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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동네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책방 없냐"고 물었더니 "누가 요즘 책방에 가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방은 계속 생겨나니까요. 심지어 심야책방, 책맥(책+맥주), 낭송회 등등의 문화도 선도해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취향저격 책방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동아서점 3대 운영자 김영건 팀장. 매대의 모든 책은 그의 손을 거쳐간다.
 동아서점 3대 운영자 김영건 팀장. 매대의 모든 책은 그의 손을 거쳐간다.
ⓒ 속초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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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너도 나도 '포켓몬 고' 한다고 속초로 향했을 때 책 좋아한다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속초 가면 동아서점 들러봐. 네 취향에 맞을 거야."

은밀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특정 장소를 추천받으면 일단 호기심이 일었다. 지방 서점의 80%가 문 닫는 암흑의 시기에 3배 이상 규모를 키운 곳, 독립출판물을 들여와 매장 정중앙에 배치하는 곳, 속초 시민들 독서모임 하는 공간을 마련해준 곳...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골에 있는 소박하고 오래된 헌책방 같은 곳을 상상했으나 막상 도착하니 번듯한 건물이 서있었다. 가을비 내리는 어둑어둑한 거리에 환하게 불 밝힌 책방은 유독 눈에 띄었다. 넓은 통유리 창으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간판은 하얀 바탕에 '동아서점 개점 1956'이라고만 적혀있었다. 60년간 지역을 지킨 뚝심이 느껴졌다. 최근 유명인사와 출판 전문가까지 동네책방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 그렇듯 밀물처럼 시작된 유행은 썰물처럼 빠지지 않던가. 잠깐 흥하고 마는 사례 말고, 세월의 시련을 견뎌낸 진짜배기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불 켜진 동아서점.  2015년 확장 이전하면서 외관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불 켜진 동아서점. 2015년 확장 이전하면서 외관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 속초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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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자 동아서점 2대 운영자이자 김영건 팀장의 아버지 김일수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막내아들인 팀장이 인터뷰 잘 해줄 거라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잠시 매장 중앙에 놓인 검은 탁자에서 기다렸다. 시와 에세이 서가 사이에 있는 탁자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책 읽는 공간이었다.

탁자 옆 긴 소파에서 젊은 아빠와 어린 아들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또 정문 옆 창가 책상엔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비 내리는 거리를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세련된 가구 배치와 조명은 북카페에 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외출하기 적절하지 않은 날씨였지만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드나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운터에서 고객 카드결제를 마친 김영건 팀장이 다가왔다. 내년 2월 딸바보 아빠가 될 예정이라는 그는 수줍게 웃으며 커피를 건넸다. 인터뷰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얼룩이 컵 바닥에 눌어붙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작은 화분과 조개 껍데기가 놓인 탁자. 동아서점에는 책 읽을 공간이 충분히 마려되어 있다.
 작은 화분과 조개 껍데기가 놓인 탁자. 동아서점에는 책 읽을 공간이 충분히 마려되어 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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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중앙 눈에 띄는 독립출판물 매대

- 예전에 다른 일을 했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서점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LIG문화재단에서 계약직으로 공연, 기획 일을 했어요. 재계약 앞두고 고민하던 중에 아버지께서 난데없이 확장 얘기를 꺼내셨어요. 의외였습니다. 전 예전부터 나이도 있으시니까 서점 일 그만 두시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가게 수익이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고, 2000년대에 출판 시장이 침체된 상황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서점으로 뭘 하겠다는 기대가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갑작스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속초로 내려온 거예요."

- 기대하지 않고 시작한 서점 치고 너무 근사해요. 무슨 변화가 있었나요?
"시청 인근에 있던 구 동아서점을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로 옮겼어요. 서점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도 정작 매출이나 자금 운용에 대한 부분을 잘 몰랐어요. 큰 그림도 없이 세부적인 요소들만 신경 쓰게 되었어요. 책 배치, 매대 구성, 인테리어 같은 것들이요.

이곳을 찾은 분들이 서점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게 만들까에 집중했어요. 고향에 내려가서 서점 한다고 하니까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에 만난 건축 전공하는 한국인 친구가 팔 걷고 도와줬어요. 직접 강원도까지 내려와 페인트 칠하고 자재 나르고 그랬어요.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베스트셀러 예감 서가. 발상이 참신하다.
 베스트셀러 예감 서가. 발상이 참신하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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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 중앙에 독립출판물 매대가 놓여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독립출판물이 무엇인가요?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운데요. 보통 작가가 기획, 집필, 편집까지 출판에 필요한 일체의 행위를 직접 해서 만든 책을 가리켜요. 아무래도 거대 자본이나 출판사 입김이 닿지 않으니까 자유롭죠. 영화로 치면 독립영화를 떠올리시면 될 듯해요. 독립출판하신 분들은 개인이 입점 문의를 하세요. 작년 6월에 '미란다처럼'이 처음 입고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 둘 조금씩 늘어났어요."

- 강원도에서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은 강릉 '물고기 이발관'과 동아서점 밖에 없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다루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어떻게 판매할 생각을 했나?
"서울에 살 때는 주기적으로 독립영화관을 방문했어요. 다양한 관점과 생각 거리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속초에 오니까 영화관이 메가박스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이 상황을 출판에 똑같이 대입시켜보면 여기 강원도에도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독립출판물을 찾는 손님들이 분명 있을 텐데 어떤 서점에 가도 구할 수 없다면 참 아쉽겠다고 판단했어요."

