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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근의 헌법개정은 1987년이었으므로 헌법이 개정되면 40년만에 개헌이 이루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중에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며 개헌 논의를 제안하였다.

박 대통령의 오늘 개헌관련 발언 내용은 개헌을 위한 실무 준비를 할 것이고, 임기 내 개헌완수를 위하여 정부 내에 조직을 만들어 개헌안을 마련할 것이며, 국회도 특위를 구성해서 국민여론 수렴과 개헌 범위와 내용에 대한 논의를 해주고, 대한민국의 50년, 100년 미래를 이끌어 나갈 미래지향적인 '2017체제 헌법'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대통령 단임제로는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한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하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하여 각 정당이 곧바로 의견을 내놨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개헌 추진 제안이 시의적절하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환영입장이며 비박계 의원들도 일부 반론이 있지만 대체로 마찬가지 의견이다.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대통령의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현 시점에서의 제안이 부적절하다고 반박한다. 야권 대선주자들 또한 개헌자체를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현 시점에서 개헌카드를 들고 나온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87년 이후 왜 개헌이 없었을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이나 일부 여당 정치인들의 개헌발의에 극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이나 엄중한 국제 정세, 그리고 개헌 블랙홀론 등을 내세워 매우 부정적인 태도였고, 그때마다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봐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헌논의 자체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대통령의 개헌에 관한 말 한마디에 친박계 의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선 것이다. 친박계 국회의원들에게 재갈을 물려서 발언을 막는 것도, 재갈을 풀어 발언의 물꼬를 트는 것도 모두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개헌이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구성 원리와 이념, 기본 정신, 국민의 기본권, 그리고 통치구조를 규정한 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법률에 비해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고 그 절차에 대하여 헌법에서 직접 규정하고 있다.

관련규정을 살펴보자. 헌법 제128조에서는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고(제1항), 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제2항)고 규정한다.

제129조에서는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30조에서는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제1항), 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제2항),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제3항)고 규정한다.

헌법 개정의 주요 대상은 국가 체제와 기본 구성원리, 국민에게 주어진 기본권에 관한 규정, 아니면 국가의 통치구조(정치체제)를 변경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헌법개정에 있어서는 통치체제를 변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기본권 일부에 대해서 변경하는 형식이었다.

가장 최근의 헌법개정은 1987년이었으므로 헌법이 개정되면 40년만에 개헌이 이루어진다. 그동안 헌법 개정이 없었던 이유는 권력을 잡은 정치세력들이 정치 목적에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다가 민주화 이후에는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통치구조로 개헌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개헌논의를 이어갈 실익이 없어진 셈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우리 헌법이 평온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들을 중심으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동력을 얻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곤 했다.

왜 지금 갑자기 개헌 카드를 던진 것일까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개헌논의를 억누르고 있다가 물꼬를 트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면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재 처해 있는 정국의 총체적 난맥상이 너무 심각하다.

시위도중 사망에 이른 백남기 농민의 문제,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제기,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행사했다는 권력의 비선실세 최순실 사태 등 어느 하나 손쉬운 것이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의혹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이미 민심이 이반된 상태다.

자칫하다가는 단순히 레임덕을 불러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는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당대표의 단식이나 색깔론으로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모든 정치적 이슈를 블랙홀에 가둘 수 있는 보다 강력한 히든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카드가 바로 개헌 논의다. 왜냐하면 개헌정국이 시작되면 각 정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기 어렵다. 개헌논의는 대권 주자들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므로 각 진영의 전선을 혼란에 빠뜨린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가면서 개헌논의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한쪽에 비켜서서 구경만 하면 된다. 심지어는 개헌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도 못하고 정치적인 이슈만을 삼키고 마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서 개헌논의를 상상해 보자. 우선 개헌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하여도 제도권과 제도권 밖에서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단순히 통치구조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본질서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부터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 전문에서는 임시정부의 지위와 관련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경제 민주화 및 사회복지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가지 인권, 특히 국제적 인권의 문제는 어떠한 모습으로 담아야 할 것인지,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헌법재판소의 지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등 많은 논란이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내각제를 받아들일 것인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갈 것인지,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선거구 획정 등에 대한 논의는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지금의 개헌논의는 분명 여러 세력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갑론을박이 거듭될 것임은 분명하고,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속에서 모든 정치적 이슈는 묻히게 된다. 일정한 방향을 잡지도 못하고, 개헌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기도 어려울 것임이 자명하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개헌논의에 빠져들면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단일대오를 형성해서 대응하기 어려울 것임은 틀림없다.

국회와 정부의 대립, 여당과 야당의 대립, 야당과 야당의 대립은 물론 시민사회세력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끝 모를 대립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야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개헌논의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은 개헌이 필요한지 여부, 필요하다면 어떤 분야에서 어떤 내용으로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야권을 비롯한 시민사회 세력들이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하나로 합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개헌논의를 이어가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야만성에 대하여는 어떻게 적절히 통제를 해나갈 것인지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한다.

야권운 전선이 흐트러져서는 안되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된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그동안 야권은 눈뜨고 코를 베인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속셈을 알면서도 번번이 당해왔다. 19대 총선이 그랬고, 지난 대선이 그랬고, 중요한 정치적 이슈마다 주도권을 가지고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해서 새누리당은 갖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정치적인 이슈를 만들어 전선을 흔들면서 빠져나가곤 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논의 제안에 공은 야권으로 넘어왔다. 야권이 개헌정국에서 어떻게 주도권을 쥘 것인지, 그러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을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파헤칠 것인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이든, 국민의 당이든 국민들이 야권으로 생각하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 정당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열해서 개헌정국에 묻혀 헤어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라 했다. 장인이 일을 잘 하려면 반드시 먼저 도구를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을 하기 전에 미리서 준비를 잘 하라는 교훈이다. 현 정국을 제대로 파악해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만 비로소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다양한 갈등을 잠재우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정치적 이슈를 묻어버리려는 불순한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태그:#개헌정국, #박근혜개헌, #정치적이슈, #국정난맥개헌, #우병우최진실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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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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