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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년
 백 사람의 십년
ⓒ 펑지차이,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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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을 실시한다. 아직 저개발 상태였던 경제를 농민의 노동에 의지해서 크게 발전시켜보겠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공업 부분의 발달은 미약했고 농촌 경제까지 타격을 입어 수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참혹한 결과로 끝났다. 이후 마오쩌둥의 권력은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에게 옮겨가게 된다.

그러자 마오쩌둥의 측근인 4인방(왕훙원, 장춘차오, 장칭, 야오원위안)은 홍위병과 함께 마오쩌둥의 뜻에 반대하는 인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문화와 사회 체제를 반동적인 것이라 규정하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위병들은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의 기치 하에 근거없는 테러를 일삼았다. 절차를 밟지 않고 사소한 이유를 들어 죄없는 이들을 우파나 반혁명세력으로 규정하여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폭행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자체는 마오쩌둥이 죽고 측근 4인방이 숙청되면서 종결되었다. 학생들이 선생에게 염산을 붓고 폭행하던 혼란은 정리되었고 이후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어느덧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났고 문화대혁명 당시의 철없던 어린이 홍위병들도 이제 사회의 장년층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잘못은 그저 묻어버리거나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재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며, 사회를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집단 숭배와 부조리라면 더더욱 다시 살피며 반성해야 할 대상이다.

문화대혁명의 진상을 기록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인식을 적은 작품이 있다. 중국의 작가 펑지차이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십 년간의 참상을 인터뷰를 통해 기록하여 <백 사람의 십 년>이라는 책에 담았다. 저자는 역사의 잘못은 얻기 힘든 재산이라며, 비극의 근원을 잘라내고 투명하게 인식해서 그 같은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인 펑지차이 본인도 문화대혁명의 공포 속에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공포 속에서도 문화대혁명 동안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암기했다. 그리고 문혁이 끝난 후에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정리하고 기록하여 <백 사람의 십 년>을 썼다. 역사의 잘못이라는 재산을 잃어버린다면, 새로운 맹목에 빠지게 될 것을 염려했다고 한다.

저자의 친구는 교사였는데, 선생님이 잠꼬대를 하는 사이 반동적 발언을 하지 않나 감시하는 홍위병 제자들 사이에서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실수로 '반동적인 잠꼬대'를 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친구는 반 년 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에게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였고 저자는 그때부터 사건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책에 담은 이야기는 총 스물다섯 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사회에서 일어난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우파로 찍혀 인생을 모두 날린 후에 진상을 깨달은 사람, 원자 연구를 하는 도중에 문화대혁명을 당한 사람, 간부의 딸이라는 이유로 어린이임에도 온갖 협박을 당한 소녀, 수용소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상을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세상의 모든 종이를 주워 남편을 구하려 한 여인의 이야기는 비참하고 애절하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마오쩌둥이 도랑에 숨어 적을 따돌렸다는 이야기를 한 죄로 공안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교사는 마오쩌둥의 지혜를 찬양하기 위해 한 이야기로, 책에서 본 것이었다고 답했지만 어느 책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왜곡했다며 징역 8년을 선고받는다. 그의 아내는 그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서 남편을 꺼내주기 위해 자신이 본 세상의 모든 종이를 다 줍기 시작한다.

너무 부조리해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 열세 번째 이야기의 화자는 자신의 매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화자의 매형은 무역회사에서 일했는데, 무뚝뚝하고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오 주석의 사진을 보고 웃어야 하는 상황에서 웃지 않았다. 회사 내의 반혁명 분자를 찾던 사람들에 의해 매형은 반혁명 현행범으로 지목당하고 누나의 가족은 반혁명 분자 가족이 되어 온갖 고초를 치르게 된다.

이 믿어지지 않는 모든 일들은 우상을 섬기고 쫓는 행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사람을 신과 같은 위치에 두고 그의 모든 행위를 숭배한 집단의 처참한 결말이었다. 문화대혁명에 참여한 이들은 '혁명'이라는 이름 하에 인민을 위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공산당이 행하는 모든 것을 반성없이 믿었다. 그러나 그 '혁명'은 결국 인민의 상처로 돌아왔다.

'혁명, 혁명, 혁명, 적, 적, 적!'을 외치며 혁명을 했건만, 결국 내가 해온 혁명의 적은 바로 나였던 겁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했어요. 얻어맞을 때의 끔직한 육체적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지만,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갑자기 먹구름이 가신 것처럼 깨닫게 되었어요. 완전한 깨달음은 해탈이라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요. 모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알고 나면 깊은 아픔이 되거든요. -317P

저자는 과거 세대가 겪은 황망하고 부끄러운 야만의 상태를 후대 사람들이 분명하게 인식함으로써 경각심을 갖기를 바란다. 역사적 사건 이후의 독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깊은 고민을 갖게 하여 그들이 앞선 세대의 고난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책은 국가의 요인이나 사관들의 기록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화를 통해 역사적 사건의 조각을 맞추는 책이다. 그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집단 부조리가 어떻게 보였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집단 열정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담고 있는 점,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후마니타스(2016)


태그:#중국, #문화대혁명, #문혁, #홍위병,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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