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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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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협상/쿠바 미사일 위기/라틴 아메리카 비핵지대조약/예멘 통일협상/300년이 중소국경협상/유럽석탄철강공동체/한국전쟁 휴전협상/(인도-파키스탄) 타슈켄트 정상회담/(레이컨-고르바초프)레아캬비크 정상회담/미얀마의 소수민족 평화협상/한일협정/캠프데이비드협정/에스퍄냐 망각협정/수단과 남수단의 이별협상/키프로스 통일협상/미중 관계 개선/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협상/북아일랜드 평화협정/콜롬비아 평화협상.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인 협상들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협상의 전략>에서, 이 20개의 협상사례를 분석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짚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된 상황이라, '인류가 3차 대전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였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부터 눈길이 간다.

마침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직후인 9일 오전에 만난 김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중요한 시사점은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군이나 정보당국 즉 전문가들만을 믿지 않고 내부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게 열린 토론을 했고, 군부 강경파를 소련과의 협상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동생을 막후라인으로 활용하는 한편 유엔 대사도 움직였다"고 강조했다. "벼랑끝에서 최후까지 대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상대방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정신병자 취급하고, 가장 앞장서서 강경론을 내놓는 오늘의 우리 현실과 대비된다.

김 교수는 또,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통일 모델로 독일을 꼽고 있는데 비해, 예멘 사례를 강조했다. "독일은 분단과정이나 군사적 적대상황, 경제나 복지수준도 우리와는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남북 예멘은 1990년에 최고지도자들간의 정치적 합의로 통일했으나, 갈등 끝에 1994년에 전쟁을 통해 북예멘이 남예멘을 접수했다. 하지만 현재는 길이 보이지 않는 내전 상태에 빠져있다.

그는 "우리도 힘으로 통일하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전쟁으로 통일하자는 사람도 공공연하게 나오는데 예멘은 그렇게 통일하면 어떻게 되는지, '서두르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폭력을 통한 통일의 미래상이 어떤 것이고, 통일이 대박일 수도 있지만 쪽박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고 답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문답 전문.

"케네디는 군이나 정보기관의 전문가를 믿지 않았다"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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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대목에서는 당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군이나 정보당국, 이른바 전문가들을 믿지 않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 배치 문제나 핵잠수함 도입 문제만 놓고 봐도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큰 것 같다.
"케네디는 1961년에 군부와 중앙정보국(CIA) 의견에 따라 쿠바의 피그만 침공을 재가했다가 참혹하게 실패한 데서 이런 교훈을 얻었다.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우리가 선공하면 소련이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묻자 미 공군 참모총장(커티스 르메이)은 '소련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굉장히 무책임한 답변이다.

이 대목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통령은 안보의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무기 도입 등에서 군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전체 국가 운영 차원에서 개입할 필요가 있는 거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중요한 시사점은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한 나라의 대표로 외국과 협상하려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과 반대파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케네디는 내부적으로 가장 합리적 대안을 만들 수 있게 열린토론을 했고, 군부 강경파를 소련과의 협상 수단으로 이용했다. 동생을 막후라인으로 활용했고, 유엔 대사도 움직였다. 벼랑끝에서 최후까지 대안을 찾았다."

- '쿠바 미사일 위기'상황을 분석하면서 '신뢰는 조건이 아니라 협상의 결과'라고 짚었다. 문득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한신프)가 떠오른다.
"한신프 자체는 괜찮은 정책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정책을 만든 사람(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과 추진하는 사람이 다르고, 원래 정책과는 다른 내용으로 집행하고 있는 게 문제다. 한신프는 신뢰는 과정이라는 걸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본다. 협상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끼리 하는 게 아니다. 못 믿으니까 만나서 속생각도 들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못믿는 사이니까 협상하는 것이고, 협상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신뢰를 깨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애초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것이다."

- 예멘은 1990년에는 합의로, 1994년에는 전쟁으로 통일했으나, 현재는 내전 상태다. 예멘편 제목을 '서두르면 망한다'로 잡았는데, 우리는 예멘의 통일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협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인 통합과 평화가 이뤄진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좇다보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보통 통일사례로 독일을 꼽지만, 사실 분단과정이나 군사적 적대상황이 우리와는 달랐다. 유럽 전체의 지역협력 과정에서 동서독간 관계 개선이 진행된 측면이 있고, 경제나 복지수준이 우리와는 달랐다.

