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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사자와 거북이 그리고 양

석사자
 석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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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박물관 입구에는 두 마리 사자가 문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자세가 상당히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다. 앞발을 들어 올려 입에 대거나 목 뒤로 올린 모습이다. 박물관 안에서 확인한 사실이지만, 무덤에서 발견된 당삼채 사자를 모방해 대리석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악귀를 쫓는 의미로 만들었다.

마당에는 거북이가 한 마리 있다. 등에 사각형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표지석을 세웠을 것 같다. 정원에는 또한 말을 묶어두는 돌기둥인 전마장이 여럿 있다. 그리고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양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석양이라 부르는 것으로, 대개 능묘를 지키는 수호동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설명하는 자료는 없다.

사리보장 중 금관과 은곽
 사리보장 중 금관과 은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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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임동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임동박물관은 크게 세 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1974년 진시황 병마용갱이 발굴되면서 나온 병마용 일부를 전시하기 위해 진․당예술실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주에서 진나라 때 유물 100여 점이 들어왔고, 그 후 다시 한, 당, 원나라 때 유물 100여 점이 들어와 주․진예술실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1985년 경산사에서 출토된 유물 127점이 이곳에 들어와 당 불교예술실이 만들어졌다.

이들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경산사 출토 불교문화재다. 금관, 은곽, 사리병, 사리로 이루어진 사리보장은 국보급 유물이다. 또 사자와 참외 같은 당삼채도 독창적이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주나라에서 당나라 시대까지 예술은 섬서역사박물관, 함양박물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당 불교예술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리고 박물관 외부 비랑(碑廊)에 있는 비석과 불비상도 나오면서 잠깐 살펴볼 것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보장을 살펴보다

금관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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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진신사리보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3단으로 구성된 은곽이 사리보장의 틀을 형성한다. 하단이 받침이고, 중단이 누대 형태이며, 상단이 둥근 지붕의 누각 형태다. 은곽 외부에는 금과 옥으로 장식을 했다. 금과 은 그리고 옥의 외관에 때가 묻어 광채가 나지 않지만, 제대로 닦아내고 수리를 한다면 대단한 광채를 발할 것 같다. 3단 본체 외곽 장식이 더 화려한데, 그것은 금장식을 하고 옥 치장을 했기 때문이다.

은곽 안에 금관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꺼내 은곽 바로 옆에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 금관의 접착 부분에 약간 녹이 슬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금빛이 찬란하다. 금관의 외벽에는 꽃잎 장식을 하고, 원통형 지붕의 처마에는 옥구슬을 달아 장식성을 더했다. 구슬의 색깔도 흰색, 옥색, 황금색 세 가지다. 금관의 길이는 14㎝, 높이는 높은 쪽이 9.5㎝, 낮은 쪽이 6.5㎝이다.

사리병
 사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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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안에는 금으로 만든 법사자, 비단으로 싸인 녹색 유리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리병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13과 발견되었다. 이곳에 사리장엄을 공양한 사람은 무측천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고종이 죽고 683년 중종이 즉위했으나, 고종의 황후인 무측천이 690년 아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스스로 황제가 된다. 그리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녀는 경산사를 황실사원으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중수를 한다. 이때 경산사 지궁(地宮)에 사리보장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삼채로 만든 사자와 참외 그리고 유리병

당삼채 사자
 당삼채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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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보장과는 전혀 다른 예술품이 당삼채다. 당삼채는 대개 죽은 자들을 위한 명기로 무덤에 부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당삼채 사자와 참외는 부처님께 바친 공양물로 보인다. 사자는 호법(護法)사자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지궁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 마리는 공격을 하기 위해 오른발을 들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수비를 하기 위해 왼발을 들고 있다. 절에서 금강역사가 문지기 역할을 한다면, 이곳 지궁에서는 사자가 호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참외는 황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진 남방의 참외다. 그래서 호박처럼 높이보다 폭이 넓고 크다. 그리고 색깔의 조화가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참외를 받치는 굽다리 접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리가 세 개 달려 안정감이 있다.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접시까지 만들어 의미와 예술성을 더했다. 이곳에는 또한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유리병도 있다. 이들 역시 바깥에 장식을 해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했다.

