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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서구 월평동의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앞. 가판대에서 경마 관련 잡지를 팔고 있다.
▲ 경마 대전시 서구 월평동의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앞. 가판대에서 경마 관련 잡지를 팔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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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말! 10번 말!! 아휴~"

경마 경기가 끝나자마자 곳곳에서 아쉬움을 토해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근 충남 홍성군이 제대로 된 여론 수렴없이 화상경마장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0일 오후 5시 30분, 대전시 서구 월평동에 있는 화상경마장(마권장외발매소)을 찾았다. 화상경마장의 실제 분위기를 느껴 보고,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취재에는 홍성신문 이번영 대기자와 홍성YMCA 정재영 간사가 동행했다. 이번영 기자는 홍성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프리랜서 형태로 홍성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기자 일행은 일단 마권부터 구매해보기로 했다. 일행 모두가 화상경마장이 처음인지라 마권 구매조차 순탄치 않았다. 안내원에게 구매 절차를 하나하나 물어가며 마권을 겨우 구매한 것이다.   

월평동 화상경마장 데스크 안내원은 "마권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좌석표부터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석을 잡기 위해선 따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좌석 이용료는 하루 기준 5천원부터 3만원까지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저렴한 5천원 짜리 좌석을 선택했다. 그렇게 좌석을 구매하고, 5층 화상경마장에 입장했다.  

화상경마장 안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500석은 족히 넘는 좌석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화상경마장의 스크린을 보자마자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화상경마장 안 곳곳에는 40인치가 조금 넘어 보이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다. 초대형 스크린이 아닌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보다 작은 화면 탓에 경기를 제대로 관람하고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정작 마권을 구매하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막상 구매표를 보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매표만 봐서는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초보 분들은 보통 복승에 건다"는 안내원의 말에 따라 기자는 '서울 6경기, 3번과 5번 말, 복승'에 5천원을 걸었다. 복승이란 1등과 2등 말을 순서에 관계없이 적중시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쉽게 돈을 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10여분 뒤에 그런 기대가 매우 비현실적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마권은 한번에 100원부터 10만 원까지 구매할 수 있다. 물론 기계를 바꿔 구입하면 그 이상의 베팅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성신문 이번영 기자와 홍성YMCA 정재영 간사도 기자와 마찬가지로 5천원의 마권을 구매했다. 다만 조금이라도 승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 일행은 제각기 다른 말을 우승과 준우승 후보로 지목했다. 

마권을 구매한 후, 자리에 앉자마자 뒷좌석의 50대 남성이 눈에 들어 왔다. 그는 말의 몸무게와 최근 출전 기록 등이 빼곡히 적힌 프린트 물을 마치 수험서 보듯이 정독하고 있었다. "경기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라고 묻자 그는 "말들의 기록이 있으니까, 2분 안쪽이면 끝이 나죠"라고 말했다.

'10번 말!, 12번말!'.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자신이 지목한 말을 응원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경기는 2분여 만에 12번 말과 9번 말의 승으로 끝이 났다. 이에 대해 이번영 기자는 "경기 시간이 뭐 이렇게 짧아"라며 허탈해 했다.

물론 기자 일행의 베팅 결과도 짧은 경기만큼이나 허탈했다. 우리 일행 중 단 한명도 돈을 딴 사람이 없었다. 홍성YMCA 정재영 간사만 겨우 12번 말 하나를 맞췄을 뿐이다. 물론 말 하나만 맞춘 정재영 간사도 결과는 '꽝'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정재영 간사와 기자는 거의 동시에 "번호 찍기가 로또번호 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은 이날 순식간에 좌석료 포함, 총 3만원을 잃었다. 

그래서일까. 이날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 상당수는 경주마에 대해 공부하고, 심지어 연구까지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화상경마장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경마 관련 잡지나 말에 대한 정보가 적힌 각종 자료 등을 정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홍성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경마에 빠지면 어느 순간 말을 공부하기 시작한다"며 "그들 중 상당수는 결국 중독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마사회 직원은 "개장시간부터 폐장할 때까지 하루 종일 베팅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화상경마장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글쎄'

기자 일행은 화상경마장을 체험한 직후 '월평동 화상경마도박장 외곽이전 및 폐쇄 주민대책위원회(아래 월평동 대책위)' 관계자를 만났다. 월평동 대책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월평동 화상경마장의 외곽 이전 문제를 놓고 한국마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다. 

월평동 대책위 관계자는 "화상경마장이 생기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경마에 중독된 사람들은 밥 사먹을 돈까지 아껴 베팅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역 경제 활성화는커녕 유해 환경 탓에 그나마 있던 학원들도 다 나갔다"고 덧붙였다.

단 한 게임을 경험했을 뿐이긴 하지만,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본 화상경마장은 건전한 레저 문화산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선 좁은 스크린 탓에 경기에 대한 몰입이 어려웠다. 선택한 말의 등수도 화면에 크게 띄운 숫자로만 겨우 확인이 가능했다. 그래서일까. 돈을 잃었다는 느낌 외에는 별다른 감흥이나 긴장감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홍성군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과천이나 제주 등 실제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은 그나마 스릴감이라도 있다"며 "화면으로만 보는 화상경마장은 마사회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태그:#화상경마장 , #마권장외발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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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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