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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들은 어려서 앓는 수두를 서른이 넘어서 앓았습니다. 입원할 정도로 아주 심했습니다. 온몸에 붉은 물주머니가 솟으면서 열이 나고, 딱지가 앉아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매우 가렵습니다. 그것을 못 참고 긁으면 흉이 지지요. 그래서 평상시에는 조심하는데 자다가 비몽사몽 간에 등을 비벼댔더니만 등이 엉망이 됐습니다. 처음 제 등을 본 아내, '아이고, 등이 전쟁터네'.

살아가면서 종종 겪습니다. 처음 얼굴 보고 다가와서는 등을 보고 뒷걸음 치는... 그럴 때마다 왜 그리 아프던지요. 흉진 등을 가진 것이 내 모습인 것을.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지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 관계는 거기까지입니다. 등을 보고 돌아서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등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요.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지내다 보면 내 등을 보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은, 고수의 관문 '무비판적 수용'입니다. 여기를 지나가야 고수라 할수 있습니다. 불의 전차 '열정'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무기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이나 말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판단합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잣대를 들이대지요. 그 기준에 어긋난다 싶으면 비판을 하기도 하고, 감정이 실리면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실망도 하지요.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흉진 등을 가진 그 모습이 지금 그 사람의 최선이랍니다. 일부러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자신의 등이 보이지 않기에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깨닫지 못하는 그를 바꾸려고 콘트롤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렵습니다.

불의 전차가 '건강'과 '끝에 대한 열린 자세'라는 두 바퀴로 달리는 것처럼, 이 '수용'의 관문을 들어서려면 갖춰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자세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세입니다. '방어'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 상대가 목을 겨누고 칼을 들이대면 움찔하지요.

그러나 신기한 것은 방어를 하지 않으면 공격을 당하지 않습니다. 방어는 곧 공격의 형태로 드러나기에 그 반작용으로 상대의 공격을 부릅니다. 결국 공격은 내가 약하다는 증거지요. 그 약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에 핑계나 남탓을 하면서 방어를 하게 됩니다. '수용'은 자신의 약함을 방어하려들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 놓고 서로 등을 보여도 좋을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1995년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입니다. 말기 알콜중독자 벤과 거리의 여자 세라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가슴시린 사랑을 합니다. 벤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억하는 세라의 마지막 명대사, “저는 벤이 바뀌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 Leaving Las Vegas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1995년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입니다. 말기 알콜중독자 벤과 거리의 여자 세라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가슴시린 사랑을 합니다. 벤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억하는 세라의 마지막 명대사, “저는 벤이 바뀌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 Grov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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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용, #고수의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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