당삼채 참외
 당삼채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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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외에도 청동제 불구가 여러 점 있다. 청동으로 만든 주전자와 병이 눈에 들어온다. 주전자는 손잡이가 있어 차를 공양하는데 사용되었을 것 같다. 병은 찻물을 보관하거나 감로수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청동으로 만든 향로도 있는데, 장식성이 뛰어나다. 네 다리에 네 개의 고리를 가진 향합이 있고, 그 위를 구멍이 난 덮개로 덮었다. 그런데 네 개의 다리 상단을 용두(龍頭)로 장식했고, 네 개의 고리를 호랑이 입에 걸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은수금법장(銀首金法杖)이다. 머리 부분은 은으로 꽃잎 형태를 만들고, 아래 부분은 금으로 지팡이 형태를 만들었다. 법장이라고 이름 붙인 걸 보면, 큰 스님이 제자들에게 법문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 숟가락, 바릿대, 탁발기, 방울 등 청동 생활용기가 있다. 그리고 당시 사용되던 주화인 개원통보(開元通寶)도 있다. 이 주화를 통해 경산사가 당나라 측천무후 때부터 현종 때까지 더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사리보장탑에 그려진 네 가지 그림 이야기

사리보장탑
 사리보장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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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한 가운데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다. 벽에 당 경산사 불보(佛寶) 문물이라고 쓰고, 그 앞에 석가여래 사리보장탑이 있다. 이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의 연봉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나는 탑신부 사방에 새겨진 그림에 주목한다. 정면에 석가여래설법도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연화좌에 앉아 10대 제자에게 법을 설한다.

여기서 10명의 제자는 지혜(智慧) 제일 사리불, 신통(神通) 제일 목건련, 두타(頭陀) 제일 마하가섭, 해공(解空) 제일 수보리, 설법(說法) 제일 부루나, 지율(持律) 제일 우바리, 논의(論議) 제일 가전연, 밀행(密行) 제일 라후라, 천안(天眼) 제일 아나율, 다문(多聞) 제일 아난이다.

석가여래열반도
 석가여래열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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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열반도는 말 그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사라쌍수 아래 모여든 제자들이 부처님의 열반을 바라보고 있다. 석가여래다비도는 부처님의 시신을 화장하는 모습이다. 하늘에서는 비천상이 호위하고 있다. 팔국분사리도는 다비 후 나온 사리를 8개 나라에 나눠주는 모습이다. 각국에 나눠주는 사리의 양은 큰 그릇에 하나 가득 정도 되는 것 같다.  

비석과 불비상을 통해 당나라 불교를 짐작하다

석가여래 삼존불
 석가여래 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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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보고 전시실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비석이 진열되어 있는 복도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글씨와 불상이 새겨진 비석과 불비상이 전시되어 있다. 비석의 상단에 내부를 일부 파내고 그 안에 양각으로 부처상을 조각한 것도 있다. 양식으로 보아 성당(盛唐)시대 작품으로 여겨진다. 북조시대에 비해 부처님의 얼굴이 통통해지고, 표정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삼존불의 경우, 미소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비석에서는 글씨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감응사신수기(感應寺新修記)는 글씨는 아주 분명하고, 비문의 글씨도 모두 읽을 수 있다. 이 비석은 조의랑(朝議郞) 병조참군(兵曹參軍) 한문조(韓文肇)가 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비석의 제액이 전서로 되어있어 읽기가 어려운 것도 있다. 그 외에 불상도 여럿 있다.

연꽃 대좌
 연꽃 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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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또한 석등 대좌로 보이는 석재도 여럿 보인다. 이곳에 새겨진 연꽃이 너무나 뚜렷하고 양감이 두드러져 당시 조각기술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연꽃 가장자리 사방에 사자상을 조각해 놓은 것도 있다. 또 무덤의 입구에 서 있는 화표석도 보인다. 이곳에는 이처럼 다양한 석조물이 있어, 당나라 이후 불교문화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화청궁과 임동박물관을 통해 당나라 문화유산을 살펴본 우리는 이제 진시황릉으로 향한다. 길은 진당대도(秦唐大道)를 따라 동쪽으로 나 있다. 우리는 역사를 거슬러 진나라 시대를 찾아간다. 그 첫 번째 방문지가 진시황릉이다. 춘추전국시대 500년간의 분열을 끝장내고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어떤 모습일까?


태그:#임동박물관, #사리장엄, #당삼채 사자, #사리보장탑,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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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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