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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던 지난 여름, 돌하르방공원 야외작업장에서는 망치와 정이 부딪치고 돌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마을 어르신, 청년, 어린이, 엄마들이 돌하르방공원 원장이자 친근한 옆마을 삼촌이기도 한 조각가 김남흥 선생님과 함께 한 돌조각 시간.

"세상에 내가 돌조각이라니!"

생각이나 했겠는가. 살아생전 이런 걸 하게 될 줄을. 이렇게 조금씩 쪼아서 언제 모양을 만드나 싶다가도 망치질에 몰두하다보면 시간이 뚝딱 흘렀다. 그리고 시간과 땀이 깎아낸 검은 현무암은 오늘 근사한 돌그릇으로 완성되었다. 돌그릇에 국화도 심고, 난초도 심고, 작은 귤나무도 심어 놓으니 정말 근사하다. 당당히 축제의 야외 전시 작품이 될 몸들이다.

돌하르방 조각가 김남흥 작가와 주민들이 완성한 나의 돌그릇
 돌하르방 조각가 김남흥 작가와 주민들이 완성한 나의 돌그릇
ⓒ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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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과정이 이미 축제

돌조각뿐이 아니다. 4월부터 마을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지고, 입을 모아 노래하고, 카메라 셔터소리 찰칵이고, 서툰 흙피리 소리 고와지고, 붓질이 바쁘고, 옷감을 물들이고, 한밤중에 숲속을 더듬어 걷고, 아무튼 아주 바쁘고 흥겨웠다.

사진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예전에 자식들이 사준 해묵은 카메라를 장롱에서 꺼내 드시고는 어릴 때부터 물뜨러 다니던 동백동산을 찍었다. 네모난 틀로 보는 숲은 평생을 알던 모습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처음 춤을 배운다고 모여서는 어색하고 쑥스러워 못하겠다던 선흘분교 어머니회와 부녀회는 어느새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대안학교인 볍씨학교 청소년들과 선흘분교 어린이들은 숲속 친구들의 하루를 마임으로 표현하느라 많이도 웃었다. 숲과의 조율팀은 인간의 간섭이 사라진 밤의 숲을 기록하기 위해 칠흑같은 숲길을 걸으며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선흘곶 동백동산 습지생태예술제-물․숲․새'가 코앞이다. 그동안도 마을은 이미 축제였지만, 이제 그 축제를 여러 사람들과 나눌 차례다. 우리끼리 해오던 것을 큰 자리에서 내보이려니 괜히 긴장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마임이스트 이경식과 볍씨학교 청소년, 선흘분교 아이들이 숲친구들의 하루를 마임으로 표현하는 공연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마임이스트 이경식과 볍씨학교 청소년, 선흘분교 아이들이 숲친구들의 하루를 마임으로 표현하는 공연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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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호흡해온 예술가들

지난 봄부터 주민들과 함께 물, 숲, 새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을 이끌어갈 예술가들이 모여 동백동산을 배우고 느끼며 함께 할 작품 구상을 시작했다.

자연과 사람의 생태적 관계를 표현해온 생태예술가 강술생, 돌하르방을 복원하고 재해석해온 조각가 김남흥, 간드락소극장을 이끌어온 공연기획가 오순희, 제주의 신화와 역사, 해녀를 몸짓으로 풀어온 무용가 김미숙, 제주의 중산간과 바다를 생명의 눈으로 기록해온 사진가 박훈일, 제주어와 제주신화를 마임으로 풀어내는 마임이스트 이경식, 오름과 바다를 화폭에 옮겨온 화가 이옥문, 제주의 숲과 바다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엮어온 참여생태예술가 정은혜, 곶자왈 숲속을 흐르는 바람 같은 소리 오카리나 연주가 이정순, 제주 갈옷과 쪽으로 자연의 빛을 물들여 온 천연염색가 이미애, 익숙한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해석해온 시각예술가 변금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즐거운 이을락밴드,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할 감독 이상목.

'선흘곶 동백동산 습지생태예술제-물․숲․새'의 과정은 제주와 호흡해온 다양한 예술가들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지역 주민들의 진정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사진가 박훈일 작가와 주민들이 직접 찍은 동백동산 사진을 고르느라 여염이 없다.
 사진가 박훈일 작가와 주민들이 직접 찍은 동백동산 사진을 고르느라 여염이 없다.
ⓒ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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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9일 주말 이틀 동안 제주도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에서 습지생태예술제가 열린다.
 10월 8-9일 주말 이틀 동안 제주도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에서 습지생태예술제가 열린다.
ⓒ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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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이 예술로 어우러지는 따뜻한 축제

한 해 2400개나 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지자체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원래 축제는 공동체의 의식이다. 공동체의 기쁨과 자연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열린 광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공동체가 물과 숲과 새와 교감하며 빚은 이번 예술제는 진정한 축제가 아닐까 싶다.

돌아오는 10월 8~9일 주말 이틀 동안 17개의 전시와 공연, 목공과 음식 체험, 동백동산 생태탐방, 삼촌노래자랑, 메이킹 필름 상영까지 사람냄새 진한 축제가 펼쳐진다. 사람과 자연이 허물없이 예술로 어우러지는 따뜻한 축제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주말 선흘곶으로 발길이 향하리라. 때를 맞추지 못한다면 실내전시는 11월 6일까지 계속되니 늦더라도 그 온기는 남아있을 것이다.

꼬마해설사와 함께 하는 동백동산 탐방. 동백동산은 남한 최대의 난대성상록수림지대이기도 하다.
 꼬마해설사와 함께 하는 동백동산 탐방. 동백동산은 남한 최대의 난대성상록수림지대이기도 하다.
ⓒ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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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습지 동백동산의 중요 습지 먼물깍. 동백동산에는 먼물깍 외에도 20여 개의 습지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의 중요 습지 먼물깍. 동백동산에는 먼물깍 외에도 20여 개의 습지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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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동산 습지의 밤. 숲과의 조율을 위해 정은혜 작가와 주민들은 풀벌레와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다.
 동백동산 습지의 밤. 숲과의 조율을 위해 정은혜 작가와 주민들은 풀벌레와 함께 연주를 하기도 했다.
ⓒ 황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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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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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흘1리생태관광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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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동산은 제주도 조천읍 선흘1리에 있는 습지를 품은 곶자왈숲이다. 람사르습지,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되며 그 생태적 가치가 조명되었다. 선흘1리와 조천읍은 지역 주민들의 주도로, 주민들의 속도로 자연을 지키고 생태관광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의 : 동백동산습지센터 064-784-9446)



태그:#습지생태예술제, #물숲새, #동백동산, #선흘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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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중산간마을 선흘1리에 살면서 마을출판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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