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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박근혜 "최순실 도움 받았다" 시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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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긴 침묵 끝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과 청와대 회의자료 등을 미리 받아보고 첨삭했다'는 내용의 JTBC 보도(24일) 때문이었다. 이는 뭉갤 수 있는 '의혹'을 넘어 명백한 '팩트'였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25일 오후 3시 35분쯤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 나타난 박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사과문을 읽어나갔다. 10억 원대의 명마 '비타나V'와 함께 사라진 최순실씨(조선일보, 최순실�정유라, 10억대 말과 함께 사라졌다)는 이번 사과문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으리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저로서는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자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 드립니다."

사과는 짧았다. 1분 35초에 476글자였다. (서울신문, 1분35초 476자…사과는 짧았고 분노는 컸다) 게다가 '녹화'였다.

노종면 해직기자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일갈'
 노종면 해직기자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일갈'
ⓒ 노종면/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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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언론인 노종면씨는 자신의 SNS에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녹화였습니다. 언론이 약속된 4시에 틀었습니다. 제가 사과문을 미리 입수해 페북에 올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녹화라니...참 한심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해 또 하나의 '진실'을 알렸다. 사과를 녹화로 하는 대통령이라니!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워낙 무더기로 쏟아져 정신을 차리리가 힘들 정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태의 심각을 모르고, 국민을 무시한 녹화사과'라니요?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대통령을 포함 성역없는 조사가 필요합니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비서진 사퇴와 거국 중립내각 구성해 안보와 민생을 챙겨가야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라고 일갈했다.

오후 3시 35분부터 약 1분 35초 가량 준비했던 원고를 '낭독'하고, 보도시점을 오후 4시로 정한 사과. 질문도 받지 않은 채 곧바로 퇴장한 대통령. '형식'에 있어서도 '진정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무례한 사과였다.

사과의 내용은 더 기가 막혔다

뒷목을 잡고 싶겠지만, 그러기엔 아직 멀었다. '내용'은 더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연설문 유출'에만 제한된 사과에 불과했다. (경향신문, [최순실 '국정농단']물증 나오자 '등 떠밀려 녹화 사과'..'연설문 유출'만 시인) 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문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JTBC가 '깐' 자료만 해도 청와대 관련 파일이 400여 개, 연설문을 비롯해 공식발언이 담긴 문서가 44건이나 된다. '일부'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준이 아니다.

시점도 문제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변명했지만, 최순실씨가 사건 원고를 하루 전에 읽어보고 열심히 뜯어고쳤던 '드레스덴 연설문'은 2014년 3월 28일 발표됐고, 최씨가 본 마지막 문건이 2014년 7월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도대체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언제 완비됐다는 말인가? 박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자면, 최소 1년 5개월 동안 청와대의 보좌체계는 완비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별성명'을 발표하면서,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국기문란을 넘어선 국정붕괴"라고 규정하면서 "지금은 국가비상상태"라고 선언했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며 한탄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질서가 무너진 국기문란, 나아가 국기붕괴 사건"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한겨레>, 문재인 "국정 붕괴"..안철수 "도대체 이게 나라냐)

한편, JTBC는 24일에 이어 25일에도 청와대 문건 사전유출 관련 보도를 이어나갔다.

▲ 경호 문제라던 비공개 휴가 장소까지..일정 꿴 최순실
▲인수위 문양에 취임식 우표까지..곳곳 최순실 흔적
▲ 인수위 문양에 취임식 우표까지..곳곳 최순실 흔적
▲ 공개 안 된 박 대통령 '저도 휴가' 사진도 등장
▲ 최순실, 대통령 취임식 대행사 선정 개입 의혹
▲ 취임식 한 달 전, 최순실 파일에 '오방낭' 등장
▲ 최순실, 청와대 인사·정부 조직에도 개입 정황
▲ "북 국방위 비밀접촉" 안보 기밀도 최순실에게..
▲ 최순실, MB와 '당선인 독대' 시나리오도 받아
▲ 최순실 PC 파일 입수..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 받았다
▲ 최순실 측 '청와대 핵심문건 수정' 정황 포착
▲ 발표 전 받은 '44개 연설문' 극비 '드레스덴'까지
▲ 'TV토론 자료·대선 광고 동영상'도 미리 접해
▲ 설문 원고 '붉은 글씨' 일부, 실제 연설서도 달라져
▲ '비서진 교체'도 사전 인지..작성자는 대통령 최측근 참모
▲ 국무회의 자료·첫 지방자치 업무보고도 사전에..
▲ 제의 '최순실 파일' 이렇게 입수했다..경위 공개

제목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최순실씨가 '개입'하지 않은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설문 수정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비공개 휴가 장소 등 기밀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최씨가 사전 보고를 받았던 내용에는 군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안보 기밀이 포함돼 있었고, 청와대 인사를 비롯해 정부 조직에도 개입했다는 정황도 포착이 됐다. 이쯤되니 '최순실이 대통령'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개헌 추진 선언'을 비중있게 다루고(7건),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소극적인 반응(1건)을 보였던 <TV조선>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등 공식 의상을 직접 골랐다'고 '단독' 보도했다. <TV조선>에 따르면, 최씨는 2014년 11월 중국 베이징 TV 인터뷰와 2014년 11월 G20 정상회담에서도 의상을 직접 챙겼다고 한다. (, [TV조선 단독] 최순실 손에 순방일정표, 대통령 옷 맘대로 결정) 한편, <조선일보>는 25일 '실용한자' 지면에 '하야(下野)'를 소개했는데, '권력자가 직위에서 물러남'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의미심장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25일 하루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 1위와 2위는 '탄핵'과 '박근혜 탄핵'이었다. '하야'도 줄곧 상위권에 노출돼 있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국민의 목소리"라고 말하면서, "개인이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사와 정책 결정에 개입했다고 하는데 이는 국민과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리얼미터의 경우 28.5%, 한국갤럽의 경우 25%로 나타났다(10월 셋째주). 이는 각각 최저치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12%에서 9%로 하향 갱신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수치들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이게 정말로 국가인가?

드러난 진실만으로도 참담하고 비통한데, 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국민 다수의 바람인 '탄핵'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3분의 2라는 숫자를 채우기가 현재 국회 구성상 어렵다. 설령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대통령'이 위반했다고 치고, 국회가 탄핵을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이에 대해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탄핵'을 말하는 분들이 많다. 정치적 분노의 표현이다. 다른 정치제도 아래였다면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탄핵'이 국회에서 발의되더라도 헌법재판소 통과하기 어렵다. '탄핵'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의 분노는 비등점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탄핵은 어렵고, 하야는 더 어렵다. 그러나 그와는 무관하게 국민의 분노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미 한계를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폭발은 한순간이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허탈하고 당혹스럽다. 민주주의 위기, 국가의 위기를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이게 국가인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음이 또 다시 부끄럽다. 진짜 문제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끝'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가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수백 수천 번을 양보해 '박근혜의 나라'도 아니었으며, '최순실의 나라'였다는 증거들은 계속해서 드러날 것이다.

26일 아침에 발행될 <미디어오늘> 1072호의 헤드라인은 이러하다. "'팩트'는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다" 간곡히 부탁한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51%(이미 해체됐겠지만)의 각성이 필요하다. 이제 그 51%가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이 부끄러움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의 아내 주연(진경)은 "쪽팔리게 살지 말자"고 소리친다. 주진우 기자가 늘상 외치고 다녔던 말이기도 하다. 각자 스스로에게 그 말을 돌려주자.


태그:#탄핵, #하야, #박근혜, #최순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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