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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건물 앞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 철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화여대는 3일 오전 9시에 개최된 긴급 교무회의를 통해 재학생과 졸업생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건물 앞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 철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화여대는 3일 오전 9시에 개최된 긴급 교무회의를 통해 재학생과 졸업생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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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화여대가 연일 검색어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려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화여대 학생들이 왜 분노하는지, 이대 당국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비록 3일 학교 측이 미래라이프 사업을 전면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이 사건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며 이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과 대안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의 일방적이고 불필요한 단과대 설립 추진이 문제를 키웠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달 27일. 이대 커뮤니티 내에서 미래라이프 단과대학(아래 미래라이프 대학)을 설립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그 다음날인 28일에 총학생회 주최로 미래라이프 신설 관련하여 학생의 의견을 듣고자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학생이 단과대 신설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 측은 이 사업을 추진하는 목표로 '모든 여성의 학문의 공평한 향유'를 실현하기 위한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재진입과 여성 평생학습자의 고등교육 수요 증가'를 들었다. 실제로 이 사업은 특성화고 출신의 비정규직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가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엔 크게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미래라이프대학에 속하게 될 뉴미디어산업, 웰니스산업, 융합설계 전공과 유사한 교육 과정이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와 신산업융합대 등 학부에 이미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각 전공에서 배우게 되는 내용이 지나치게 산업 수요에 맞춰져 있어 대학을 단순한 취업훈련소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아래 평단 사업)의 취지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학문적 소양을 함양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러한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 번째, 이대에는 이미 기회균등전형 안에 특성화고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형이 존재한다. 학교 당국이 30억 원의 재정 지원을 받는 미래라이프 대학 사업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부에서 '고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 대학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반대하다니 이기적인 학벌주의에 불과하다'라는 지적은 그래서 틀렸다고 봐야 한다. 아무도 고졸 노동자에게 대학 교육을 제공하는 데에 반대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이미 존재하는 고졸 재직자 전형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네 번째, 평단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 간의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생 측은 "5월 17일 회의를 시작으로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6월 10일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학내 심의기구 간의 회의를 거쳤으나 정작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회의는 대학평의원회 딱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의결기구가 아니어서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학생 측의 설명이다.

결국 이화여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학교 당국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한 것은 학교 당국의 비민주적인 행정과 기업화되어가는 대학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의 현주소

교육부가 주도하는 프라임사업의 핵심은 취업 중심의 학사개편이다.
 교육부가 주도하는 프라임사업의 핵심은 취업 중심의 학사개편이다.
ⓒ 교육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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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적인 행정과 대학의 기업화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이화여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사태는 현 정부의 대학 정책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대학에 재정지원사업을 할 때마다 학내 반발이 큰 것은 교육부가 재정을 틀어쥐면서 구조조정과 학제 개편을 강요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항상 학내 의견 수렴이 없다시피 한 것은 늘 지적받아왔다.

학내 분규의 중심 원인으로 자리 잡은 정부의 정책 중에는 역대 최대 재정지원사업으로 알려진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 즉 프라임(PRIME) 사업이 대표적이다. 3년간 6000억 원을 투입하여 사회 수요를 반영해 학사구조를 개편하고, 학생들의 전공 능력과 진로 역량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사업으로 학생 정원을 이동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부 자체 평가를 거쳐 지난 5월 최종적으로 건국대, 이화여대, 성신여대를 포함하여 총 21개 대학을 선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형 프라임 사업 카테고리를 보면, '사회수요 선도대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산업 수요를 중심으로 학제를 개편하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포함하는 내용인데, 이는 취업 및 현장 중심의 커리큘럼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연히 방향성이 취업과 현장 중심으로 가게 되면 상대적으로 두 가지 모두에 약할 수밖에 없는 인문계열 전공은 당연히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학교 측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학과 통폐합 및 정원 축소 등을 강행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대학에서 취업률이 떨어진다는 명목으로 학내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합의 없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경우는 독보적이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3년간 96억 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인문역량강화(CORE) 사업, 연간 50억 원 안팎의 예산이 지원되는 프라임 사업, 그리고 위에서 논했던 연간 30억 원가량의 지원을 받는 평단 사업 모두 싹쓸이했다. 이후 수많은 인문계열 학과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맘편히 공부를 할 수 있을 그 날을 위해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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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재정지원사업과 구조조정의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연히 대학은 취업을 위해 들어가는 곳 아니냐'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취업을 위해 대학을 다닌다. 하지만 대학을 취업을 위해 다니는 것이 아닌 학생들, 학문을 공부하고 더 좋은 연구를 위해 힘쓰는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소비자의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학교는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연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학생의 반발이 있어도 학교는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처럼 생색을 내기도 하지만 그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멀쩡히 잘 다니고 있는 학과가 통폐합되거나 학교 측에서 정원을 축소하면 학생은 어찌할 도리 없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대학이 취업을 위한 인재양성소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이번에 있었던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사태는 이런 학생들의 문제의식이 쌓이고 또 쌓여 폭발한 사례다. 평단 사업은 학생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키는 하나의 원인에 불과했다. 꼭 이번 사업이 아니었더라도 3개의 재정 지원 사업에 선발된 이상 이런 류의 갈등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학생들이 반발하면 그제서야 문제인줄 알고 철회를 하면 그만인가.

이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정부가 대학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선 때문에 이대 외의 다른 대학들도 비민주적인 행정과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더 이상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한다.


태그:##이화여대, ##대학구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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