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언론은 김영란법의 언론인 적용 여부에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도 부패와 청탁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왜 크게 일어났는지 자성하는 언론을 찾기 어렵습니다. 많은 언론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언론 윤리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영란법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있어야 언론이 바뀔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언론의 자성을 기대하며 언론의 민낯을 공개합니다. - 기자말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에 있는 쇼핑몰 ‘더 몰 앳 유니버시티 타운 센터’(UTC 몰)를 소개한 한 일간지 기사. 63개 매체 기자들은 같은 달 21일부터 5박 6일 일정의 플로리다 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기사를 썼다. 취재비용은 신세계그룹과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이 댔다.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에 있는 쇼핑몰 ‘더 몰 앳 유니버시티 타운 센터’(UTC 몰)를 소개한 한 일간지 기사. 63개 매체 기자들은 같은 달 21일부터 5박 6일 일정의 플로리다 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기사를 썼다. 취재비용은 신세계그룹과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이 댔다.
ⓒ 해당 일간지 홈페이지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강렬한 햇살과 4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 탓에 찜통과 같은 외부와 달리 쇼핑몰 안은 여유롭고 쾌적했다. (중략) 한 번 들어오면 떠나기 싫은 곳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에 있는 쇼핑몰 '더 몰 앳 유니버시티 타운 센터'(UTC 몰)를 소개한 한 일간지 기사의 한 대목이다.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Taubman)이 운영하는 UTC 몰에 다녀온 기자가 지난달 28일에 보도한 이 기사에는 이곳 쇼핑몰의 장점이 대거 부각됐다.

'자연 채광 덕에 낮엔 별도 조명이 없이도 밝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대형 냉방시설에선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마련된 어린이 놀이터도 가족 단위 고객들에게 유용해 보였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기사 말미에는 터브먼이 올 9월 신세계그룹과 손잡고 한국에 세울 대규모 쇼핑센터가 소개됐다. 

이날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기자들이 신세계와 터브먼이 댄 돈으로 해외취재에 다녀온 뒤, 홍보 기사를 쓴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공직자와 언론인들이 1회에 100만 원,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 돈으로 공짜 해외취재 간 기자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신세계는 유통업계를 출입하는 언론사에 5박 6일의 미국 팸 투어(Familiarization Tour) 일정을 알렸고 63개 언론사가 신청했다. 팸 투어는 사전 답사 여행을 뜻한다. 기자 63명은 지난달 21일 미국으로 떠났다.

팸 투어의 주요 일정은 터브먼이 플로리다 주에서 운영하는 쇼핑몰 4곳을 둘러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22일 마이애미에 있는 '돌핀 몰', 23일 네이플스 소재 '워터사이드 샵', 템파 소재 '인터내셔널 플라자', 24일 사라소타의 UTC 몰을 둘러봤다. UTC 몰에서는 터브먼의 로버트 터브먼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쇼핑몰을 소개했다. 

기자들은 취재와 상관없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도 다녀왔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낸 기자들도 있었다.

팸 투어 비용은 모두 신세계와 터브먼이 댔다. 왕복항공권, 현지 이동 차량 대여, 4성급 호텔에서의 1인 1실 숙박, 식사 등의 비용을 합하면, 기자 한 사람 당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팸 투어는 모두 취재 일정으로 짰다"면서 "국립공원에 다녀온 것은 현지 문화를 이해하자는 차원으로 취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세계가 해외취재 비용 지원으로 언론 보도에 영향력을 미치려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휴지 조각된 언론 윤리

기자들이 기업이 대준 돈으로 해외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성 기사를 쓰는 것을 두고,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며,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주요 신문이 준수하고 있는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언론사와 언론인은 취재, 보도, 평론, 편집에 관련하여 이해당사자로부터 금품, 향응, 무료여행 초대, 취재여행의 경비, 제품 및 상품권, 고가의 기념품 등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고 연수나 팸 투어 형식의 해외취재를 제안할 때 언론인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보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도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가치 때문에 아무리 호의라고 해도 언론인들이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만약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이러한 해외취재가 진행됐다면, 기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란법 8조(금품 등의 수수 금지)를 어기는 공직자나 언론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취재 항공권, 숙박비 등을 합치면 모두 100만 원이 넘는 금품에 해당될 수 있다. 공짜 해외 취재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나쁜 관행을 스스로 끊지 못하는 언론

손해보험협회 후원으로 진행된 5월 12~20일 보험협회 출입기자단의 유럽 취재 공식 일정은 ▲유럽 보험사기 세미나 참석 ▲독일보험협회 방문·취재 ▲현지 세미나 ▲프랑스 도로안전협회 및 악사 프리벤션 방문·취재 등으로 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이었다.
 손해보험협회 후원으로 진행된 5월 12~20일 보험협회 출입기자단의 유럽 취재 공식 일정은 ▲유럽 보험사기 세미나 참석 ▲독일보험협회 방문·취재 ▲현지 세미나 ▲프랑스 도로안전협회 및 악사 프리벤션 방문·취재 등으로 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이었다.
ⓒ 선대식

관련사진보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손해보험협회에 출입하는 16개 매체 기자들이 지난 5월 8박 9일의 일정으로 유럽 취재에 다녀온 사실을 보도했다. 손해보험협회가 비용을 모두 댔고, 기자들은 귀국한 뒤 손해보험협회에 유리한 기사를 썼다.

특히 손해보험협회 기자단의 이번 해외취재 일정은 대부분 관광·쇼핑으로 채워졌다. 해외취재에 참가한 한 기자는 "해외취재가 아니라 공짜여행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반론을 할 여지가 없고, 그에 대해선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보험협회 기자단의 해외취재는 매년 두 차례씩 진행되고 있다. 

- 관련 기사
보험사 돈으로 출장 간 기자들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
보험협회는 왜 기자단 해외 취재에 돈을 댔을까

기자들 사이에서도 잘못된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제지 기자는 "업계는 해외취재 지원을 비용 대비 효과가 큰 홍보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언론사는 업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장기적으로 광고를 유치할 수 있고, 소속 기자들에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해외취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러한 나쁜 관행이 지속되면서, 기자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공짜 해외 취재를 비롯한 비용을 취재원에게 전가하는 나쁜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하지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받고 있다"면서 "언론이 먼저 자정작업에 나섰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됐다. 이런 관행들을 끊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클릭] 김영란법과 언론인 기획기사


태그:#김영란법과 언론인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