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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남양유업은 젊은 영업사원이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욕설과 막말을 하며 제품 밀어내기 강매를 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이른바 '갑질'논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불매운동으로 이어집니다.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고 주가도 폭락했습니다.

국민들의 불매운동 등 사회적 지탄 등으로 2013년과 2014년에는 적자를 내지만 2015년에는 250억 원의 흑자를 냅니다. 더구나 그 기간은 회사 측이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400명 이상의 노동자가 회사를 떠났지만 홍원식 회장은 3년간 45억 원 이상의 연봉과 12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가져갑니다.

2013년 당시 남양유업에 대한 조사에 나섰던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시 124억 원의 과징금을 책정했으나 3년이 지난 5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징금을 5억 원으로 재산정했습니다.

자동차 제조회사 폭스바겐은 연비 조작 사건으로 미국의 폭스바겐 구매자 1인당 한화 1000만 원의 배상금과 환경오염에 대한 배상금 등으로 약 17조 9천억 원(153억 달러)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미국 소비자 집단소송 합의액 중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하지만 연비 조작 사건으로 문제가 된 차량은 국내에서도 12만 5천 대가 팔렸습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보상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한국 소비자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폭스바겐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져야 정상이지만 연비 조작 사건 당시 잠깐 판매가 주춤한 것을 제외하고 오히려 할인 판매와 무이자 혜택 등의 마케팅의 영향으로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매운동은 성공하지 못한다

남양유업의 '갑' 횡포를 최초 공개했던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2013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앞에서 사측과의 협상 결렬에 따라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남양유업대리점협 결사투쟁 돌입 남양유업의 '갑' 횡포를 최초 공개했던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2013년 6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앞에서 사측과의 협상 결렬에 따라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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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은 소비자를 기만하고 불법적인 행태를 저지르는 기업에 대해 소비자들이 구매와 소비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매운동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옥시의 불매운동이 지속되고 있고 코웨이 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되어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한 회사의 불매운동이 또 다른 회사의 불매운동으로 잊히는 불매운동의 연속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업들의 비양심과 불법이 만연화되어 있습니다. 불매운동의 성과는 해당 기업에게 경영상 위기를 겪을 만큼 타격을 주어 경각심을 주고 다른 기업들에게도 본보기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불매운동이 성공한 경험은 없습니다. 기업들도 불매운동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불매운동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분위기에 편승해서 반짝 분노하고 마는 소비자의 탓일까요?

합리적 소비는 소비자가 소비행위를 할 때 가격과 품질을 고려하여 소비에 따른 기회비용과 만족감을 고려하여 가장 편익이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 윤리적 소비는 편익보다 윤리적인 가치판단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말하며 앞서 말한 불매운동은 윤리적 소비의 한 형태가 될 것입니다.

대리점에게 갑질을 하여 공정거래질서를 어지럽힌 회사의 제품이 품질이 좋거나 가격이 저렴해도 사지 않는 행위, 사람에게 치명적인 물질이 들어가 있는 물질을 판매하여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음에도 사과나 배상을 미루는 기업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입하지 않는 행위, 중금속이 검출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당 기간 그 사실을 감추며 판매한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행위 등은 분명 윤리적 소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윤리적 소비보다 편익과 소비자가 처한 경제적 상황에 의해 소비가 이루어집니다. 소비자를 기만하고 불법을 저지른 기업 제품은 절대 구입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어도 1+1 제품과 가격 할인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면 내 의지와 다르게 손이 먼저 해당 기업의 제품으로 슬그머니 가는 것을 보면 참 씁쓸해집니다.

불매운동보다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으로

2015년 한국행정연구원이 실시한 불매운동 경험 여부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불매운동 참가율은 15.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동참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동참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은 55.7%가 나왔습니다.

불매운동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불매운동하고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합리적 소비를 할 것인지 윤리적 소비를 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여 불법을 저지르고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이 큰 문제없이 버젓이 기업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불매운동 이전에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이런 기업들의 불법행위를 처벌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활동을 위축할 수 있고 대륙법 체제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도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9대 국회 당시 옥시 사태와 관련하여 '제조물 책임법 일부 개정법률안',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의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 결국 아무런 진척이 없이 19대 국회는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20대 국회에서 그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나 소비자 주권을 찾는 이러한 입법 과정은 험난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러한 입법 미비와 제도적 장치의 부실화로 우리나라는 피해 입증의 책임이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거대 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소비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지만 싸우는 소비자들이 있습니다. 최근의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가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를 보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합니다.

그들은 피해자의 의료기록을 수집하고 형사고발을 하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피해 보고서를 만들고 직접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으로 20대 국회 들어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건을 의결했지만 이 국정조사는 다시 진상 규명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난 5년간 국가는 과연 무엇을 한 것일까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의 명암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 출범식이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피해자와 가족모임, 시민사회,종교,보건의료,노동계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옥시의 완전 퇴출, 가해기업 및 정부의 책임자처벌, 옥시 재발방지법 제정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 "옥시 완전 퇴출"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 출범식이 지난 6월 2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피해자와 가족모임, 시민사회,종교,보건의료,노동계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옥시의 완전 퇴출, 가해기업 및 정부의 책임자처벌, 옥시 재발방지법 제정 등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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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은행 기업환경 평가(Doing Business)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89개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기업환경 순위는 2007년 30위에서 2008년 23위, 2010년 16위, 2012년 7위로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4위는 G20 국가 중 1위에 해당하고 OECD 회원국 중에서는 뉴질랜드, 덴마크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차영환 성장전략청책관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가 반영된 결과이며, 일반적인 기업 활동 관련 제도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받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은행의 조사에서도 보듯이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소비자 권익 측면에서는 한국은 과연 몇 등일까요? 남양유업 사태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12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나 3년 뒤 5억 원으로 재산정했습니다. 미국에서 153억 달러의 배상금을 물게 된 폭스바겐은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당당하게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5년이 흘러오는 동안 피해 소비자들은 힘들게 싸워왔으나 정부와 수사기관은 수수방관하며 직무를 유기하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이제 와서 수사와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켰다고 관련 단체들이 주장하는 국내 기업 애경에 대한 수사는 (폐손상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불매운동도 없습니다. 과연 한국 정부는 소비자의 권익이란 말을 알기는 할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내고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에게 각종 권한을 부여합니다. 또한 공권력을 인정하고 법을 지키고 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국민이 위험에 처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생각하는 믿음이란 단어에 국가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나쁜 식자재를 쓴 식당이나 불친절한 동네 슈퍼마켓은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의 불법행위와 부도덕한 상술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불매운동은 댤걀로 바위치기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하에서 부도덕한 기업의 불법행위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예방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우리 정부는 과연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꾸준히 해 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업이란 거대 경제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위해서 국가가 헌법적 의무를 지키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각자도생으로 스스로 보호하고 피해를 입으면 스스로 찾아서 싸워야 할까요?


태그:#불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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