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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7월이면 농촌에선 거둘 것 다 거뒀고 심을 것 역시 다 심었으니 잠시 한가한 순간을 맞는다. 음력으로 된 <농가월령가>의 6월령에도 다른 달과는 달리 낮잠 얘기도 나오고 파리, 모기 얘기도 나온다. 장마철에 먹구름 사이로 해 나듯이 짧디짧은 농한기가 생긴 것이다. 며칠 지나 이어지는 농사일은 삼굿(삼베옷 원료를 얻으려 삼나무를 찌는 일)이다.

매미 잡으러 삼밭으로?

깨복쟁이 시골 아이들도 삼굿 전 이때가 놀기에 좋다. 소를 야산에 올려놓고는 종일 냇물에서 놀다가 어지간해지면 누가 앞장섰다고 할 것도 없이 이심전심으로 슬금슬금 삼밭으로 가서 겨릅대(또는 지릅대기, 삼나무의 껍질을 벗긴 삼대)를 하나 장만한다.

그걸로 잠자리나 매미를 잡으러 나서는 것이다. 겨릅대는 손가락 굵기로 길이가 3~4미터까지나 되고 단단하지만 속은 비어 있어서 매우 가볍다. 끝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구부려서 왕거미가 줄을 쳐 놓은 곳에다 대고 뱅글뱅글 돌리면 둘도 없는 매미-잠자리채가 되는 것이다.

삼밭에 들어갈 때 주인이 있나 없나 살펴야 하지만 그것만 살폈다가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삼밭 안에 불타는 청춘남녀가 숨어 있는지 확인을 않고 들어갔다가는 서로 기겁을 하게 된다. 4월 초에 씨를 뿌려서 3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3미터 이상 크는 삼나무는 가늘고 약해서 바람이 적고 아늑한 곳에 심기 때문에 삼밭은 동네에서 구석진 곳이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음산하기도 해서 청춘남녀가 연애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새 쫓듯이 돌이라도 두어 개 던져 보고 별 반응이 없으면 그때야 삼밭으로 접근해서 튼실한 놈을 잘라 낸다.

이때의 삼나무 껍질이 삼베가 된다. 요새야 죽은 사람의 수의로나 쓰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고려 말에 면화가 들어오기 오래전부터 삼베는 우리 민족의 중요한 옷감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베틀에 앉아 계셨고 삼베로 만든 수건을 썼다. 온 식구가 함께 쓰는 삼베 수건은 너무 뻣뻣해서 얼굴에 생채기가 날 정도다. 얼굴을 자근자근 눌러 물기를 적셔 내듯 하든지, 세수를 다른 식구들보다 나중에 해서 그나마 물러진 채로 써야 얼굴을 안 다치게 된다.

이제 삼베 일은 인간문화재를 통해서나 만날 수 있지만 예로부터 시집갈 때는 바느질과 음식 솜씨에 베 짜는 솜씨가 필수였고 반짝 찾아오는 7월 농한기 뒤의 농사일이었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과 길쌈으로 자식 키운 얘기는 어느 시대 어느 고을에서나 전해 오듯이 삼 농사와 길쌈은 적어도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짜기 베를 짜는 풍경들
▲ 베짜기 베를 짜는 풍경들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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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뿐인 삼굿

삼 껍질은 밧줄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이지만 대부분 옷감으로 쓰이는데 7월의 무더위에 불을 때서 삼굿을 하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삼굿을 시작으로 길쌈은 겨우내 긴긴 밤을 베틀에서 졸아 가며 베를 짜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에 수십 번의 손길이 가야 삼베 한 필이 만들어진다.

삼굿은 삼나무를 차곡차곡 쌓아서 뜨거운 김으로 쪄 내는 일이다. 장골 키보다 큰 삼나무를 베어 내서 곁가지를 쳐 내고 한 다발씩 묶어 가마에서 찌는데 그 방법이 참 감탄스럽다. 삼굿 터는 화덕과 삼 가마로 나뉜다. 화덕은 수증기를 만드는 것이고, 삼 가마는 그 수증기로 삼을 찌는 것이다. 삼 가마는 바닥에 가로로 통나무를 깔고 그 위에 다발로 묶인 삼나무를 쌓아 만든다. 가장자리 따라 통나무를 세워 삼나무가 많이 쌓이게 유도하는데, 덕석이나 솔가지 등으로 그 위를 덮고 마지막으로는 흙을 씌워서 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밀봉한다.

삼굿이 잘되려면 화덕이 중요하다. 화덕에서 불의 열기를 수증기로 만들어 삼 가마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화덕은 돌을 바닥에 깐 위에 장작을 쌓아 만든다. 여기에 불을 지피는데, 이 화덕 관리는 마을에서 가장 경륜이 있는 어른이 맡는다. 자칫 잘못하다 삼이 설익으면 하루에 겨우 두 번밖에 못 하는 삼굿을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화덕의 장작불이 타는 동안 가장자리에 돌을 쌓고 나서 흙으로 덮어 올라가다가 화구의 정수리만 남기고 흙으로 다 덮는 순간 화덕 안으로 물을 쏟아 붇는다. 흙으로 쌓은 화덕의 옆구리 몇 군데에도 삽이나 괭이로 흙집을 내고 물을 쏟아 부으면 뜨거운 돌들에 닿은 물이 수증기로 변해 삼 가마로 밀려 들어간다.

