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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을 받은 지 20년이 넘은 천주교 신부(서울대교구 소속)가, 10년 넘게 교제한 여성에게 결별을 통보해 위자료를 물어주게 됐다. 사진은 서울가정법원이 내린 판결문 중 일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20년이 넘은 천주교 신부(서울대교구 소속)가, 10년 넘게 교제한 여성에게 결별을 통보해 위자료를 물어주게 됐다. 사진은 서울가정법원이 내린 판결문 중 일부.
ⓒ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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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는 신부만이 아니라 신자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구가 신자의 존재감을 입으로만 인정하고 실제로는 인정하지 않기에, 신부들이 무슨 잘못을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 앞에 침묵하는 교구는 비겁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A씨)

사제 서품을 받은 지 20년이 넘은 천주교 신부(서울대교구 소속)가, 10년 넘게 교제한 여성에게 결별을 통보해 위자료를 물어주게 됐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최은주 부장판사)는 여성인 A씨가 서울대교구 소속 50대 B신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신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8월 31일 판결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증거·증언 등을 바탕으로 A씨와 B신부 사이를 "혼인의 예약으로서 약혼이 성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B신부가 A씨에게) 믿고 기다려주면 향후 가톨릭 신부직에서 은퇴하고, 원고와 혼인한 뒤 부부로서 노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10여 년간 약혼관계를 유지해왔음에도, 성의 있는 해명이나 이해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며 "B 신부는 A씨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편지봉투에 '남편 부인'... 약혼은 성립, 신부가 위자료 지급해야"

재판부는 다만 "부부공동생활이라고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존재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면서 사실혼 주장은 배척했다. 사실혼에 해당하려면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 사는 A씨는 2007년 2월 일본에 여행 온 B신부를 처음 만났으며, 그 뒤 7년간 19회 가량 일본 방문 때마다 만났다. B신부는 A씨 생일에 "모든 것을 주고 싶다"며 편지봉투에 'To 부인', 'From 남편'이라고 써서 줬다. 또 B신부는 A씨 딸 결혼식·조카 돌찬치 등 가족 행사에 참석했고, 휴대폰을 통해 "뛸 듯이 기쁘다, 장하다 내 딸 내 손자 내 손녀 아멘"이라는 등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지속하던 B신부와 A씨의 관계는 지난해 5월 갈라지게 됐다. A씨가 성지순례에 가서 만난 제3의 인물인 C신자(여성)가, A씨에게 "B신부와 오랜 기간 만나온 사실을 알고 있다"고 비난하며 B신부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한 것이다.

B신부에게 A씨가 C신자에 관해 묻자 그는 "신부의 길을 택했다, 여자(가) 있으면서 신부처럼 사는 게 아니라, 신부로 살기로 약속했다"며 "교회로부터의 요청이고 응답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관계를 끊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신부의 누나는 A씨 조카에게 "신부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며 "네 거지 가족, 신부 킬러(killer)"라는 말도 했다.

이에 A씨는 "B신부가 2007년경부터 유지해 온 사실혼 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했다"며 소송을 냈다. "(B신부는) 65세가 되면 신부 지위에서 은퇴하고 혼인신고를 하자며 약혼했는데도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신부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해 정신적 충격을 줬다"며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 "교구가 직접 나서 조사하기도"... B신부는 불복해 '항소'

A씨는 "세례명도 있는 C신자가 누구이며 B신부와의 관계는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앞서 서울대교구 사무처의 성직자 담당 신부가 나서서 이 일을 조사하기도 했다"면서 교구 측과 오간 이메일 사진 및 통화 기록을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처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해당 신부는 받지 않았다.

A씨는 애초 고소 당시 "첫 만남 당시 B신부로부터 술 취한 채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이를 따졌으나 B신부가 간절하게 애원해 용서했다"고 주장했으나 B신부는 재판 과정에서 지속해서 "가톨릭 사제의 의무감으로 정신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원고를 도와준 것이다, 성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원고(A씨)와 피고(B신부)가 사실혼 관계에 이르지는 못했을지라도 서로의 가족에게 상대방을 소개하고 함께 교류하며, 장차 혼인하겠다는 진실한 합의에 따라 교제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혼인의 예약으로서 약혼이 성립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피고(B신부)는 성의 있는 해명이나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 피고의 책임으로 약혼이 파탄 남으로써 원고가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며 "위자료 지급 의무가 있다, 제반 사정을 참착해 위자료 액수는 1000만 원으로 한다"고 판결했다.

통상 천주교 신부들은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독신 서약', '순명 서약' 등을 하게 된다. 가톨릭 신부로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판결에 따르면 B신부는 이를 위반한 셈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해당 신부는 현재 징계를 받아 휴직 상태이며, B신부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그:#서울대교구 , #사실혼, #천주교 신부, #천주교 신부 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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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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