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계를 읽다>(도서출판 가지)라는 책이 여섯 권째 나옵니다. 2014년에 '터키' 하고 '호주' 이야기가 한국말로 나왔고, 2015년에 '프랑스' 하고 '이탈리아' 하고 '핀란드' 이야기가 나왔어요. 2016년에 여섯 째 책으로 '독일' 이야기가 나옵니다.
겉그림
 겉그림
ⓒ 가지

관련사진보기

<세계를 읽다>는 지구별에 있는 여러 나라 속내를 차분히 풀어내는 '인문여행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그 나라로 삶터를 옮겨서 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도 여러모로 길잡이가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세계를 읽다, 독일>을 살피면 모두 열 갈래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 들어설 때 처음 받는 느낌을 풀어놓고, 독일이라는 터전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다룹니다. 독일을 이루는 사람들이 마음에 품으려는 생각을 짚고, 독일이 흘러온 사회 얼거리를 들여다본 뒤에, '독일에서 살아보기'를 이야기합니다.

독일인은 주말이나 공휴일 자유시간을 이용해서 전원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는 것을 무척 즐긴다. 불행히도 몇몇 명소는 이런 순수한 주말 여행객을 소화하기에도 이미 과포화 상태이고, 독일의 유명한 숲들 대부분이 방문객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질식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23쪽)

프랑크푸르트가 고향인 장인어른과 함께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에 관한 텔레비전 방송을 보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강한 사투리 때문에 4분의 1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장인어른 역시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셨다. (32쪽)

<세계를 읽다>를 보면, 여러 나라 이야기를 쓴 사람은 '그들이 머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를 누리고 다른 사회를 맛보다가 '새로운 나라'에 젖어들면서 뿌리를 내려요. 제법 긴 햇수를 '태어난 곳'이 아닌 '뿌리를 내리려는 곳'에서 살고 난 뒤에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독일말 배우기'를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요? 독일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테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쓰는 독일말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한테는 모든 대목에서 낯설면서 어려울 수 있어요.

독일에서 집을 얻거나 일자리를 찾거나 회사를 열려고 할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독일 토박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하고 '독일로 건너와서 뿌리내리는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때때로 같거나 비슷할 테지만 적잖이 다르리라 느껴요.

냉전의 상징이었던 찰리 검문소가 남아 있는 베를린 거리
 냉전의 상징이었던 찰리 검문소가 남아 있는 베를린 거리
ⓒ shutterstock

관련사진보기


독일에는 불법체류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몇 배에 달하는 외국인 거주자가 독일인처럼 세금을 내고 법규를 준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독일 정부의 건강 및 주택 보조 기금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비록 독일인처럼 온전한 혜택을 누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84쪽)

나는 이 나라에서 편협하게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는 말이 특별히 비 북유럽계 외국인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편향된 독일인이 집착하는 악독한 서열을 알게 된 계기이다. (88쪽)

<세계를 읽다, 독일>을 쓴 분이 '독일 여러 고장 사투리'를 다루는 대목에서 살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잘못 쓰거나 틀리게 쓴 이야기가 아니지만 웃음이 났어요. '독일말에도 고장마다 사투리가 틀림없이 있을' 텐데, 이 대목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영어도 영국하고 미국이 다르게 쓰지만, 영국에서도 고장마다 영어를 다 다르게 써요. 한국말도 고장마다 다 다릅니다. 요즈음은 방송과 인터넷과 의무교육 때문에 고장말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표준말만 남는 한국말이지만, 방송과 인터넷과 의무교육을 덜 받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아직도 '구수한 고장말'을 마음껏 쓰셔요.

그러니 우리가 '표준 독일말'을 잘 익혀서 독일로 가더라도 '베를린하고 떨어진 시골자락인 독일'에서는 서로 '의사소통조차 힘들 수 있다'고 할 만하겠지요.

