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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은 어찌 보면 경관이 아주 빼어나달 수는 없는 고장이다. 농경 중심 사회였다면 먹고사는 일만큼은 크게 문제가 없을 고장이었을 테지만 인근의 다른 고장과 비교했을 때는 특별할 것도 빼어나게 수려한 경관은 없는 곳 말이다. 그런 함안에 '아라가야'라는 문명이 자리 잡게 된 것은 강과 비옥한 땅이 있어 수렵과 농업이 동시에 가능한 지역적 특성이 작용했으리라.
함안 입곡군립문화공원 함안 입곡군립문화공원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다는 출렁다리가 절벽위 팔각정과 어우러져 있다. ⓒ 정덕수
특별하다고까지는 못하더라도 함안 나름으로 제법 풍치가 좋은 곳이 있는데 바로 입곡저수지다. 협곡 사이를 막은 이 저수지는 둘레가 총 4km에 이르는데 제법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있어 가을철 단풍을 즐기기에도 좋다. 함안군에서 군립 문화공원으로 조성하여 관리한다.

작은 도랑 하나 흘렀을 협곡인데, 이곳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꾼 물막이 공사를 한 것은 일제강점기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 다른 수탈의 현장이 세월이 흘러 많은 이들이 심신의 평안을 얻으려 찾는 관광자원이 되었다.

농업생산성을 높여 함안에서 많은 양의 쌀이 생산되었다고 함안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을 리 없다. 지금이나 조선시대, 그 이전 고려까지 중앙 요직에 자리했던 이들에게라면 제주도 다음으로 한직에 속했을 경남. 그곳에서 많은 양의 쌀이 생산되도록 나라가 나서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수물자를 확보하려는 일제의 속셈법이 지리적 여건이나 기후 등 모든 면에서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길이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함안에서 마산항까지는 넉넉히 3시간이면 족했을 것이다.

함안에서 이틀간 돌아보는 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분명 어딘가 농산물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거둬들이던 창고가 있었을 텐데, 이에 대해 거론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마름 함안 입곡군립문화공원의 호수엔 마름이 많은 정도가 아니다. 이 사진 촬영을 할 때만 하더라도 마름이 제법 많다고만 생각했다. ⓒ 정덕수
입곡저수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다는 출렁다리를 건너 팔각정은 나중에 올라보기로 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걸었다. 호수에 수생식물이 제법 많아 가까이 다가갔다. 마름(water chestnut)이 번성하고 있다.

마름은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도금양목 마름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물 속 바닥에 뿌리를 박고 줄기는 물 속에서 가늘고 길게 자라 물 위로 나오고 부래옥잠과 같은 형식의 깃털 모양의 물뿌리가 있다.

잎은 줄기 꼭대기에 뭉쳐나는데 삼각형을 이루며 잎자루에 공기가 들어 있는 불룩한 부낭(浮囊)이 있어서 물 위에 뜰 수 있다. 여름에 하얀색 꽃이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로 먹었다. 전국의 연못이나 늪에 흔하게 나타나는데 새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름모꼴'이란 도형이 이 마름의 형태와 같다는 말이다.
입곡군립문화공원 일행들이 다리쉼을 하는 이곳은 산책로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으로 사진촬영을 하기 좋은 장소다. ⓒ 정덕수
일행들은 사진촬영을 하며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다리쉼을 한다. 습관적으로 수풀과 바위틈을 살피며 어떤 식물이 이곳에 자생하는지 찾아본다. 넉줄고사리나 부처손, 바위채송화와 바위솔이 분명 어딘가 있을 법한데 눈에 띄지 않았다. 물 위엔 물옥잠 하나 보이지 않고, 가래와 함께 무성한 마름뿐이다.

두 식물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말들을 지니고 있다. 가래의 경우엔 호두처럼 씨앗의 두꺼운 껍질을 깨고 속을 꺼내 먹거나 기름을 짜는 가래나무의 열매 '가래'가 있고, 눈을 치거나 예전 농사일을 할 때 사용했던 삽과 비슷한 도구인 '가래'가 있다. 물론 사람들의 언어습관에도 동급의 누군가에게 윗전에서 어딘가로 보내거나 물릴 때 시켰을 법한 말 "~가래"도 있다.

마찬가지로 마름도 가래 못지않은 다양한 형태의 용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주의 땅을 얻어서라기보다 대리로 농사를 지어주는 소작을 마름이라 했다. 그 다음으로 천을 필요에 따라 자르는 행위 또한 마름(마름질)이라 하며, 고추와 같은 농산물의 수분을 제거하는 것도 마름(마르다)이라 하며, 사람의 몸이나 동물의 영양이 나빠 여위는 것도 마름(마르다)이라 한다.