동아서점에서는 개성 넘치는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동아서점에서는 개성 넘치는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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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에 붙어있는 손글씨가 정감 있어요. 직접 쓰시는 건가요?
"네, 책의 감성을 전달하기에 인쇄물보다 손글씨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잘 쓰는 글씨는 아닌데, 손님들이 싫어하지는 않으셔서(웃음). 시즌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작성해요. 사실 모든 책을 읽지는 않아요. 대신 좋아하는 작품이 나오면 그 작가의 다른 책을 같이 소개합니다."

- 구석구석 느껴지는 모던하고 쾌적한 분위기는 감탄할 만하네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가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도서 진열할 때 너무 복잡하게 사유하지 않아요. 그때그때 헤아려가며, 책을 배치하고 손글씨를 써요. 책을 그냥 상품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상품으로 잘 팔리려면 가볍게, 직관적으로 예쁘게 보여야 해요. 책을 너무 어렵지 않게 대하려 해요.

책에 대한 책임감, 의무감 이런 것들이 지나치면 힘들어지더라고요. 책이 가진 무게를 좀 덜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팔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해요. 추천하고 싶은 책은 진열을 통해서 눈에 띄도록 하고, 집어 들게 만들어요. 저는 서점 직원이니까요."

서가 곳곳에 붙어있는 손글씨. 주인장 취향을 믿고 책 고르기도 동네책방만의 재미다.
 서가 곳곳에 붙어있는 손글씨. 주인장 취향을 믿고 책 고르기도 동네책방만의 재미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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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갈 길 막막한 동네 서점

- 책방지기의 철학이 묻어 있는 책 진열이 멋지네요. 그간 매출이 많이 뛰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2015년 1월에 가게를 이전했는데 오픈하고 매출이 오르지 않았어요. 1년 동안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거나 그런 게 별로 없었어요. 속초시 인구가 8만 명 정도예요. 매장을 확장했다고 해서 책 수요가 갑자기 생기지는 않으니까 당연한 결과였어요. 어떻게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하는지 몰라 막막했어요. 제어하거나 걷잡을 수 없는 요인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어요. 이를테면 관광객 분들이 오셔서 인터넷에 후기를 남겨주시고, 다른 지역에 소문이 나고, 언론에 소개가 되고 이런 점들은 오픈할 때 상상도 못 했어요. 여러 가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현재는 적당한 수준에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적당입니다(웃음). 첫 해에는 365일 출근했어요. 하루 12시간 노동하는 주 7일 근로자였죠.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겨우 월요일 하루를 쉬고 있어요. 서점 운영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 살인적인 노동 강도네요.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수익이 안 나는 까닭이 뭔가요?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정가의 15% 내에서만 할인, 선물, 마일리지를 지급할 수 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을 판매할 때 가격을 달리하거든요. 보통 온라인 서점에는 정가의 60~65%, 오프라인 서점에는 70~75% 수준으로 공급률을 매겨요. 온라인 서점은 판매량도 많고, 결제가 빨리빨리 잘 되니까 저렴하게 주는 거죠. 온라인 서점이 책값 10%를 할인해 줄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어요.

공급률 75%면 오프라인 서점은 만 원짜리 책을 칠천오백 원에 가져와야 하니까 이천 오백 원이 순이익이에요. 여기에 회원 마일리지 5%, 카드 수수료 2~3%, 매장 운영비, 인건비, 단골이나 멀리서 온 손님 할인 약간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적어요. 그렇다고 각종 혜택을 드리지 않으면 오프라인 서점은 온라인 서점과 경쟁이 되지 않죠.

열심히 해도 크게 벌 수 없는 구조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면 정가로 책을 판매하고 있어요. 대신 할인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정가로 구매하셨을 때 굿즈(Goods)를 드리는 게 더 괜찮다고  봐요."

- 굿즈는 어떤 개념인가요?
"부록이라 해야 할지 선물이라 해야 할지. 책과 관련된 다이어리, 북엔드, 머그컵 등의 각종 소품들을 의미해요. 몇몇 출판사들은 상당히 규모도 있고 인지도 높은 데도 불구하고 지역 책방의 생존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굿즈들을 제작해서 보내주고 있거든요. 물론 저는 책 가격이 조금 더 싸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상생을 위해서 정가에 책을 판매하고 굿즈를 제공하는 것처럼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아요."

서가에 꽂힌 수만권의 책들. 김영건 팀장과 아내가 매일 오전마다 배치와 정리를 맡는다.
 서가에 꽂힌 수만권의 책들. 김영건 팀장과 아내가 매일 오전마다 배치와 정리를 맡는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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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른 이유 없이 동네책방이 좋다"

김영건 팀장은 앞으로도 계속 '쓸모없는 일'을 성실히 해 나갈 거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쓸모없는 일이란 서점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했다. 쓸모없다는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쓸모없는 일들을 정성이라고 봐주셔서 단골손님도 생기고 사실은 보람도 있고..."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순간 분명 보았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쓸모없는 일' 단어 선택은 겸손했지만 그는 정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불문학을 전공했으며,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지금도 이따금 소설과 수필을 쓴다는 이야기를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추석 연휴에 읽을 요량으로 한참이나 책을 골랐다. 독립출판물인 박성진 시인의 '숨'을 비롯해 책 세 권을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손맛이었다.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먼저 온 손님이 서점지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웃으며 나갔다.

곧 다른 손님이 손잡이를 밀고 매장에 들어오더니 반가운 체를 하며 주인장에게 인사했다. 몇 번이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데리고 온 아기 볼을 쓰다듬는 사이. 낯선 동네에서 주민들이 부럽기는 처음이었다. 문을 닫고 나오며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아서점이 육십 년 버틴 까닭을 이제 알 것 같았다.



태그:#동네책방, #서점, #속초, #동아서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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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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