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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말없는 약속 20년'에 이어 이제는 제 자신을 시작으로 나의 심리적, 생활상의 문제들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에 걸림돌이 됐던 독(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움을 주는 요인)을 다스렸을 때 건강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며 당당하게 생활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연재기사의 이름은 '내 안에 독을 다스리면 덕이 되고, 복이 된 사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상담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 겁니다. 이 연재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본인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을 동의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합니다. - 기자 말

[지난 기사] "친정엄마가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그녀의 "저는 솔직히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오시는 것도 이해가 돼요"란 말에 대하여 살펴볼 시간이 되었다.

: "이런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되실지 모르겠는데~ 한편으로 친정아버님은 OO엄마께서 초등입학하기도 전에 집을 나가셔서 아직까지 안들어오시고 연락도 안 되시나요?"
그녀 : "네, 연락할 곳도 몰라요."
: "물론, 경제적인 지원 또한 전혀 없으시고…."
그녀 : "네."
: "혹시 친정어머님과는 연락이 되실까요?"
그녀 : "모르겠어요. 아마도 안될 걸요."
: "OO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친정어머님은 심지가 강한 분이 아니셔서 누군가 잘해주면 자식보다도 우선하신다고 하셨는데…, 친정아버님이 잘해드렸다면 친정어머님은 어떠셨을까요?"

이런 나의 질문에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내 눈을 응시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다. 그녀에 대하여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점은 그녀의 이해력이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깊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나의 "친정어머님은 어떠셨을까요?"라는 질문에 어렸을 때 부모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걸까, 아니면 현재 자신과 남편의 관계가 떠오르는 걸까.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기다린다. 그녀가 먼저 말을 하기를.

그녀 : "아마도 아빠가 엄마에게 잘해주셨으면 엄마가 그렇게 난폭해지지는 않았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 "어떤 점에서 친정어머님이 그렇게 난폭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가요?"
그녀 : "저를 봐도 남편이 잘만 해주었으면 지금 이런 상황은 안됐을 것 같아요. 엄마도 아빠가 잘만 해줬으면…, 글쎄요."

: "저도 OO엄마의 생각과 같아요. 제가 만나본 많은 분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감정에 움직이는 분들의 대부분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이 잘만 해주면 생활이 어렵고 편하고를 떠나 행복해하시며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상이 섭섭하게(본인이 필요로 하는 애정만큼) 하면 주위에 거의 모든 사람을 적대시하는 경우를 보고 있어요. 저 또한 예전에는 그랬었어요."
그녀 : "제 엄마도 그렇단 말씀이세요?"
: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녀가 본인도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친정어머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그녀 : "엄마가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예요?"
: "엄마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 : "안돼죠. 엄마가 그러면 애들은 어떻겠어요. 애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아직은 그녀에게 자신과 어린 딸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단지 친정어머님의 잘못된 모습으로 본인이 힘들었다는 '자기연민'에 머물고 있다.

: "그렇겠지요. 애들은 힘들겠지요. 부모가 자녀에게 안정감을 못주고 자녀를 신체적, 정서적으로 보살펴주지 못하니까요."
그녀 : "제가 그래서 힘들었어요. 엄마가 기분 나쁘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할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거든요. 거기에 엄마 기분을 모르고 다가가면 소리만 지르고 야단치고 짜증내고 날마다 슬펐어요."
: "날마다 슬펐으니 얼마나 자주 우셨겠어요…. 혹시 OO엄마가 몇 살 때 기억이 가장 큰가요?"

그녀 : "아마 5살 때부터 기억이 나지만 그 전에도 엄마가 무서워서 갖고 싶은 인형 한 번 사달라고 해본 적이 없었어요."
: "그러시면 5살 전부터 친정어머님이 무서웠고 조심스러워서 가까이 가지를 못하셨나보네요."
그녀 : "네, 늘 화가 나 있었거든요."
: "지금 OO는(그녀의 딸) OO엄마에게 쉽게 다가오나요?"
그녀 : "아뇨."

순간 그녀의 얼굴이 경직된다. 이제 본인 또한 친정어머님과 다르지 않음을 직면하는 것일까. 나는 그녀의 다음 반응을 살피기 위해 말을 아꼈다. 한동안 경직되었던 그녀의 온 얼굴에 난감함이 가득했다.

그녀 : "제가 지금 엄마처럼 제 딸에게 그런단 말씀이세요?"
: "죄송하지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녀 : "그러면 제 딸도 저처럼 저를 원망하고 있을까요?"
: "다행히 딸은 아직 5살도 안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잘 보살펴주고 엄마의 애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시면 OO엄마와 같은 상황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 : "지금부터 해도 된다고요?"

: "그럼요. 충분합니다."
그녀 : "저는 사실 제 딸이 예쁘지 않았어요."
: "딸이 예쁘지 않으셨어요?"
그녀 : "꼭~ 남편을 닮아서 미웠어요. 정도 안가고..."
: "아마도 엄마가 자기에게 정을 주지 않고 미워한다는 느낌은 지금 딸이 아무리 어리더라도 알 수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눈치보고 두려워하고..."
그녀 : "그래서인지 지금도 밥먹거나 할 때 저한테 안와요. 제 눈치만 살펴서 그게 미웠었는데..."

: "눈치만 살펴서 그게 미웠어요?"
그녀 : "네, 애가 애 같지 않고 눈치를 그렇게 보니까 정이 안갔어요."
: "천진무구해야 하는 애가 어떤, 무엇 때문에 남도 아닌 자기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애 같지 않게 될까요?"

기운없고 자신없는 표정과 말투.

그녀 :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자주 다투고 집안이 불안하면 그러겠네요."
: "OO엄마도 그러셨어요?"
그녀 : "네, 저도 그랬었으니까~ 제 딸도 그랬었겠네요."
: "OO엄마가 어렸을 때 친정어머님께 아무런 거리낌없이 쉽게 천진하게 다가가지 못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을까요?"
그녀 : "엄마가 짜증내고 무서웠었으니까~ 그렇게 못했지요."
: "그때 기분이 어땠었을까요?"

나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기분, 즉, 감정의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 감정에 따라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 : "기분요? 그런 건 모르겠어요."
: "제가 생각할 때는 엄마, 아빠가 자주 다투시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되면서 불안하고 두려웠을 것 같아요. 거기에 큰소리가 오가고 더 나아가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라도 하면 분노하면서 어떻게 할 수 없음에 침울하고 겁이 나고 무섭지 않았을까요?"
그녀 : "그랬겠지요."

: "긴장, 불안, 두려움, 분노, 침울, 무서움 중에 어떤 기분이 가장 컸을까요?"
그녀 : "그중에서 무서우니까 불안요."
: "예~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지내면 마음도 편하고 불안하지 안았을텐데 그렇지 안아서 부모님의 다툼을 통하여 무서우니까 불안하셨을 것 같단 말씀이신가요?"
그녀 : "네"
: "그러면 지금 어린 딸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녀는 머리를 양 무릎사이에 집어넣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며 "내가 지금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요!!!"라며 엉엉 운다. 그녀는 그 정도로 아팠던 것이다. 본인의 기분(감정)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가슴이 경직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딸의 심정도 모를 수밖에, 그동안 그녀의 이 아픔을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엉엉 울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는 그녀가 갇혀 있었던 부모에 대한 불신과 원망에서 점점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그녀의 마음장애가 딸에게 이어지지 않을 것 같기에.


태그:#어린 딸, #원망, #두려움, #불안,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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