마름을 다른 말로는 물밤, 혹은 말밤이라 해서 가을철 껍질이 완전히 굳기 전엔 껍질을 벗기고 열매를 먹는데 맛은 밤맛과 같다. 최근 이 마름을 말려 껍질 그대로 닭백숙에 넣어 먹기도 한다. 껍질에도 소화력을 촉진시키는 약효가 있는 걸로 밝혀졌다.
팔각정 입곡군립문화공원의 호수를 굽어 볼 수 있는 높은 절벽에 세워진 팔각정은 그저 다리쉼을 하는 탐방객들의 편의시설로만 보였다. ⓒ 정덕수
일행들과 차를 세워둔 출렁다리 근처 도로로 나오는 도중 잠시 팔각정에 올랐다. 남쪽 지방이라 눈은 많지 않겠으나 가을철 단풍이 좋을 때는 이곳에서 보는 풍경 또한 근사하겠다. 아쉽다면 왜 요즘은 예전처럼 누정(樓亭)을 못 짓느냐는 것이다. 팔각정이 전국에 풍치 좋은 장소면 어김없이 지어졌으나 옛 누각이나 정자의 멋은 느끼기 어렵다. 진중한 맛도 안 나거니와 가볍기가 마치 고장이 잦고 망가지기 십상인 짝퉁을 보는 것 같다.

재료인 목재 탓도 있겠지만, 편하면서도 자연과 잘 어우러지도록 욕심내지 않은 고건축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흉내조차 내지 못한 욕심 사나움 탓이다. 치적 쌓기에 함몰되어 5년이란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벌여 세금을 낭비하는 못난 통치자들처럼, 누군가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려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낼 생각으로 진행한 모습들을 보면 배알이 뒤틀린다.

기왕 계획을 세웠으면 자신이 완성된 결과를 반드시 본다는 생각을 버릴 일이다. 기초가 근본인데 이를 부실하게 만들면 결과물은 뻔하다. 기초부터 탄탄하지 않은데 어떻게 기둥을 제대로 세울 것이며, 완성이 된 들 제대로 역할을 하겠는가. 언제부터 누정에 신발을 벗지 않고 올라갔는지 툇돌 하나 제대로 놓인 법이 없으니. 역시 입곡군립문화공원의 팔각정도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계절에 맞춰 사진촬영에 하나의 소품 역할 정도로나 쓰일까.
입곡저수지 하늘빛이 내려앉은 입곡저수지 한쪽엔 마름이 뒤덮고 있다. ⓒ 정덕수
몇 분 일행은 곧장 캠핑장과 함께 탐방로가 조성된 방향으로 걸어갔으니 그들과 만나려면 서둘러 차를 타야했다. 출렁다리를 건너 차에 올라 상류로 가니 이미 일행은 도착해 다리난간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창밖 풍경을 보노라니 다리아래 수생식물이 물이 보이지 않도록 가득하다. 차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차에서 내려 다리로 향했다.
마름 입곡군립문화공원의 상류를 온전히 뒤덮은 마름 ⓒ 정덕수
"저토록 많은 마름이라니…!"

저 정도의 마름이라면 물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위해요소가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보호식물도 아닐진데 어떻게 마름 한 종으로 이 저수지 상류는 물론이고, 몇 백 미터에 이르는 호수를 가득 덮을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이거 물에 아무 문제가 없나요? 이 정도면 물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마름을 가리키며 누군가 이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예전엔 물밤이라고 해서 많이들 먹었는데 요즘은 시골에도 아이들이 없다보니 채취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환경보호란 이름으로 물에서 무언가를 채취하는 걸 단속하기도 하고요."

"결국 사람 외엔 마름에겐 천적이 없단 이야기군요. 그것도 어린 아이들!"

대화를 듣던 일행들은 일제히 웃었다. 사람이 자연의 천적이란 말도 그렇지만, 마름을 따서 먹고 놀 아이들이 없는 환경에서 마름이 호수를 뒤덮는 조건이 된다는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 아닌가. 거기다 환경 단속이란 미명하에 이렇게 단일종이 창궐할 수도 있다는 슬프면서도 웃긴 내용이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일까.
마름 꽃이 곧 필 마름으로 가득한 입곡군립문화공원에서 제법 먼 거리에서도 마름을 스마트폰만으로도 생생하게 촬영을 할 정도로 컸다. ⓒ 정덕수
"어느 대학교수가 TV에 나와서 마름이 정력에 좋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인데 말입니다."

사람들은 또 다시 웃었다.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 김훤주 단장이 한 마디 거든다.

"한사님이 한 번 나서 보세요. 이 마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분명히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구하려고 하겠지요."

가을이 되면 마름열매는 제대로 익는다. 이때 풀을 뒤집으면 물속에 열매가 잔뜩 매달려 있다. 이걸 곧장 껍질을 벗겨 먹어도 맛나지만, 잘 말려 백숙과 같은 음식에 약재와 함께 사용해도 좋다. 또한 껍질을 벗겨 밥을 해먹기도 했고, 가물어 농사가 안 되면 마름으로 죽을 쒀 기근을 면했다고 한다.
마름 마름의 열매를 이용해 목걸이와 열쇠고리로 제작해 우포생태공원에서는 탐방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 정덕수
함안군에서 이 마름을 이용한 음식을 개발해 보급하는 방법도 있고, 목걸이나 열쇠고리를 만들어 나눠주는 우포생태공원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마름에 대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

이번 가을, 카메라를 다시 장만하면 제대로 함안군을 둘러 볼 계획이다.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입곡군립문화공원의 가을 정경도 담아볼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입곡군립문화공원, #함안군, #함안 여행, #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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