독일은 매혹적인 고성의 나라다. 디즈니랜드 마법의성 실제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독일은 매혹적인 고성의 나라다. 디즈니랜드 마법의성 실제 모델이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 shutterstock

관련사진보기


독일인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친구'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아무 데나 쓴다며 때때로 어리둥절해한다. 내가 친구라고 지칭하는 사람 대부분을 독일인이라면 그냥 '잘 아는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110쪽)

독일에서는 다른 문화권과 달리 선물을 반드시 가져갈 필요는 없다. 그래도 선물하고 싶다면 꽃이나 포도주 한 병, 또는 주인이 관심 있어하는 주제의 책 한 권 정도가 적절하다. (114쪽)

독일은 이주노동자를 무척 많이 받아들인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도 독일로 돈을 벌려고 건너간 사람이 참으로 많아요. 독일은 '비북유럽계'를 으레 '외국인'으로 여긴다고 하는데, 곰곰이 따지면 바로 이들 '비북유럽계 이주노동자'가 독일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고, 때로는 '정치·사회·문화·과학에서 돋보이는 일'을 맡기도 하기 때문에, 독일 사회가 한결 튼튼하면서 굳셀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한국 사회도 이와 같아요. 한국으로 돈을 벌려고 찾아온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바로 한국 사회와 경제와 정치를 받쳐 주는 힘이에요. 비록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의료 혜택이나 문화 혜택이나 복지 혜택을 거의 못 누리지만 말이지요. <세계를 읽다, 독일>을 읽으면서 독일이나 한국 사회는 이 대목에서 아직 여러모로 뒷걸음을 걷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그리고 한국도 독일 못지않게 '비북유럽계'인 외국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그리 따스하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비북유럽계 외국인'을 썩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눈길은 유럽계나 북유럽계가 아닌 한국에서도 사뭇 차가운데, 앞으로 한국사람은 이웃나라를 한결 너그럽고 따스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요. 외국인을 따로 가르지 말고, 또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따지지 말고, 다 함께 아름다운 이웃이라는 대목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맥주 종주국인 독일에서는 기본으로 20가지쯤 되는 개성 다른 맥주를 맛볼 수 있다
 맥주 종주국인 독일에서는 기본으로 20가지쯤 되는 개성 다른 맥주를 맛볼 수 있다
ⓒ shutterstock

관련사진보기


오늘날 독일은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노동자의 시간 투입 면에서도 모범적인 나라가 되었다. 즉, 노동자들이 얻어낸 것 중의 하나가 짧은 근로시간과 많은 유급 휴가이다. 그 대신에 다른 나라보다 파업으로 손실되는 근로시간이 훨씬 적다. 물론 완벽한 제도란 없고, 독일 역시 파업과 태업, 작업정지로 종종 업무에 차질을 빚기도 하지만 수십 년간 모든 상황이 훌륭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235쪽)

그런데 독일은 한국하고 크게 다르다 할 만큼 앞걸음을 내달리는 자리가 많아요. 이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권리'하고 '노동 효과'이지 싶어요. 짧게 일하면서도 넉넉히 휴가와 일삯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독일 노동 제도'는 이와 맞물려서 '파업으로 빼앗기는 노동시간이 매우 적다'고 해요.

두 얼굴이라고 할 만하지 싶습니다. 한쪽에서는 여러모로 발돋움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발돋움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거든요.

그러면 한국 사회는 어떤 얼굴이 될까요? 독일 사회나 정치나 문화에서 두 얼굴을 엿볼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얼마나 스스로 발돋움하면서 한결 나아지려는 모습이라고 할 만할까요? 알맞게 일해서 제대로 열매를 맺으면서, 노동자하고 고용주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어느 만큼 열 만할까요? '토박이'라는 사람하고 '이주노동자'라는 사람이 똑같이 '한국사람'으로서 즐거이 어우러질 만한 문화나 정치나 사회를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룰 만할까요?

그나저나 독일은 고속도로나 찻길이 제법 잘 깔렸다고 하더라도 워낙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많아서 으레 길이 막히고, 아름드리 숲도 엄청난 자동차 매연 때문에 시름시름 앓는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도 엇비슷하네 하고 느낍니다.

<세계를 읽다>가 다음으로는 어느 나라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기다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세계를 읽다, 독일>(리처드 로드 글 / 박선주 옮김 / 가지 펴냄 / 2016.7.10. / 15000원)



세계를 읽다, 독일

리처드 로드 지음, 박선주 옮김, 도서출판 가지(2016)


태그:#세계를 읽다 독일, #리처드 로드, #독일, #인문책, #인문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