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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동굴 귀신의 집에는 소복 입은 귀신이 있다.
 광명동굴 귀신의 집에는 소복 입은 귀신이 있다.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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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한여름이면 무더위를 쫓는다면서 공포영화를 즐겨봤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그때는 그랬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오싹한 기운이 같이 찾아온다. 그때 함께 느껴지는 써늘한 느낌은 냉방기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과 성질이 전혀 다른데도 더위를 물리치는 기능은 비슷했다.

공포영화는 특히 한국영화가 무서웠다. 검고 긴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복을 입은 귀신이 입가에 피를 묻힌 채 히죽거리면서 나오는 영화. 무대는 늘 공동묘지였지. 귀신은 발이 없는지 땅 위를 미끄러지면서 소리 없이 움직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관 전체를 찢어버릴 것 같은 비명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 비명소리, 다름 아닌 내가 내는 소리였다.

공포영화를 본 날이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덤이었다. 영화에서 본 장면이 끈질기게 머릿속에 달라붙어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잠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형광등을 켜야만 했다.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어둠 속에서 귀신이 불쑥 튀어나와 내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 것만 같아서.

광명동굴 귀신의 집 입구
 광명동굴 귀신의 집 입구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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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억 때문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쫓는 데는 귀신만한 게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귀신 따위가 있을 리 없잖아, 하면서도 말이지. 그래서 광명동굴에서 이색 공포체험관인 '귀신의 집' 운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꼭 가게 된다.

작년에도 그랬다. 광명동굴 '귀신의 집'은 관람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즉 코스가 그리 길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공포감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관람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공포감 역시 마찬가지다. 이거 양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공포감을 느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한데 광명동굴 관계자는 공포 체험코스가 너무 길면 놀라서 넘어져 다치는 경우가 있어 코스를 일부러 길지 않게 조성했다고 설명한다. 아, 그렇구나. 광명동굴 귀신의 집에 산 귀신과 죽은 귀신이 뒤섞여 있는 건 넘어져서 다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란다. 공포감에 질려서 넘어지는 순간, 다치지 않게 부축해줄 귀신이 있다는 거지. 귀신이 부축할 때 더 놀랄 수도 있겠지만.

작년에 처음 광명동굴 '귀신의 집'에 들어갔을 때는 공포를 안겨주는 귀신과 힘겨루기(?)를 했다. 귀신을 만났을 때 절대로 놀라지 않는 담대한 모습을 귀신에게 보여주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다는 거지.

광명동굴 귀신의 집 안내는 이 분이.
 광명동굴 귀신의 집 안내는 이 분이.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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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주 천천히 귀신의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구에 앉아 있는 소복 입은 귀신에게 손까지 흔들어주면서. 결과는? 귀신에게 졌다. 내 인내심보다 귀신의 인내심이 더 대단했던 것이다.

너, 귀신이지? 어, 아니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귀신일 거야. 진짜 아니잖아. 에이, 괜히 긴장했잖아. 으아악. 귀신 맞았구나. 아아아악.

이랬다는 거지. 순간적으로 방심했다가 달려드는 귀신에게 놀라 내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친 김에 스트레스 해소한다고 마음껏 비명을 질렀다, 고 얘기하고 싶다.

광명동굴은 내부온도가 일 년 내내 13도로 늘 서늘하다. 그런 곳에서 귀신을 만나면 더 오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해는?

귀신의 집이 뭐 거기서 거기지 작년과 다를 게 뭐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한 번 들어가봤다 이거지. 귀신의 집 장막을 걷으면서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소리. 사람이 내는 건지, 귀신이 내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발이 순간적으로 늪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 바닥에서도 귀신이 나오는 거야?

귀신, 조심합시다. 심장도 조심합시다.
 귀신, 조심합시다. 심장도 조심합시다.
ⓒ 윤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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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광명동굴 '귀신의 집'에는 산 귀신과 죽은 귀신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아무리 눈을 동그랗게 떠도 산 귀신과 죽은 귀신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내부가 적당히 어둡기 때문이다. 죽은 귀신인 줄 알았다가 산 귀신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정말 무섭다. 그러니 귀신의 집에 들어가려면 아무리 심장이 튼튼한 사람이더라도 마음의 준비는 조금이라도 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귀신의 집 바닥에 떨어진 심장을 주우려고 허둥거리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올해도 그 길지 않은 코스에서 길을 잃어 결국 막다른 길에서 귀신에게 길을 물어야 했다. 귀신이 나더러 조심해서 가라고 한다. 귀신님, 진짜 죄송, 말 시켜서.

광명동굴 '귀신의 집'은 연말까지 상설로 운영된다. 작년에는 고작 두 달 동안만 운영했는데,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올해는 연말까지 죽 이어질 예정이란다. 여름 휴가철에는 야간개장도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태그:#광명동굴, #귀신의 집, #귀신, #여름, #공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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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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