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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11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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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님께.

안녕하신지요. 저는 중고등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기획관님께서 보여주신 '취중실언'이 온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그 말의 출처가 다름 아닌 한 편의 영화라고 하셨지요. 꽤 인상 깊은 장면이었나 봅니다. 기자가 함께 동석한 자리에서 생각날 만큼 말이지요.

저는 기획관님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 권의 그림책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어쩌면 이 그림책 제목은 지금 기획관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물음일지도 모르겠어요. 무심코 던진 몇 마디의 말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겠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찌하여 국민이 개돼지로 비유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일까요. 정작 그 말을 한 기획관님은 고의성이 없었다며 고개 숙여 사과 했는데, 왜 국민들은 어떤 공감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그림책에는 토실토실 살이 찐 집토끼가 등장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살고 있던 토끼는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베란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토끼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텔레비전을 켜보고, 화장을 해봅니다. 벽장 속에서 롤러블레이드를 찾아내 쌩쌩 달리다 피곤해 침대에 누워 잠을 잡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날쌘 토끼는 원래 자기가 살던 베란다로 돌아갑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베란다에 엎드려 다시 잠을 잡니다. 집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주인 왈.

"아니, 왜 이렇게 집안 구석구석에 토끼똥이 있지?"


그 순간, 토끼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냉장고며 침대 위에 작은 새알초콜릿 같은 똥을 싸놓았던 걸 깜빡 잊고 있었던 거죠. 지난 밤 사이 벌어진 한바탕의 소동을 감추려고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허둥지둥 달려갔건만,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네요.

토끼는 안 그런 척 시치미를 뚝 떼려고 했어요. 집주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적당한 오리발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지요. 그러나 토끼의 잔꾀로는 파악되지 않는 결정적인 증거물이 있었던 거예요. 토끼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토끼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 남겨진다는 사실을요.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글 그림 이호백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글 그림 이호백
ⓒ 재미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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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감출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들 같은 거죠. 토끼가 가는 곳에 토끼똥이 놓여 있는 경우죠. 기획관님의 말이 검은 활자체로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졌을 때, 기획관님은 놀란 토끼눈을 했을 겁니다. 그 순간 온 국민은 보고야 말았습니다. 기획관님의 말 속에 박힌 새까만 그 무엇을.

그건 기획관님의 독창적인 생각만은 아닐 겁니다. 영화 속의 인상적인 대사로 기억될 만큼 만연하게 퍼진 이 사회의 은밀한 풍토라고 생각합니다.

선거철이나, 국가적인 재난 혹은 대참사 때마다 거론되는 '국민'은 형식적으로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등장하는 국민이 맞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근로환경과 최저임금, 조세정책이나 사회복지 차원에서 '국민'은 본질적으로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하는 국민입니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은 후자에서 싹튼 생각이겠죠.

그러니까 기획관님은 '국민의 이중성'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인정한 공직자인 셈이지요. 공직자가 받는 월급은 국민의 세금이라는 사실을 까먹어버린 채 상위 1%의 특권계층만을 강조했죠. 국민과는 다른 별개의 계층으로 차별화된 특권의식을 취중실언으로 부각시킨 것이지요. 어찌하여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그 위상이 높아진 것일까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닦아내야할지 고민을 해봐야겠지요. '사퇴'가 이 문제를 매듭짓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얼마 있다 다른 요직으로 재임용 될 게 뻔한데,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이 문제를 덮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공직 사회는 정말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과 무관한가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이 명제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취중 상태에서 기획관님이 한 생각은 무엇일까요. 어느 날 개돼지로 전락해버린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요. 대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또 다른 그림책 <생각>은 말합니다.

생각은 지나간 일들이 비치는 신비한 거울 아닐까? 생각은 끝없는 하늘로 열린 창 아닐까? 생각은 마법의 유리로 만든 투명한 그릇 아닐까? 생각은 그림과 이야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책 아닐까?


생각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푸른 하늘처럼 높은 이상을 꿈꾸는 창문입니다. 생각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그릇입니다. 어떤 생각은 한 권의 책처럼 묵직한 감동을 줍니다. 생각은 감출 수 없는 겁니다. 시시때때로 보이고 읽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생각이에요.


그림책의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사실은 기획관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언행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려면 기획관님이 몸담고 있는 공직 사회 전체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겠지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막말이 이 사회에 뿌리를 내렸는지 진중하게 생각해볼 일이지요. 

기획관님 발언 이후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 녀석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가 그랬잖아.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된다고."

"그럼, 당연하지!"

"교육부에서 일하려면 공부 많이 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엄마는 그 사람이 성숙해보여? 국민을 개돼지라고 했다면서."

"그 사람은 상위 1%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고. 엄마가 말하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지."

저녁을 먹고 책 좀 읽으라는 말에 아들 녀석이 쏘아댄 질문입니다. 아들 녀석과 벌인 대화 도중 기획관님이 등장하고 말았네요. 깜짝 출연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이들은 공부가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기획관님 역시 공부를 상위 1%로 진입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그 생각이 백년지대계라고 불리는 교육에 대한 기획관님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한데요.

하지만 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근본적인 기준을 생각지 않고, 문제를 일단락 짓기 위해 급급하다면, 학벌로 맺어진 인맥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겠네요. 기획관님의 쟁쟁한 학력이 무엇보다 큰 위안일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이 스토리야말로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이 각색한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가 아닐는지요.

두서없이 써내려간 편지를 이만 마치려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성숙한 시민의식만 강조하지 말고, 성숙한 공직자의 자세를 이번 참에 생각해보시면 어떨는지요.

선생님들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고요.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생각해보시기를. 생각은 거울이 되고, 창문이 되어줍니다. 부디 문제 뒤에 숨지 말고, 문제 속에 숨어 있는 해답을 마련해 보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글 그림 이호백/ 재미마주/값 9000원
<생각>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 그림/ 이지원 옮김/ 논장/ 값 9500원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이호백 아저씨의 이야기 그림책

이호백 글 그림, 재미마주(2000)


태그:#나향욱,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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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척 합니다. -이병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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