

말수가 없고 조용한 성격인 준식이는 그냥 그렇게 짐을 싸서 돌아오고 말았다.

특성화고교의 경우 보통 3학년 여름방학부터 기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간다. 학생들도 기업체도 보통 취업이라고 표현한다. 본래 현장실습의 목적은 전공과를 살려 교육과 훈련, 실습이 목적이지만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도, 현장실습생을 받는 기업체도 목적과는 무관하게 현장실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준식이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공장에 가는 것보다 리조트가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준식이는 교실 공고란에 붙은 A리조트 '현장실습(취업) 의뢰서'를 보고 담임에게 취업을 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주간 8시간, 야간대학 진학도 가능하고 기숙사도 있구요. 수습 3개월은 130만원에 그 후 정직원은 150만원이라는 조건에 리조트라서 공장으로 가는 것 보다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A리조트는 전기시설 업무로 전기과 2명, 건축물과 수영장 관리로 건축과 2명을 모집했고, 준식이를 포함한 4명의 학생들은 학교로 온 A리조트 면접관의 면접을 봤다.

면접은 10분 정도 형식적인 질문이었고, 4명 중 건축과 1명은 면접에 탈락해 준식은 전기과 2명과 A리조트에서 휴가철인 7월 말부터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다.

"리조트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시키는 대로 일을 시작했어요. 자세한 교육 같은 거는 없었구요. 저는 수영장 관리 업무를 맡았고 다른 친구들은 프론트와 시설 관리를 맡았어요. 수영장 관리는 주로 청소하고 카운터에서 음료 판매, 튜브 대여, 공기 주입 등의 일을 했어요."

10일 정도 수영장 관리 업무를 했는데 조금 더운 거를 제외하고는 일은 할 만 했다고 한다. 수영장 업무에 정직원은 없었고, 준식이가 일하는 것을 정직원들이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보고 갔다.

10일 후에 시설관리로 업무가 바뀌었다. 시설 관리팀에 2교대를 하는 정직원이 2명이고, 준식이는 시설관리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오더(작업 지시)가 떨어지면 업무 처리를 했다.

"시설 관리에 대해 자세한 교육은 없었어요. 주로 전기사용량 검침, 객실에 변기 뚫고 전구 교체하는 것을 정직원이 간단하게 가르쳐 줬어요. 프론트에서 연락오면 이것 저것 잡일도 처리했구요."

준식이는 2교대 하는 정직원을 도와 오후 2시부터 늦은 11시까지 일을 했다. 쉽게 처리할 일은 현장실습생이 하고 어려운 일은 정직원과 함께 나가 배우거나 보조를 했다.

특성화고교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갈 때는 '사업주, 현장실습생, 학교장'의 서명이 들어간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한다.

협약서 내용 중 제4조(사업주의 의무)에는 "'현장실습생'의 전공과 희망을 고려하여 현장 실습부서에 배치하고, 현장 실습을 지도할 능력을 갖춘 담당자를 배치하여 '현장실습생'의 현장 실습을 성실하게 지도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제7조(현장 실습 시간과 휴식)에는 "'사업주'는 야간(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및 휴일에 '현장실습생'에게 현장 실습을 시켜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실에서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대로 일하면 어떤 사업주가 현장실습생을 받겠느냐고 한다. 그럼 현장실습은 왜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수기에 필요했던 현장실습생?

특별히 일을 못하거나 불성실한 것도 아니었는데, 준식이는 왜 짤렸을까?

"저희가 취업 나간 시즌은 7월말부터 8월까지 성수기라 A리조트에서도 연중 가장 바쁠 때에요. 7월에 일하고 받은 임금을 보니깐 올해 최저임금 6030원으로 계산했더라구요. '이렇게 일하고 이게 적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준식이가 일할 당시, A리조트는 프론트 2~3명, 시설관리 2명의 정직원이 있고 객실 청소 약간명과 현장실습생 3명이 일했다고 한다. 성수기 한 달 정도 프론트, 수영장 관리, 시설관리에 저임금의 현장실습생을 고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수영장 안전관리를 하고 싶어서 취업을 나갔다고 한 준식이에게 한 달 남짓 A리조트에서 기억은 씁쓸하기만 하다.

"전 알바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경험 쌓았다고 생각할래요.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다음에는 복지 잘 챙겨주는데 가고 싶어요. 처음 계약한 것처럼 업무 이동하지 않고 정시에 출퇴근하고, 임금도 최저임금보다는 더 주고, 휴일도 제대로 챙겨주는 곳으로요."

준식이 반 25명 중 15명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고 한다. 그 중 전공을 살린 건축 캐드로 취업을 나간 학생은 성적이 좋은 5명 이내이고, 나머지 10여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전공과 무관한 거제 조선소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고 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순천광장신문에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장실습, #현장실습표준협약서,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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