그 반대에 예멘이 있다. 90년 합의통일때 군사충돌도 벌어졌고 경제적 격차도 컸는데 이런 문제 해결 없이 남북의 기득권자들이 정치 권력 나누기를 했다. 이게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고 결국 전쟁이 일어났다. 통일이 대박일 수도 있지만 쪽박일 수도 있는 생생한 사례다."

- 흡수통일론에 대한 반면교사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도 힘으로 통일하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전쟁으로 하자는 사람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예멘은 그렇게 통일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남예멘에 대한 북예멘의 군사적 점령이 현재의 국가실패, 국가권력의 공백을 낳았다. 폭력을 통한 통일의 미래상이다."

"한미일관계, 1965년 한일협정 때 상황과 너무 흡사"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20세기와 21세기 세계사를 바꾼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다룬 책 <협상의 전략>을 펴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연철 교수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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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한일협정 관련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대목을 봤다. 일본에 점령당했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가 보상을 적게 받았더라. 명칭도 우리는 청구권인데, 미얀마와 필리핀은 분명히 위법행위를 전제한 '배상금'이었다.
"우리가 2차 대전 승전국에 포함되지 못한 게 큰 원인이다. 그래서 (1951년 8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배제됐다. 그래서 배상이 아니라 청구권으로 국한돼버렸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1965년의 재현이다. 사드 배치문제, 위안부 협상 문제가 당시와 너무 흡사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서글픈 건 당시 한일협정에 반대했던 분들이 지금은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그렇지 않은가.

한일관계는 양자 관계가 아니라 한미일 3자관계다. 1965년에 한일문제 빨리 해결하라고 종용한 게 미국이다. 한국이 식민통치의 불법성을 부정하는 일본과, 아시아의 반공전선 구축을 위해 한일간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미국 사이에 끼어서 한일 협정을 한 거다.

지금도 똑같다. 미국은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한일과거사 문제 빨리 정리하라고 압력을 넣고, 일본 우익은 이를 활용한다. 결국 사드배치와 지난해 12월 28일 한일정부간 일본군 위안부 협상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한일정상회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다른 사례들과 달리 '미얀마의 소수민족 평화협상', '에스파냐 망각협정',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협상'은 외교협상이 아니라 국내문제 협상이다.
"내전을 치른 국가들이 어떻게 화해와 통합을 이뤘나하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미얀마는 민주화를 국가발전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평화 없이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어렵다. '평화와 공동 번영의 선순환'이라는 것은 남북관계뿐 아니라 국내정치에도 해당되고, 국내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보통 정치인들, 국민들 증오감에 올라타"

- 교보문고 진열대에 이 책을 "∼협상을 이끈 리더들의 선택을 통해 참된 리더의 역할을 돌아본다"라고 설명해놨더라. 국제 정치, 외교의 영역에서 참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타임>지가 1970년에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보통의 정치인들은 여론을 쫓아가는데 브란트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보통의 정치인들은 단기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증오의 감정에 올라탄다. 그런데 지도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지도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론을 따라가는 게 아니고 여론을 끌고 가야 한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있다.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정치가 무슨 의미가 있나, 여론조사만 따라가면 되지.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론을 그대로 따라갔다. 여론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단기적인 여론에 너무 충실했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못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정치하는 분들이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우는데, 이건 이념이 아니라 방법론이다. 좌우 어디에 서느냐 하는 이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중도실용주의를 이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간다고 할 때 그 정 가운데로 가는 것을 중도실용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면 산에 부딪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중도실용주의를 내세우다 그렇게 산에 부딪쳐서 사라졌다. 산이 높으면 더 높이 올라가는 거고, 구름이 높으면 그름 아래로 가야 하는 거다. 이건 등소평의 '흑묘백묘론'과 같은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다."

-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군사적긴장이 급격히 고조되는 상황에서 '협상'은 유약해 보이기도 한다.
"예멘 사례처럼, 당장은 폭력과 무력으로 해결되는 것 같지만 힘에 의한 해결은 큰 상처를 남기고 결국은 관계를 악화시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문제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협상과 화해밖에 없다."


태그:#협상, #김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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