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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과 19일 경주에서 각각 진도 5.8과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이번 지진을 직접 겪은 두 노동조합을 만나 경험을 들어봤다. 첫번째로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장과 인터뷰를 소개한다. -기자 말

대형마트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고 빽빽하고 높게 물건이 쌓여 있어 지진 발생 시 위험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지난번 지진 때 홈플러스 경주점에선 진열 상품이 떨어졌고, 포항 죽도점 건물의 일부에는 균열이 생겼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장은 지진 직후, 회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점검했다.

"대형마트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라 소소한 안전사고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도 대응이 늘 철저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화재 시 울리는 사이렌 오작동이 종종 있어요. 실제로 작은 불이 났는데 오작동인 줄 알고 무시했다가 뒤늦게 대응한 적도 있었죠."

다행히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회사는 지진 발생 후 안내 방송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가, 이후 직원들을 다시 들어오게 해서 수습하고 다시 근무하도록 했다.

지진에는 도움 안 되는 매뉴얼

"포항 죽도점과 경주점은 노동조합 지부가 없는 곳이라 직접 직원들에게 연락하고, 회사에도 조치와 대응을 묻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재난 매뉴얼에 제대로 된 지진 대응이 없더라고요. 어느 정도 강도일 때 어떻게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어서, 매뉴얼대로 했는지 따지기가 어렵더군요. 이번 지진 이후, 회사에서는 지진 안내 방송 문구도 정비하고 지진 발생 시 바로 대피시키도록 전 지점에 지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장관리자로서는 영업 중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위험을 감지해도 영업을 중단하는 것에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영업이나 생산에는 최대한 지장을 줄여야 한다는 지상 과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마을 주민들은 27분 만에 자체 판단 때문에 대피를 시작했지만, 인접한 산업단지 지역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25분이 지나고서야 구미시로부터 대피 통보를 받았다.

올해 7월 26일 세종 부강공단 렌즈 제조업체에서도 유해물질이 누출돼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인근 공단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으나, 소식을 늦게 접한 일부 노동자들은 사고 발생 2시간이 넘도록 작업을 계속했다. 뒤늦게 회사에 작업중지와 안전조치를 요구했지만 무시 당했다.

그래서, 안전 문제로 작업을 중지하거나 스스로 대피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이런 판단이 늦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판단이 늦어져 발생하는 위험은 결국 현장의 노동자들이 떠안게 된다.

매뉴얼과 함께 노동자에게 힘과 권리를

홈플러스 역시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 이외에도 울산, 부산 지역의 지점에서도 고객과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었지만, 노동자들이 대피를 강하게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의 경우, 물건이 떨어지고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는 일이 있다 보니 회사에서 방송을 하고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근처 울산이나 부산 지역에서도 진동을 크게 느끼고 회사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안전하다는 얘기만 들은 거죠."

최대영 부위원장은, 이번 지진을 경험하면서 구체적인 매뉴얼 보완과 교육·훈련은 물론 작업중지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재난에 대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매뉴얼에도 지진 관련 내용이 훨씬 자세히 들어가야 할 것 같고요. 위험할 때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도 필요하죠. 그런데 단체협약에 반영이 안 돼 있고 경험도 없어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을 높이는 것이 안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고 실효적이다. 지진이 나면 지진 매뉴얼을 만들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에 누출사고 매뉴얼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셈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작업중지권이다. 여러 전문가에 의하면 지진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만큼,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스스로 대피하고 고객도 대피 시킬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



태그:#지진, #작업중지권, #재난 대비 훈련, #안전조치, #지진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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