화덕이 삼 가마보다 약간 낮아야 하고 김이 이동하는 통로가 서넛 잘 뚫려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장작의 양과 돌 쌓기, 물을 부을 때와 위치, 물의 양은 동네 어른의 오랜 경험과 정교한 판단에 따른다. 이제부터 삼베옷이 탄생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펼쳐진다. 동네 아이들은 '와, 와' 하며 몰려들어 심부름도 하고 놀이도 한다.

지난한 삼 삼기와 삼 날기

쪄낸 삼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일에서부터 벗긴 겉껍질에서 삼톱으로 속껍질 빼내기, 바짝 말리기, 말린 삼 뭉치를 다시 물에 불려 삼 째기, 그리고 오른쪽 무르팍이 시뻘겋게 피가 배어 날 정도로 삼 가닥을 문질러 대는 삼 삼기가 기다리고 있다.

삼 삼기는 삼 뭉치를 삼뚝가지(정방형의 묵직한 나무토막 위에 가는 나뭇가지를 세워서 끝에 홈을 낸 것)에 걸어 놓고 한 올씩 빼서 오른 무릎을 반쯤 세워 허벅지 쪽에 삼 두 올을 삼의 머리 쪽과 꼬리 쪽을 나란히 놓고 침을 뱉어가며 잇는 작업을 말한다. 머리 쪽을 두 갈래로 가르고 다른 올의 꼬리 쪽을 그 사이에 넣어 침 바른 손바닥으로 너댓 번 비벼 올리면 두 올이 이어진다.

겨릅대는 삼나무 껍질을 벗긴 양에 비례해서 생기는데, 품삯 대신 자기가 벗긴 만큼의 겨릅대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동네 코흘리개 애들부터 노인까지 달려들어 벗기게 된다. 겨릅대는 잠자리채는 물론 땔감으로도 쓰고 집 지을 때 외얽기(흙벽을 만들 때 벽이 될 가운데에 얽어매는 외가지. 흙이 양쪽으로 붙을 때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로도 쓴다. 지붕에 이엉을 일 때 먼저 겨릅대를 엮어 깔기도 한다. 한자로는 '마골(麻骨)'이라 하는 겨릅대는 속이 비어 있다 보니 단열은 물론 습도 조절까지 한다.

이런 기능들에 관심이 없는 애들은 겨릅대를 엉뚱한 용도로 쓰다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겨릅대를 분질러서 비눗물에 꽂았다가 입으로 불어 대는 비눗방울 놀이가 첫 번째라면, 장마 때 곪아 빠진 호박을 주워다가 겨릅대를 4개 꽂아 다리를 만들고는 귀나 주둥이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돼지나 소가 되는 동물 놀이가 두 번째다.

삼 삼기가 끝이 아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과정은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 설명을 해도 직접 해 보지 않는 이상 이해하기 힘든데, 삼 날기와 베 매기 등이다. 치자 물을 들이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이런 과정은 추석도 쇠고 농사가 끝난 음력 11월부터 시작해서 계속되다가 다음 해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인 음력 2월에 베 짜기로 마무리된다.

굳이 가장 중요한 단계를 짚으라면 '계추리 바래기'라고 할 수 있다. 계추리는 삼의 속껍질을 말하는데, 쪄 낸 삼 껍질에서 겉껍질을 벗겨 내고 남은 속껍질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걸 바래기라고 한다. 이때 암갈색의 삼 껍질이 담황색으로 바뀌는 표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색도 고와지고 삼의 올도 질겨진다. 한 주 정도 걸린다.

중국산 인조 삼베, 조심해야

베짜기 방 윗목에 있던 물레의 가락꼭지에 받쳐 다친 모습
▲ 베짜기 방 윗목에 있던 물레의 가락꼭지에 받쳐 다친 모습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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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겨울이었다.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홀어머니가 온갖 푸념을 하면서 베틀에 앉아 철커덕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는데 잠버릇이 험했던 내가 윗목에 있는 물레의 가락꼭지에 머리를 찔려 피가 났었다. 물레는 베 짜기 직전에 삼베 올들을 꾸리감기하는 장치인데 꾸리감기 대롱인 가락꼭지는 큰 바늘과도 같은 것이다. 동줄에 팽팽하게 걸린 물렛줄이 한 바퀴 돌 때마다 가늘고 긴 가락꼭지는 수십 바퀴가 돈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자리에 드셨을 어머니는 자식의 날카로운 비명에 깨어 비몽사몽간에 호롱불을 더듬다가 석유가 든 그걸 엎질러 버렸다. 불길한 기름 냄새와 어머니의 신세 한탄이 범벅이 되어 방 안을 채웠다.

이런 추억도 아련하게 우리나라의 삼 농사는 이제 거의 체험 행사용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전통 방식의 삼베로 만든 수의 한 벌은 삼베 올의 굵기에 따라 430만 원에서 600만 원을 호가한다니, 웬만한 더위쯤이야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푸새질(미지근한 물에 푼 풀을 옷에 먹이는 일)한 베적삼으로 가뜬하게 넘기곤 했지만 사 입기 힘들다.

그러니 오늘날 시장 제품은 대부분 중국산 인조 삼베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삼베에 항균 작용이 있어 행주로도 쓰이고 음식상을 덮는 용도로도 쓰였지만 유연제가 도포된 인조 삼베는 화학제품이라 햇볕을 쬐면 분해되어 흰 가루가 묻어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또한 삼에는 마약 성분이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는 1976년에 대마관리법('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대체됐다)을 제정해 재배와 관리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으니 민간요법과 다양한 농가 생활재로 활용되던 삼 농사가 더 어려워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살림의 <살림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베,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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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귀농. 2007년 3월부터 치매를 앓는 늙으신 어머니랑 사는데 삶의 새로운 영역을 맛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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