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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목요일. 아늑한 방에서 한창 단잠에 빠져든 새벽, 옆방에 한 무리의 남녀가 몰려오더니 큰 소리로 떠든다. 그들 덕분에 이 아파트가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도 눈치 안 보고 떠들기에 관광객들인 줄 알았더니, 집주인 안나의 인도네시아 친구의 동생이란다. 방을 세준 것인데, 이날 옆방에 우리가 들어있는 줄 모르고 친구들을 데려온 것이라나.

아침에 일어나니 안나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오늘 밤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부엌 식탁에 있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달콤한 인도네시아 카페라떼 믹스를 타서 맛있게 마셨다. 근처 텐진바시스지로쿠초메역 앞에 있는 주택박물관 개장 시각인 10시에 맞춰 집을 나섰다.

열 시에 박물관에 도착하니 벌써 긴 줄이 늘어서있다. 한, 중, 일 3개국어를 하는 직원이 각 나라말로 관광객들을 줄세우느라 정신이 없다. 차례차례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8층에 있는 박물관에 입장했다.

주택박물관 실내에 재현해놓은 오사카의 옛 상점가
 주택박물관 실내에 재현해놓은 오사카의 옛 상점가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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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박물관은 건물의 두 층(8층과 9층) 전체에 걸쳐 오사카의 옛 상점가의 모습을 실내에 재현해놓은 것이다. 공중목욕탕, 서점, 포목점, 그릇가게, 잡화점 등 당시 모습을 담은 목조 건물을 똑같이 재현해놓은 거리를 걸었다.

일본의 유명한 배우라는 늙은 남자가 오사카 사투리로 설명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빗소리가 들리고 밤이 왔다가 날이 밝는 음향 및 조명 효과 덕분에 실제로 1800년대 오사카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주택박물관 내부. 책과 그림을 파는 서점.
 주택박물관 내부. 책과 그림을 파는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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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박물관 내부. 귀족 저택의 다실.
 주택박물관 내부. 귀족 저택의 다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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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텐진바시스지 상점가에 있는 '하루꼬마 스시'에서 먹었다. 개점 시간인 11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벌써 긴 줄이 서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 겨우 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스시는 과연 명성대로 맛있었다. 바지락이 듬뿍 들어가 국물 맛이 일품인 500엔짜리 바지락 된장국과 한국인 직원이 추천해준 참치 대뱃살(오도로) 초밥은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오도로의 맛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생각이 났다. 

비가 많이 온 이날 오후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오사카성을 찾았다. 입장료를 받는 천수각보다 나는 오히려 이중으로 거대한 해자가 둘러쳐진 바깥 풍경이 훨씬 더 좋았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을 달성한 후 1583년에 지은 것이나, 천수각은 화재로 두 차례나 소실된 후 1931년에 신축한 것이다. 천수각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맨 꼭대기인 8층에는 주변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이중 해자로 된 인공 호수 위를 유유히 흐르는 유람선과 천수각이 보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이중 해자로 된 인공 호수 위를 유유히 흐르는 유람선과 천수각이 보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 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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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 8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성을 둘러싼 해자와 오사카시 전경이 보인다.
 천수각 8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성을 둘러싼 해자와 오사카시 전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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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은 지금은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 관광지가 되었지만 축성 당시에는 빽빽하게 민가가 들어찬 도시였다. 오사카라는 도시는 사실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성벽을 쌓은 돌은 사람 키보다 큰 것도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거대한 정문의 위용도 볼 만했다. 그 옛날 도요토미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크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저녁 때는 오사카 항구 근처의 덴포잔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가 돌아와 텐진바시스지로쿠초메역 근처에 있는 나니와노유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직경이 100미터가 넘는다는 대관람차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오사카항과 도시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건물 8층에 있는 나니와노유의 천연 온천수가 나오는 노천탕에서 별을 보며 목욕을 했던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날 밤 숙소는 조용했으나 밤중에 화장실에 간 종혁씨가 욕실에서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몹시 걱정을 했다. 왼쪽 눈을 붙잡고 신음을 해서 살펴보니 눈알이 새빨갰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눈을 다친 줄 알고 밤새 잠 못 자고 걱정을 했다. 정작 본인은 술에 취해 잘도 코를 골고.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를 찧어서 피가 났는데 그 핏물이 눈으로 흘러든 것이었다. 으이그, 십년감수.

덴포잔 대관람차와 근처 쇼핑몰의 레고 박물관에서 마실나온 기린.
 덴포잔 대관람차와 근처 쇼핑몰의 레고 박물관에서 마실나온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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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포잔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본 오사카항의 야경
 덴포잔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본 오사카항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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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국립 분라쿠 극장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국립 분라쿠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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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atree12fly에도 실렸씁니다.



태그:#일본여행, #오사카여행, #주택박물관, #덴포잔대관람차, #오사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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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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