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원형탈모증과 약물과의 관련성을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중략) 약물이 원형탈모증의 유발인자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특정 어린이 전문 한의원 체인점에서 처방한 한약을 복용한 일부 소아 환자들 사이에 탈모 증상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모발 분야 전문학회인 대한모발학회에서 공식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환자 진단 없이 기존 언론 보도 내용을 토대로 내부 의견을 정리하고, 기존 양의학계 입장을 대변하면서 논란만 더 키웠다.

모발학회 "원형탈모증 발병 원인 다양... 한약이 원인이라고 단정 못해"

지난 4월 열린 대한모발학회 탈모증 건강 강좌 포스터
 지난 4월 열린 대한모발학회 탈모증 건강 강좌 포스터
ⓒ 대한모발학회

관련사진보기


피부과 의사와 의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대한피부과학회 산하 대한모발학회는 30일 '한약 복용 후 소아 환자들에서 발생한 탈모에 대한 의견서'를 발표했다. 올해 초까지 이 학회 회장을 지낸 심우영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최근 언론을 통해 "3일 만에 탈모를 심하게 유발하는 약물은 없다"면서 "아이의 탈모 원인이 한약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논란이 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한약 탈모 아이' 진료의사 "한약 원인 아닌 듯").

당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에서 심 교수 의견에 크게 반발하자, 모발학회는 심 교수 개인 의견일 뿐 학회 공식 의견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SBS는 지난 8일 27개월 된 소아 환자가 어린이 한의원 체인인 함소아한의원에서 처방받은 한약을 복용한 뒤 사흘째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일주일 사이에 전신 탈모되는 증세가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어 SBS는 또 다른 함소아한의원에서 처방받은 한약을 복용한 뒤 수주에서 수개월 뒤에 각각 탈모 증세가 발생한 두 소아 환자 사례도 추가 보도했다([SBS 관련 보도] 한약 먹은 후 탈모된 아기…배상금은 300만 원). 

이에 함소아한의원은 이들 환자가 약물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약인성 탈모'가 아닌 자가면역질환인 '전두탈모'로, 발병 원인이 다양해 한약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한약이 탈모 원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의학-양의학계간 갈등 양상으로 번졌다.

우선 모발학회는 언론에 공개된 내용과 진료 의사 소견을 토대로 이들 소아 환자에게 발생한 탈모를 원형탈모증, 그 가운데도 두피 모발 전체가 빠지는 전두탈모증이나 눈썹까지 빠지는 전신탈모증으로 판단했다.

모발학회는 "원형탈모증은 항암제 복용 후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생장기 탈모증이나 항암제 이외 약물의 장기복용으로 발생하는 휴지기 탈모증과는 다른 질환"이라면서 "전두탈모증이나 전신탈모증과 같은 심한 형태의 원형탈모증은 치료가 잘 안 되고 오랜 기간 만성적으로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모발학회는 "원형탈모증은 다양한 유발 인자에 의하여 모낭의 '면역특권'이 소실되어 자가면역기전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유전적 감수성을 가진 환자에서 정신적 스트레스, 감염, 약물, 예방접종 등 다양한 요인이 유발인자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함소아한의원 쪽 해명과 대체로 일치한다.

"도적강기탕 일부 성분, 유전적 요인과 결합 가능성 배제 못해"

다만 모발학회는 "원형탈모증과 약물과의 관련성을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약물 투여 후 원형탈모증이 발생한 사례들이 흔하지는 않지만 문헌에 보고되어 있어서 약물이 원형탈모증의 유발인자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3일 만에 탈모 증세가 발생한 첫 번째 환아가 복용한 것으로 알려진 '도적강기탕'에 대해서도 "도적강기탕이 원형탈모증을 일으킨 유일한 발병 요인이라고 단정하기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일부 성분에 염증 유발 물질이 포함됐음을 들어 "유전적인 감수성을 가진 환자에서 원형탈모증의 발병에 방아쇠를 당긴 촉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함소아한의원 관계자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모발학회 의견 가운데 학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맞지만 언론 보도 내용만 토대로 하다 보니 사실과 다른 내용이 일부 있다"면서 "모발학회는 마치 탈모 증상이 발생한 환아 3명이 모두 '도적강기탕'을 복용한 것처럼 전제했는데, 3명 모두 다른 질환으로 진료 받아 다른 약을 처방받았고 겹치는 성분도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소아 환자가 한약 복용 이전에 장염으로 병원에서 복용한 양약도 원인일 수 있다는 함소아 쪽 주장에 대해 모발학회는 다른 두 소아 환자가 복용한 양약이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세 환아에서 공통된 약물 병력이 한약 복용이기 때문에 공통된 병력에 대해 원인을 의심하고 검토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약 복용 3일 만에 탈모? "마리 앙투아네트도 하루 만에 백발"

또 모발학회는 한약 복용 3일 만에 탈모 증상이 나타난 첫 번째 사례에 대해서도 "유발 요인에 노출 후 원형탈모증이 발생하는 기간은 매우 다양하며 수주에서 수개월 이내에서 생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라면서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소아에서 유발 요인 작용 후 1주일 이내에 원형탈모증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는 사례들이 의학 문헌에 보고되어 있다"고 밝혔다.

모발학회가 사례로 든 것은 바로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사형을 앞두고 하룻밤 만에 백발이 됐다고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다. 모발학회는 의학적으로 아직 인과 관계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검은 모발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원형탈모증 특성으로 흰털만 남아 백발이 된 역사적 사례가 의학 문헌에 기술돼 있다"고 밝혔다.

모발학회는 "본 발표가 추가적으로 이해 당사자, 관련 단체 및 특정 언론 간의 소모적인 논쟁의 도구로 활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지만 "한약도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 및 유효성이 검증되어 그 인과관계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면서 대한의사협회 등 기존 양의학계 입장을 대변하면서 오히려 논란만 키웠다.

함소아한의원 관계자는 "모발학회 의견처럼 원형탈모증은 자가면역질환이어서 한약뿐 아니라 양약, 환자의 생활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한약이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게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산하 특수법인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중재를 양쪽에 권고했지만, 첫 번째 소아 환자 부모들은 함소아한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그:#한약, #탈모, #함소아, #대한모발학회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